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당신은 좀 가벼워질 필요가 있어"
어느 날 류 선생님이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찾다.
"에? 제가 무겁다는 거예요? 나는 놀라며 되물었다.
류 선생님은
"미간 좀 피고. 어깨도 너무 움츠리지 말고. 숨을 깊게 쉬어 봐"라고 말했다.
나는 어깨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내밀었다. 자연히 허리가 뒤로 젖혀지며 등뼈가 펴졌다.
"이렇게요?"
"그렇지. 숨을 쉴 때 횡경막을 열어"
횡경막을 열라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횡경막으로 숨을 안 쉬네. 횡경막으로 숨을 크게 깊게 쉬면 살도 좀 찌고 편안해질 텐데"
횡경막으로 숨을 쉬라는 말은 복식호흡을 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몸무게가 42~3 kg 정도밖에 안되었다.
아무리 먹어도라고 하기는 그렇다. 잘 먹질 않았으니까. 먹어야 살이 찌지... 잘 먹지도 않고 잠도 잘 못 자는 상태에서 종일 두 아이 뒤따라 다니느라 종종 대니 살이 찔 리가 없다.
가슴 위 목구멍으로만 헐 떡 헐 떡 대니 늘 숨이 차다. 그래서 살도 안 찌는 것이라고 했다.
류 선생님도 나의 불안증세에 대해서 이해를 잘 못 하는 거 같았다.
불안해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자네는 왜 늘 그렇게 불안하지?"
"힘들어요. 숨쉬는 게 힘들어요"
류 선생님은 "욕심을 내려놔"라고 말한다.
'욕심이라니요? 제가요? 제가 욕심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남편과 결혼을 안 했을 거예요.
결혼할 당시 남편은 백수였는데...' 속으로만 말한다.
내 답답함의 원인은 그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
겉과 속이 다르면 어떻게 되는 지를 아는지... 일단은 본인은 그걸 모른다.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본인이 이중적인 사람이란 걸 인정 안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종종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자신이 상처 받아 본 적이 없어서...
"마음이 아팠어"라고 말하면 "엉?" 하면서 "뭐지?" "왜?"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래서 저래서... 그래서 아팠어라고 설명하면 다 듣고 나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리고 말없이 자리를 뜬다. 자기가 불리할 땐 표정이나 태도로 말한다.
'무시하겠다'라고
나는 속으로 내가 또 자존심을 건드렸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생각을 알고 싶어서
"뭐라고 말 좀 해봐"라고 말하면 굳은 표정으로
"그게 상처받을 일이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되면 나는 말을 안 꺼내 놓으니 만도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더 악화되기 일쑤였다. 더 쌓였다.
쌓이고... 쌓이고... 쌓여... 바닥에서는 썩고. 썩은 것이 점차 올라오면서 잘 익은 부엽토 마냥 형체가 부스러져 버렸다. 반복적으로.
"선생님. 답답하고 우울해요"
"에구... 정신 바짝 차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정신을 못 차리게 해요. 너무 혼란스러워요"
"애초에 만날 수 없었는데... 당신이 더 좋아했고... 점차 좋아질 거야. 기다려 봐"
좋아지지 않았다. 아니 더 악화되어 갔다.
류 선생님이 잘못 봤다.
류 선생님도 그에게 속은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범생이처럼 행동하니까 귀신도 속는다. 여자들까지 속인다.
그래서 '이토록 다정 다감한 사람이 내게 관심을 보이고 챙겨 주구 좋아해 주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제발 그러지 마. 내 앞에서 다른 여자들에게 왜 관심을 보여?"라고 말하면
"그럼 나는 불쌍한 여자 돕지도 못해? 그게 또 바람이야?"라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돌아온다.
'뭐가 불쌍하지? 남편도 있고 돈도 있고... 남 부러울 게 없는 여자인데... 불쌍하면 내가 더...'
이 말을 할까 말까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차마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그래서 또 내가 나쁜 놈이라는 거야?" 라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거기에서 다툼이 멈췄다. 멈춰야 했다.
여자인 아내가 어떤 상처를 받는지도 모르는 사람과 다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사람처럼 냉정 맞다.
어쩌다 자기 피를 보면 승냥이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자기 상처는 바늘구멍조차도 못 견디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