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준, 무엇일까?

육아휴직, 해도 될까요?

by 양승광

Q.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7살 딸을 둔 엄마입니다. 첫아이를 낳고부터 쭉 집에서 아이를 키우다 둘째가 15개월 되던 때에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해 두 아이를 모두 친정엄마한테 10개월간 맡기고 공부를 했습니다.


첫아이한테도 미안하지만 젖 떼고 맡긴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네요. 지금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내년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2년 정도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이사하여 온전히 아이들하고만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학교에도 데려다 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같이 산책도 하고…. 시험기간에 같이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을 더 늦기 전에 씻고 싶고 아이들과의 정서적 거리도 더 좁히고 싶습니다. 하지만 2년간 육아휴직을 하면 동기들보다 더 뒤처진다는 압박감도 있고, 또 벌이가 줄어드니 집 장만 계획이 2년 뒤로 미뤄진다는 점이 저의 발목을 잡습니다. 속물 같은 생각이지만 남들처럼 새 아파트 사서 대출금 갚아가며 그냥저냥 사는 게 나을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생각했던 것만큼 시골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후회가 될까 걱정도 됩니다. 하루에도 열두번 생각이 바뀌고 무엇이 제 인생에서 최선일까 아무리 고민해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 판단이 서질 않네요. 진심으로 도와주세요.



Photo by Jordan Whitt on Unsplash

C. 우리는 항상 최선의 길을 찾지만, 인생사에서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요. 같은 상황, 같은 시점에서 동일한 결정을 내린다해도 그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달라져있으니까요. 어찌보면 우리 삶에서 선택이라는 것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달래주기 위해 신께서 친히 내려주시는 선물일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선택은 포기의 다른 말이며, 무엇을 취할까는 무엇을 버릴까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있어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을 취하면 내가 너무도 행복하겠다라는 플러스적 측면이 아닌, 이것을 포기해도 과연 괜찮을까라는 마이너스 측면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몇 개의 선택지들 중 그 마이너스의 양이 제일 작은 쪽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게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은 된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들에게 이러한 선택은 차선이 아닌 최선입니다. 그 이상의 모험은 자신이 감내할 수 없는 리스크거든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차선의 선택지를 유심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이 선택으로 인해 자신의 욕구가 완전히 충족되지는 않을지라도, 다른 이들에게 비난이나 충고를 받지 않을 만큼의 선택지. 선택의 주체는 이러한 경우에, 사연에서도 나온 것처럼 “남들처럼”, “그냥저냥” 사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남들처럼”, “그냥저냥”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우리의 욕구는 고민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됩니다. 결국 바람직한 선택, 나의 욕구 충족을 위한 올바른 선택에 있어서는 그러한 위안들을 던져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 선택지를 동등하게 놓는 작업이 간과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사연을 대입하면 ‘공무원을 2년간 휴직할 것인가’만을 놓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2년간 직장을 다닐 것인가’와 ‘향후 2년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것인가’라는 두 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택지를 놓는다면 대개 인간의 속성인 안정지향성을 배제 가능합니다. 안정지향성은 꽤 많은 경우 최선의 선택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caleb-jones-131206-unsplash.jpg Photo by Caleb Jones on Unsplash

그 다음 수순. 고민, 이를테면 양자의 비교형량. 대부분의 경우 한 선택지를 선택했을 때의 플러스적 측면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 반면, 포기했을 때의 마이너스적 측면은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떠오릅니다. 옛말과 같이 남의 떡이 커보이는 현상이라고 할까요? 사연을 보게되면 직장을 그만둘 경우의 마이너스적 측면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는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경우의 마이너스적 측면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후자의 경우는 ‘미안함을 더 늦기 전에 씻고 싶고 아이들과의 정서적 거리도 더 좁히고 싶’다는 플러스적 측면만 묘사되어 있습니다. 결국 한 선택지의 마이너스적 측면과 다른 선택지의 플러스적 측면을 비교하려니 비교가 어렵고, “하루에도 열두번 생각이 바뀌”는 것이지요.


2년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포기할 경우에는 어떤 마이너스적 측면이 있을까요? 구체적인 상상이 가능하신지요? 그렇다면 그것들과 직장을 그만둘 경우의 마이너스적 측면, 즉 동기들보다 뒤처진다는 압박감 및 집 장만 계획이 2년 뒤로 미뤄진다는 점, 을 놓고 선택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선택의 기준. 내가 좀 더 감내하기 쉬운 쪽입니다. 그것이 님에게 있어 최선의 길이니까요. 그럼 선택하는 과정, 마음껏 즐기셨으면 합니다. ^^

* 몇 년 전, 한겨레에서 토요섹션으로 <3D 입체 마음테라피>라는 제목으로 지면상담을 꾸린 적이 있습니다. 독자가 하나의 고민을 보내오면, 세 명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답을 하는 컨셉이었습니다. 여차저차한 이유로 저는 그 고민들에 대해 개인적인 답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한 기념으로 그 때 쓴 글들을 여기에 옮겨 연재합니다. 참고로 이번 고민이 실린 원기사는 <공무원 휴직하고 아이들과 시골행… 망설여져요>(누르면 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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