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노화 Oct 17. 2024

사랑과 동정 그 모호한 경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복수


동정심만으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랑하기 때문에 동정심이 발동한 것일까 동정심 때문에 사랑이 더욱 깊어진 것일까?

아직도 거기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그와 결혼한 것이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는지 동정심이 사랑의 촉매 역할을 한 것인지... 그 둘 다 인지...

동정심은 사랑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서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한 상황으로 볼 때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

함께 해주면 그가 감당하고 있는 불안 초조, 막막한 미래, 따돌림 등등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되고 힘을 보태면 함께 돌파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결혼 전에는 그래도 그의 처지보다는 내가  조금 더 좋은 상황에 있었다.

그는 후배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세뇌시킨 죄목으로 국가보안법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1여 년을 살다가 그다음 해에 3.1절 특사로 석방되었다.

3.1절 특사로 석방된 다음 날 환영식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그때는 눈이 옆으로 쭉 찢어지고 살벌한 독기를 품은 그와 결혼을 하게 되리라곤 짐작도 못했다. 그렇게 굴곡진 인생을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리라곤 말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는 그 당시 아무 곳에서도 취업을 시켜 주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6여 년을 백수로 지냈다. 

그러니까 나는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살이까지 한 백수와 결혼을 한 것이다.

집안 어른들과 스승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누가 봐도 순한 양처럼 굴다가 처음으로 인생 반역을 일으켰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주위의 반대를 무시하고 내 뜻대로 밀고 나갔다.

그런 의연한 용기는 다른 곳에서 발휘했어야 했다.

예를 들면 '꿈'이라든지 '공부'라든지 아니면 '장래 희망'이라든지 하는 곳에서 말이다.

그런 거 품고 있고 가능성 다 열려 있었는데 헌신짝 버리듯 내 팽개치고

귀신에 홀린 듯이.. 그다지 간절히 원하지도 않았던 결혼이라는 역에 운명을 내맡긴 것이다.


역사에 '그랬더라면'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동정심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똑바로 구별도 못하는 애송이가 어른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기 뜻을 꺽지 않았다.

무리수는 반작용을 낳는다.

순리에 역행하니 역시 부작용이 심했다.

한 때는 내 선택이었으니까 감당하겠다고 았지도 않은 오기까지 부렸다.

지금까지의 모든 말과 행동으로 볼 때 고집과 아집과 오기와 불안에 떨고 화를 내고 자존감 바닥치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온갖 추태를 다 부리며 살았다.

그를 만난 후 시계를 오로지 그에게 맞추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쳐 놓은 울타리 안에서 유영하듯 자유롭게 편하게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그가 주는 먹이를 먹고 그가 주는 생각을 하고 그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며.

누구의 통제나 간섭도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내가 어떻게 그가 쳐 논 울타리 안에서는 한 번도 이반을 꿈꾸거나 탈출하려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도 의아하다.


결국 오기라 아니라,

실제로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감당까지 했다.

일찌감치 철이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뼈아픈 자책을 했다.

몇 번이나 되돌리고 싶었는지... 아무리 자책을 해도 상황은 나아지거나 변하지 않았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신의 영역이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자의 운명은 결코 순조롭지 않다.

신과 인간의 경계 앞에서 지독히 쓴 맛을 봐야 했고 운명은 결코 거스를 수 없음을 깨달으며 신의 손에 맡기고 그가 설치한 무대에서 나는 내려왔다.




이전 06화 태어나서 처음, 공장에 가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