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남들은 꿈도 안 꾸고 잔다는데 나는 매일 꿈을 꿀뿐더러 컬러풀하다.
딸이 태어나기 전 태몽은 뱀꿈이었다. 가늘고 하얀 뱀들이 인삼 밭에서 무리 지어 기어 다니고 고목 아래서 우글우글 모여 있는 꿈이었는데 전혀 징그럽지가 않았다. 꿈이 조금 특별한 거 같아 꿈 풀이를 검색해 보니 딸이 태어날 태몽이라고 했다.
정말로 몇 달 후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딸이 태어났다.
아들은, 끝이 안 보일 정도의 푸른 보리밭에서 가운데로 길게 뻗은 곧은길을 걷고 있었다. 조금 후 오른쪽 원두막에서 기다란 하얀 수염에 치렁치렁한 하얀 장삼을 입은 한 노인이 6~7세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노인은 그 사내아이를 내게 넘겨주었다. 나는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노인에게 샘물이 있는 곳을 가리켜 달라고 했다. 노인이 지팡이를 들어 앞쪽 산을 가리키는데 산 아래 계곡에 엄청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그 계곡에 고여 있는 물은 거울 처럼 맑고 파랬다. 나는 노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 사내아이와 함께 산 아래 계곡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청보리 같이 지혜롭고 샘물처럼 맑은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꿈...
나는 거의 매일 밤 총천연색 꿈을 꾼다. 그리고 꿈과 관련한 예감이 맞을 때가 종종 있다 보니 꿈에 대해 남다르게 생각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시 꿈을 기억하지만 대부분은 가족과 아침 시간을 바쁘게 보내다 보면 잊어버린다. 그러나 식구들이 각자 또 다른 삶터로 옮아 가고 혼자 남겨졌을 때 '아! 어젯밤 꿈이...' 하면서 생생히 떠오른다
꿈이 삼한 날은 영 찜찜해서 꿈풀이를 검색해 본다. 기분 좋은 꿈을 꾸는 날은 별로 없지만 어쩌다 그런 꿈이 있어도 검색해 본다. 인터넷 꿈풀이는 너무 도식적이고 관습적이라 실상은 별게 없고 누구라도 짐작할 만한 풀이 여서 식상하지만 그래도 한 10 내지 20% 정도는 참고할 만하다.
꿈에 대해 뭔가 남다르다고 느낀 것은 같은 꿈을 몇 년 동안 계속 꾸고 나서부터이다. 기분 좋지도 않은 꿈을 일주일이면 두세 번씩 몇 년 동안 꾸는 사람이 있을까그때 나는 혹여 그런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같은 꿈을 몇 년씩 꾸기도 하나요?" 하고.
그런 적이 없다고들 했다. 대부분은 아침에 눈을 뜨면 생각이 안 난다거나 심지어는 꿈을 전혀 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햐!~어떻게 꿈을 안 꾸죠?"
기억이 안 난다는 것도 살짝 이해가 안 가는데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믿기지 않을뿐더러 사람이 그럴 수 있나 싶었다.
같은 꿈을 몇 년씩 자주 꾼 다는 얘기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혹여 나한테 정신이상 증상이라도 있는 것처럼 비칠까 봐...
같은 꿈을 일주일 이면 두세 번씩 몇 년 간, 정확하진 않지만 5~6년 가까이 꾸었다.
지금 뒤돌아 보면 그 정도면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 봤어야 했었는데 그걸 생으로 참아 넘겼으니 너무 미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꿈은 남편이 나를 버리고 떠나는 꿈이었다.
그 당시 남편과의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도 때로 다툴 때도 있었지만 좋을 때가 더 많았을 때였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을 때도 그런 꿈을 꾸니까 '개꿈이다'라고 무시해 버렸지만 시도 때도 없이 자주 꾸니까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그 꿈을 꾼 날은 하루종일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하거나 피곤했다.
하루 종일 꿈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 아이들 조차 세심하게 돌봐 주기가 힘들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일찍 퇴근을 하면 겨우 꿈의 사슬에서 벗어났지만 그날 밤 또 그 꿈을 꾼다.
남편한테는 창피해서 말을 못 했다.
자기를 의심하냐고 화를 낼까 봐... 근거도 없이 그런 꿈을 꾸고 꿈으로 자기를 의심한다고 황당해하고 기가 막혀할 것이 뻔하니까.
꿈에서 남편은 항상 나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니면 다른 여자를 찾아 떠나거나
내 앞에서 다른 여자 편을 들거나
어떤 여자가 불쌍하다며 안쓰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며 나를 억지로 떼어내고
인정사정도 없이 뿌리치고 사라진다.
나는 그런 꿈이 몸서리치게 무서웠다. 꿈속에서도 꿈에서 깨어나서도...
울다가 깨어난 적도 있었고 깨어나서 운 적도 있었다.
생시인지 꿈인지... 생시가 꿈인 거 같기도 하고 꿈이 생시인 거 같기도 했다.
내 힘으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적 꿈이라는 걸 알았지만 누구에게도 도와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네 스스로 만든 꿈을 내가 어떻게 도와?라고 황당해할 것이 뻔하니까. 그리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 것이 뻔하니까.
원인도 대책 없이 몇 년 간을 꿈에 무방비로 시달렸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온 가족이 함께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교회를 다니고 얼마 후에 신기하게도 그 꿈을 꾸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엇!' 하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어 달 그 꿈을 꾸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나가고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거기에 몰두하다 보니 그 꿈을 안 꾼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꿈을 꾸지 않으니 마음도 몸도 너무 가벼웠다. 꿈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교회가 나와 잘 맞다고 여기고 점점 열심히 다니게 되었다.
다행히 남편도 아이들도 잘 적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부터 우리 부부는 거의 다투지 않았다. 갈등과 대립이 없었다. 아이들도 인정했으니까.
"우리 부모님은 교회를 다니고부터 한 번도 싸우지 않았어요"라고 교회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으니까.
우리 가족이 다닌 교회는 우리 부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부도 그랬다. 싸우지 않는다는 걸 안다.
가족 중심 교회이고 '가정은 지상의 천국'이 모토였다.
또 '훌륭한 형제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자매가 있다'라며 아내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삶의 최고의 미덕으로여겼기 때문에 아내를 무시하거나 다투는 일을 극도로기피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닐 동안은 평화롭고 행복했다.
남편이 그런 분위기를 잘 받아들이고 동화되는 모습을보며 이제 모든 불안과 불행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다가 기꺼이 기쁘게 죽음을 맞이하면 된다고생각했다.
그러나.
행복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행복했던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었다.
거기에 만족하자.
더 바랬다면 그것도 욕심이었나 보다.
10여 년간 교회를 다녔으니까 그동안은 갈등도 다툼도 없었으므로 사랑받고 존중받았다고 여겼으므로 그거 라도 어딘가...
다만 아쉬운 것은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 10여 년의 시간 동안 자기 성격을 바꾸지 못했던 남편에 대한 애처로움이다.
그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고 또 사람이 변할 수도 있다는 모범을 보여 줄 수도 있었는데 자신도 나름 노력을 했을 텐데 그걸 어느 날 갑자기? 아니다 어느 날부터 서서히 버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교회 다니기 이전의 모습으로 아니 더 안 좋은 모습으로 회귀했다.
서서히 돌아가고 있을 땐 눈치를 못 챘는데 결정적인 순간이 왔을 때 그러니까 이 사람이 예전 모습보다 더 안 좋아졌네라는 걸 캐치했을 때의 당혹스럼움이라니.온몸으로 꽉 부여잡고 있던 멘탈이 모래 알로 변하며한 순간에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아!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더니...성격은 변하지 않는단 말을 뼈 속 깊이 체감했다.
도대체 요즘 어떤 사람들과 만나고 다니기에 이렇게 이기적이고 거칠어질 수가 있나 싶었다. (궁금해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어떤 여자였다.)
거짓말이 또 시작되고...
허세 부리고
눈치 살피고
불평불만에...
맘에 안 드는 사람에겐 욕을 하고 미워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 간 아니 더 안 좋게 돌아 간 그 사람을 보며 또한 생각했다.
이제 행복 끝 불행 시작이라고...
그리고 소름 끼치게도 10년 전에 꾸던 그 악몽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남편이 교회를 떠나고 심하게 다투던 어느 날 너무나 이상해서 남편에게 물었다.
"교회 다닐 때는 우리 좋았잖아. 그때는 날 사랑했었잖아"
그 말에 남편은 "그땐 억지로 참았었어"라고 냉정하게잘라 말했다.
10년이 넘도록 모범 가정으로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는데 그게 가짜고 연기였다고? 꿈보다 더 꿈 같은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