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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화 Nov 05. 2024

시간이 모든 걸 알게 할 게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강화도에서 8년가량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 하면 망설이지 않고 좋은 친구를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

강화도가 수도권에서 가까우면서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많은 유적지, 명승지 그리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집과 예쁜 카페들이 즐비하다 보니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지만 홀로 외롭게 지낸다면 그 혜택을 맘껏 누리기 어렵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오로지 땅을 밟으며 살다 죽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강화도로 왔지만 좋은 친구들이 없었다면 심심하고 또 외로왔을 것이다.

이사를 하고 2년가량 지났을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여성복지 회관에 등록하고 천연염색이나 퀼트, 미싱, 규방자수등을 배우면서 친구가 많아졌다. 그중에서 미영이 그리고 순영이 언니와 가장 가깝게 지냈는데 미영이는 나와 나이가 같고 순영 언니는 나보다 4살 많았다. 

좁은 강화도 바닥에서 토박이인 두 사람을 6년 정도 만났으니까 서로 간에 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는 아니어도 네 살림 내 살림할 거 없이 속속들이 알게 되고, 음식도 자주 나눠 먹다 보니 식성까지 비슷해져 갔다. 

두 사람 다 기본 성격은 진실되고 정이 많다. 그러나 표출되는 양상은 조금 다르다.  미영이는 직설적이면서 강하다면 순영언니는 부드러우면서 강하다. 

그리고 순영언니는 점장이 처럼 사람 속을 꿰뚫어 보는 끼가 있어 종종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셋 중 제일 말이 많고 빠른 사람은 미영이다. 내가 제일 말이 없다. 셋이 만나면 주로 미영이가 분위기를 주도하다 보니 어쩌다 그녀가 빠지면 허전하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만났다. 만나면 주로 맛집이나 예쁜 카페로 가서 두어 시간 수다를 떨다 왔다.

미영이와 순영 언니에겐 애처가 공처가 남편들이 있다.

두 남편들의 공통점은 아내와 한 시도 떨어지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미영이는 남편과 같이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하루 온종일 둘이 붙어 지낸다. 미영이는 외출을 하고 싶어도 남편의 점심을 꼭 챙기고 나온다. 중요한 모임일 땐 "알아서 챙겨 먹어요"하고 나오기도 하지만 될 수 있으면 남편의 식사를 챙긴 후 외출을 한다.

골프도 같이 치러 가고 해외여행도 같이 다니고 하다 보니 일 년 열두 달 하루도 빠짐없이 붙어 있는 거 같다며 볼멘소리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냥 하는 소리 같고 남편이 자기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에 대해 귀찮아하거나 특별히 불만이 있는 거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 역시 기꺼이 남편 사업을 돕는 현모양처다.

순영이 언니 남편은 공무원인데 언니 말에 의하면 답답할 정도로 일 밖에 모르고 친구도 별로 없고 취미 생활도 할 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언니 바라기다. 아내와 자식 그리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에 공처가이다. 

미영이와 달리 순영이 언니는 남편의 이런 모습에 대해 가끔 답답함을 토로하긴 한다. 

"울 남편은 그냥~~ 내 뒤만 졸졸 따라다녀... 귀찮아. 숨이 콱콱 막혀."라고 말하다가 곧 "에유~ 원래 성격이 그런 걸 어쩌겠어. 답답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안쓰러워. 가족 밖에 모르잖아. 자기를 위해서는 돈 쓸 줄도 모르고 돈이 생기면 자식들 먼저 챙기고 어머니 먼저 챙기고... 딱해. 안 됐어." 라며 측은해한다.

그래서 순영이 언니가 가끔 남편에 대해 구시렁 대도 이제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이런 두 친구는 내 사정을 속속들이 안다.

두 사람은 6여 년을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봤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지는 않아도 다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남편의 바람기가 절정을 치닫고 있을 때. 남편은 자신의 바람 사실을 숨기고 이중생활을 하느라 나를 가스라이팅 하면서 말과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고 비열하게 고조되어 갔다.

그럴수록 나도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 갔고 같이 미쳐 가는 거 같았다.

혼자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어느 날 영순언니에게 털어놓았다. 

"언니, 남편이 이상해... 나한테 너무 못되게 굴어..."라면서 그간 상황을 말했다. 

"바보야~ 네 남편 바람이야! 바람이 아니면 너한테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 

영순 언니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호하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매우 기분이 나빴다. 바람피운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는데 어떻게 저렇게 매몰차게 단정할 수 있나 싶었고 언니 남편이 애처가라서 창피했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두 어번 영순언니에게 털어놨다가 자존심 상한 후엔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일 년 쯤뒤 그 증거, 바람의 증거를 잡게 되었다.

영순 언니에게 "언니, 남편 바람피우는 거 맞았어. 증거를 잡았어"라고 말했다.

"바보야, 너만 몰랐어. 우린 다 알았어. 네 남편 바람이라는 거. 올 것이 온 것뿐이야. "라고 언니가 말했다. 그리고는 

"인정하기 싫었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겠지. 너무 비참하니까... 그 맘 이해해"라고 말했다.

나 만 모르고 있었다니... 참담했다.

자존심 때문에 남편의 바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는 말에도 참담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해하긴 언니는 이해 못 해'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정말 이런 일은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른다.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그 고통은 짐작도 못한다.

내가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증거를 잡고 난 후, 정신적 충격으로 혼이 나갈 지경에 이르렀을 때의 심정은 하늘이 무너진다느니 배신감에 치가 어찌 된다느니 천벌을 받을 것이라느니... 같은 피상적인 말은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 까... 굳이 말로 한다면

내장이 칼로 예리하게 베어지는 거 같은?!

속을 모래로 긁어내는 거 같은?!

너무 아픈데 딱히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고 

머릿속엔 주먹만 한 묵직한 돌덩이 열 개쯤 들어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한 순간에 힘이 다 빠져나가 몸은 종이짝이 되어... 갈갈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거 같고...

그런데 애처가에 공처가 남편을 둔 두 사람이 내 마음을 이해한다고???





진실이 선명하게 드러났을 때 두 사람의 반응이 좀 달랐다. 평소에 두 사람의 성격에 대해 알 던 바와 달리 반대로 나타났다. 미영이는 계속 내 눈치를 살폈고 영순 언니는 칼 같이 단호했다.

"헤어져. 바람피운 남편과 어떻게 같이 사냐"라고 말했다.

내가 이혼할 결심을 못하자 언니는 나한테 크게 실망했다. 

"내 친구는 남편이 바람피운 걸 알고 10분 만에 이혼 결정하고 이혼해 버렸어."라는 말을 하면서 나를 압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못하는 나를 보고 "너는 평생 남편하다 휘둘리다 죽을 거야"라고 말했다.

내 눈치를 살피기는 했으나 미영이도 영순언니와 같은 생각이었다.

"더러워서 어떻게 같이 살아. 헤어질 거지?"

두 사람은 내가 남편과 이혼하길 바랐다.

나는 진정으로 두 사람이 내 걱정을 많이 한 것을 안다.

자기 일처럼 분노하고 자기 일처럼 치를 떨었다는 거.

내가 비정하고 비열한 남편에게 더 이상 가스라이팅 당하며 속고 살지 않기를 바랐다는 거.

또 바람피운 사람하고는 절대로 같이 못 사니까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고 새 인생 찾기를 바랐다는 거.

나는 이혼은 바로 못했지만 바로 별거에 들어갔다.

별거 중에 남편은 선후배나 자기와 친한 친구들한테 자신이 바람을 폈다는 사실은 숨기면서 나를 은근히 

때로는 대놓고 험담하고 다녔다. 

화를 잘 낸다느니... 의부증이 있다느니... 시부모님 욕을 하고 다닌다느니... 스토커 같다느니... 많은 돈을 숨겨 놨다느니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내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기 위해 창피함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고 다녔다.

주변 사람들이 과연 그 말을 믿었는지 모르겠다.

믿은 사람도 있겠고 의심을 한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이는 없었지만 생각만큼 화가 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는 남편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남편과 어울리는 사람들 한테는...

그리고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그 사실을 은폐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아내를 험담하고 다녔다는 사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말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은 언젠간 드러난다.

모든 건 시간이 알게 할 게다.

다른 여자와 몸을 섞은 순간부터 그는 내 인생에서 자발적으로 발을 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다른 여자의 살 냄새를 맡은 남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라고.

그 어떤 말보다고 나를 정신 바짝 차리게 해 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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