'이 사람이다'하는 확신은 어떻게 오나?
Q. 22살 여대생입니다. 이성 친구 사귀기가 너무 힘들어요. 얼굴 보며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동성 친구들처럼 편하질 않습니다. 자연스레 남자들과 얘기할 기회도 적어지고, 그러다보니 연애도 별로 못했어요. 대학 1학년 때 소개팅에서 첫 남자친구를 사귀었어요. 중학교 때 잠깐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오랜만에 연애한다는 기분에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100일을 넘기지 못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연애와 달랐고, 또 남자친구가 그렇게 좋지도 않았거든요. 제가 무작정 사귄다고 응한 게 잘못이었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 뒤로 연애에 대한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기회도 없었고, 다시 소개팅에 나가기는 꺼려지더라고요.
이번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한 선배가 아는 후배한테 제가 마음에 든다고 저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네요.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은 좋았습니다. 첫인상이 그리 나쁘진 않았거든요. 고민 끝에 일단 수락했는데,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라 떨리기도 하고 걱정됩니다. 이제는 한 사람과 진득하게 사귀고 싶은데 또 길게 가지 못할까 봐서요. ‘그래, 그냥 편하게 좋은 사람 만난다고 생각하고 오자. 혼자서 김칫국 마시지 말고 기대도 하지 말고 그냥 가자.’ 이렇게 몇 번이나 다짐하지만 쉽진 않아요. 짧은 연애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이랑 오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C.누군가와 사귀기 전에 “아.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들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한 확신만 있다면, 이것이 나중에 현실화 되는지와는 관계없이 연인관계를 결정하는 순간만은 고민이 없을텐데 말입니다. 그걸 반대로 생각한다면 연애의 성공(?)여부는 연애초반의 확신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사연을 볼께요. 두 가지 내용이네요. 첫째, 상대방에 대해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둘째, 짧은 연애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하나씩 풀어봅니다.
먼저 상대방에 대한 확신 부분. 이 부분은 다시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연애에 대한 판타지가 존재한다거나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거나, 혹은 둘 다 존재하거나. 완벽주의적 성향은 연애에 있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많습니다.
연애에 대한 판타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판타지는 드라마나 소설, 주변 사람들의 연애담에 의해 생겨납니다. 참 아름답고 멋집니다. 그러나 그 판타지를 판타지로 인식하지 못하는 한 길게 가는 연애는 불가능합니다. 누구를 만나도 그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연애는 일어날 수 없거든요. 판타지는 밖에서 바라볼 때나 아름답고 평온한 것이지, 판타지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같이 갈등과 고민으로 첩첩이 둘려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판타지로 인식하고, 현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연애를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전제입니다.
두 번째, 짧은 연애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는 부분. 저는 여기서 연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위에서 말한 완벽주의적 성향을 봅니다. 그런데 과연 연애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것이 있을까요? 긴 연애는 성공, 짧은 연애는 실패일까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과의 연애, 서로의 성장에 방해되는 연애는 오히려 짧게 끝내는 게 성공이 아닐까요? 그리고 사람을 잘못 만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끝이 나는 연애는 성공일까요, 실패일까요? 이렇듯 연애에 있어서의 그 기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성공적인 연애는 어떤 연애일까요? 아마도 그 기간으로 인해 자신이 한층 더 성장한다면 그 연애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모든 연애는 성장을 동반합니다. 연애를 통해 내가 가진 욕구의 밑바닥을 보며, 상대방의 사랑 속에 내 안에 있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며,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물론 상대방의 성숙함 정도에 따라 그 성장의 양은 달라질겁니다. 하지만 어떤 이의 성숙함을 짧은 순간에 알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역시 시간과 경험을 필요로 하니 말입니다. 따라서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에게 끌리느냐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성숙한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똑같은 수준의 자기 자신이 성공적인 연애를 하기위해 사람을 고르고 고른다해도, 기본적으로 그 상대방은 거기서 거기이게 됩니다.
결국 모든 연애는 그 자체만으로 성공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연애를 더욱 더 성공적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연애기간 동안 더 성숙해지려는 자신의 노력일겁니다. 이런 경험을 거친다면, 정말로 님께서 바라는 오래갈 수 있는 사랑, 오래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따뜻한 사랑 맞이하시기를... ^^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짧은 연애는 두려워요…진득한 사랑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누르면 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