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햇빛이다.
맑고 투명하고 바다향을 살짝 품은... 비록 따갑지만 너무나 은혜로운 따가움이다.
우리 집은 동남향이어서 빛이 이른 아침 안방부터 시작해 오후엔 거실 그리고 늦은 오후엔 주방까지 골고루 들어왔다.
한 번은 도시 친구들이 놀러 와서 "너는 실내에서도 선크림을 꼭 바르고 있어야겠어"라고 말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동향이었는데 양 옆과 뒤가 다른 동으로 꽉 막혀서 아침에 잠깐 빛이 들어오고 나면 그 후엔 종일 어두컴컴해서 낮에도 주방 쪽은 형광등을 켜야 했다. 빛이 늘 부족해서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우울했다. 그러다 강화도로 이사 와서 낮 3시, 4시까지도 온 집안이 환하니까 공기가 부족한 데서 살 다 온 사람처럼 숨통이 트이며 살 거 같았다.
가을 문턱이라 바람에 살짝 차가운 기운은 들었지만 햇빛만은 찬란하게 내리쬐던 어느 날 오후.
데크로 나가 책을 읽을 까 어쩔까 생각하며 허브 차를 준비하고 있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현관문을 두드리려면 작고 낮은 대문을 열고 마당을 조금 걸어 들어와야 하는데 대문에서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곧바로 현관까지 왔다는 걸 의미했다.
소현이 할머니인가? 소현이 할머니라면 나를 찾을 때 미리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지나는 길이라면 대문 밖에서 냅다 "선희(내 딸 이름)야!"하고 부르는데...
찻잔을 내려놓고 얼른 가서
"누구세요?"라고 물었다. 아직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지라 상황 파악이 안 되기 때문에 문부터 덜컥 열지는 않았다.
"요 앞에 인삼공장에서 왔어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안심하고 문을 열었다.
동네 어귀에 있는 인삼 공장. 마을 어귀에서 이 공장을 지나야 우리 집으로 올 수 있고 우리 집과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는 1층 짜리 조립식 가내 수공업 공장이다.
소현이 할머니 말로는 인삼차를 만드는 공장인데 사장 부부와 동네 사람들 몇몇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 공장에서 내 나이 또래 비슷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무슨 일이신데요?" 하고 물었다.
"공장에 일 할 사람이 필요해서요. 혹시 시간이 되시면 일하러 오시라고요."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느닷없는 제안을 하고 있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대답을 바로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자 아주머니는 더 자세히 말했다.
"직원 한 분이 아파서 갑자기 나갔어요. 저녁에만 잠깐 일하면 돼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너무 갑자기라...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하고는 아주머니를 돌려보냈다.
일 할 사람이 어지간히 급히 필요해 보였다.
이럴 때, 동네 일에 대해선 무조건 소현이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된다.
전화를 걸었다.
"언니, 갑자기 인삼차 공장에서 사람이 와서 나보고 일하고 싶으면 나오래요"라고 말했다.
"어~그래? 나가 봐. 그렇게 힘들지는 않대. 거기 가서 동네 사람들 하고도 사귀면 좋지 뭐"
소현이 할머니 말을 들으니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다음 날 저녁 7시에 공장으로 갔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공장 안은 넓고 깨끗했다. 일하는 사람은 사장 부부와 우리 집 옆 텃밭 주인 며느리와 내가 모르는 동네 여자분 한 분이 더 있었다. 그리고 아파서 나간 분과 젊은 남자 직원 한 명 이렇게 여섯 명이 일 하고 있었다.
우리 집으로 왔던 사람은 사장 사모였다.
나를 보자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무척 반가워하며 공장 여기저기를 데리고 다니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7시에서 10까지 토, 일요일 빼고 주 중에 3시간씩 일하는데 일은 간단했다. 과립으로 된 인삼차가 봉지에 담겨 나오면 그걸 세어서 작은 박스에 30개씩 담으면 된다. 그리고 그걸 다시 30개씩 더 큰 박스에 담고 그걸 또 더 큰 30kg짜리 박스에 담으면 된다는 것이다.
'뭐 이렇게 쉬운 일이?" 페이는 시간당 육천 원이었다.(그 당시 최저시급 보다 조금 더 많았다.)
밤에 혼자 TV 보며 시간 죽이느니 여기 와서 용돈 벌며 놀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나서 처음 공장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시골에는 이런 소소한 일거리도 다 있구나 싶었다.
시골에선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가을이 되어야 돈을 만져 볼 수 있다.
봄에는 숨죽이고 조용히 일만 하고 텃밭 수확물로 한 여름을 난다.
가을에 와서야 수확물을 거둬들이고 그걸 팔아서 목돈을 만진다.
그때 잠깐 숨을 돌리고 집 안에 필요했던 물건들을 장만한다. 고장 난 에어컨도 바꾸고 작아서 답답했던 tv도 바꾸고... 집 고치고 빚 갚고... 저축할 여유까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골은 일 년 중 가을에 한 번 목돈을 벌어서 빚 갚고 봄에 다시 빚내서 농사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농가가 그런 싸이클로 돌아간다.
구청에선 그러한 지역 주민들의 생계형 취업을 위해 저렴한 땅 값과 세금과 각종 혜택이 주면서 적극적으로 공장을 유치하고 지역 주민 우선 채용의 조건을 반드시 적시한다.
주민들이 공장에서 일하고 매달 받는 월급은 농사짓는 농민들 입장에선 보릿고개 같은 농한기를 스트레스 없이 넘어 가게 하는 메마른 땅의 단비 같은 존재다.
나는 그 인삼 공장을 5개월가량 다녔다.
인삼 공장이 확장을 한다며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물론 동네 주민들도 그만두었다.
공장은 정문에 "FOR SALE" 팻말을 내걸었다.
직원들이 모두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