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명상으로 득도를 했다는 류 선생님은 말이 많거나 가리키려 드는 분이 아니었다.
질문을 하면 거기에 대해서만 짧게 대답해 줄 뿐.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답답해서 그를 찾아오고 그동안 꽉 막혔던 삶을 세세히 설명하고자 하니 말이 많고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말이 많고 질문이 길어도 류 선생님의 대답이나 해답은 짧고 명확했다.
"아유~ 그걸 왜 그렇게 생각하나?"
"당신 기가 세니까 꼬이는 거야"
기가 센 것이 항상 문제였다.
나를 보고도 그랬다. 기가 세다고... 뭐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기가 세다는 건 나쁜 의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답답함이 센 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기가 센 것이 나쁜 건가요? 기가 세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렇다면 기가 약한 것이 좋은 건가요?"
나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했다.
류 선생님은 "기가 약하다고 좋은 것도 아니야"라고 말했다.
"당신은 온몸으로 기를 모으고 있어. 기를 쓰고 있다고. 기가 세다는 건 그런 걸 말하는 거야"
(류 선생님은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이라고 불렀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같았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념과 잡념들을 밖으로 내 보내지 않는다. 숨 막혀 죽기 일보 전까지 속으로 속으로만 꾸역꾸역 쑤셔 넣는다. 기가 세다는 것이 그런 걸 말하는 것이라면 내가 기가 세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주위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내 생각 따위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처한 현실을 이해해 줄 사람도 없을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사람을 피하고 말이 줄었다.
그런데 류 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싶었다. 진짜 득도를 한 걸까?(난 류 선생님이 득도했다는 말을 고지 곧대로 믿지 않았다.)
아! 류 선생의 나이는 50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50살에 득도를 했다면 천재인가? 싶을 정도로 이른 나이지만 그때는 내가 젊었으므로 50이 굉장히 많은 나이 같이 보였다.
류 선생은 먹고 마시는 걸 즐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는 사람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다.
마당 한가운데서 돌판에 불을 지피며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져온 술과 고기로 밤이 새도록 먹어댔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 보면 빈 소주병이 두어 박스나 나 뒹글고 있었다.
신기했던 것은 그렇게 술을 먹어도 실수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두 언제 술을 마셨느냐는 듯이 생생하고 멀쩡했다.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하나도 안 취한 거 같아요" 하고 말하면 류 선생님은
"내 집에서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요 고기가 고기가 아니요"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라고 했다. 보통은 밤새도록 술과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류 선생님은 뱃살도 하나 없다. 아니 술 살...
방문하는 사람들과 2박 3일 어울리며 놀다가 그들이 돌아가면 류 선생님은 하루종일 걷는다고 했다.
걸으며 명상을 한다고 했다. 명상을 걷거나 앉아서 또는 누워서도 한다고 했다.
명상을 따로 시간 내서 하지 않는다고 생활이 명상이라고...
조금 친해지자 명상은 호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복식호흡하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혀를 말아서 입천장에 대고 단전을 의식하면서 들숨 날숨을 천천히 규칙적으로 쉬라고 했다.
숨을 너무 세거나 급하게 쉬면 상기가 되니 조심하라고 했다.
그가 가르쳐 준 데로 집에서 혼자 명상을 해봤다.
처음엔 10분 앉아 있기도 힘들었는데 갈수록 시간이 20분. 30분, 40분... 늘더니 나중에는 최고로 1시간 30분도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꾸준히 명상을 했다.
명상을 하는 동안 나타난 현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흔들리는 것이었는데 처음엔 놀라서 안 움직이려고 몸에 힘을 세게 주었다. 그리고서 류 선생님을 만났을 때 이게 무슨 증상인지 물어봤다.
"축하해!"라고 말했다.
"좋은 현상이야. 억지로 멈추려고 하지 말고 움직이는 데로 내 맡겨."
"그리고 양손을 둥글 개 모은 뒤 포개었다가 살살 위아래로 벌렸다 좁혔다 해 봐"
나는 그렇게 했다.
"양 손바닥에 느낌이 있지 않아?"
나는 손바닥에 무슨 느낌이 있는지 느끼려고 정신을 집중했다.
조금 있으니까 손바닥에서 묵직한 느낌이 났다. 손바닥에 어떤 물질이 있는 거 같았다. 뭉글뭉글한...
"엇! 느껴져요."
"그게 기야. 손바닥 안에 기가 모인 거야. 자주 해 봐. 재밌어."
류 선생님이 가르쳐 준 데로 명상을 할 때 몸이 흔들리는 증상을 의식하지 않고 흘러가는 데로 두었더니 처음엔 앉아 있었는데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일으켜 세워지더니 팔과 다리가 부드럽게 자유자재로 움직이는데 마치 느리게 춤을 추는 거 같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명상 춤을 추다가 멈췄는데 너무 오래 하면 기가 빠져나간 듯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10분 정도 춤을 추면 틀어졌던 뼈가 맞춰진 거 같이 시원하면서 몸 안의 노폐물이 빠져나간 듯 상쾌해졌다. 그러면서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머리가 맑아졌다.
명상을 한 뒤로 크게 웃기도 하고 사람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소소한 대화도 나누게 되면서
위축되어 있었던 심신이 서서히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