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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화 Oct 22. 2024

명상과 기 수련 선생님을 만나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남편은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뜬금없는 말과 행동으로 놀라킬 때가 많았다.

남편이지만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무술을 좋아한다고 했다가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가 등산, 테니스, 당구, 골프, 자전거... 거기에 돌아가면서 한 번씩 빠져서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며 시간과 열정을 쏟고는 했다.

그렇지만 말이지 취미 생활도 하고... 삶에서 중요한 거야... 그렇게 생각해 주기로 했다. 온종일 5살 8살 된 두 아이를 돌보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느라 내 시간이라고는 한 시간도 가져 보지 못하는 나도 그런 아량쯤은 베풀 줄 알았다. 

나는 두 아이를 예쁘게 키우는 거 외에 다른 것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성격적으로도 사람을 만나거나 취미 생활을 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적나라하게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도 없었고 체력도 따라 주지 않았다.

주말에라도 남편이 아이를 맡아서 돌봐 주거나 집안일을 도와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어쩌다 한 번이었고 자신의 취미 생활과 친목도모를 위해 집을 나가는 일이 많았다. 온 정신을 집 밖의 것들에 두고 사는 사람 같았다.


유명 여성 잡지를 보다가 거기에 소개된 어떤 분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명상을 하는 분이었는데 강원도 오대산에서 혼자 살면서 득도하고 명상과 기 수련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이 흥미로와서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자세히 읽어 보고 남편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너무 활동적이라 명상같은 차분한 활동엔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그분을 만나보겠다고 했다.

아! 이게 또 무슨 뜬금없는 짓인가 싶었지만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가 해보겠다거나 하겠다는 일을 말려 본 적이 없어서 내버려 두었다.

남편은 주말 토요일에 혼자서 그분을 만나고 돌아왔다.

불쑥 찾아 간 터라 그 분과 길게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명상에 대해 짧게 얘기 나누고 다음에 아내와 함께 오라는 말을 듣고 헤어졌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내와 같이 오랬다며 같이 가자고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정말 2주 후에 남편과 함께 오대산에서 명상으로 득도를 했다는 분을 만나러 갔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명상 선생님...

우리는 그분을 간단히 '류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명상으로 득도를 했다는 분은 어떤 모습일지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궁금하고 긴장마저 되었다.

월정사 가기 전 오대산 자락 아래 야트막한 언덕을 길게 따라 올라가는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허름한 강원도 너와집. 지붕의 너와를 없애고 양철판으로 바꾼 것 외에는 오래되고 낡았는데 양철판도 오래되었다.

문이 세 개. 두 개는 안방 문과 작은 방 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부엌문이었다.

부엌문은 나무를 길게 짜서 만들었고 오래돼서 약간 틀어져 있고 틈이 많았다. 두 개 방문도 약간 틀어져 있어 겨울이 걱정되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한지를 바른 격자문이 활짝 열리며 류 선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 긴장이 되었다.

짧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피부 그리고 작은 키에 말랐지만 단단해 보였다. 명상으로 득도를 한 분이라 그런지 사람을 바라보는 눈매가 깊고 예리했다.

이 분 앞에서 말 잘못하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진의를 들킬 것 같은. 

선입견인지 분위기가 보통 사람과는 뭔가 다른 거 같았다.

나는 짧게 목례만 하고 류 선생의 눈빛을 피했다. 

그날은 우리 가족(두 아이도 데리고 갔다)만 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먼저 선생님을 알고 지내던 두 가족이 와 있었다. 두 가족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그분들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 가족은 신혼부부였고 또 다른 가족은 딸이 둘인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가족이었다.

통성명을 하고 어디 사는지 물어보고... 애들이 귀엽다 이쁘다 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류 선생님은 툇마루 아래 쌓여 있는 땔감을 몇 개 가져와 마당 한가운데 있는 두껍고 널따란 돌판에 불을 지폈다. 

삼겹살을 구을 건데 두꺼운 돌이 달궈지려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며 미리부터 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진 풍경이었다. 

돌판이 달구어지는 동안 우리 가족은 동네 구경을 했다. 그 집 주변으로 20M 떨어진 곳에 이 집보다 더 낡은 집이 한 채도 더 있었고 나머지는 다 감자 밭이었다. 5월 중순경이라 감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선생님은 별로 말이 없었다. 과묵한 선생님 대신 우리 또래라고 했던 부부 중 남편 되는 양반이 종알종알 말이 많았다. 윗트와 유머까지 풍부해 같은 말도 참 재밌고 웃겼다.

그분의 말이 끝날 때마다 내가 까르르까르르 웃자 그분은 더 신나서 좌중을 웃겨댔다.

그분을 오선생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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