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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화 Nov 07. 2024

마을 회의에 참석하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정선의 황토집을 보고 와서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맘에 들었는데... 가격도 적당하고...'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너무 멀고 너무 깊은 산골인 것이 걸려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고 그래도 못내 아쉬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김사장에게 전화를 해봤다.

"사장님 그 집 어떻게 됐어요?" 하고 물었다.

"사모님, 그 집 맘에 드시면 제가 다시 한번 주인하고 통화해 볼게요." 김사장은 내 연락을 받고 반가워했다.

전화를 끊고 한 시간 뒤에 김사장한테 연락이 왔다.

"사모님, 그 집 판다고 하니까 계약하러 내려오세요." 드디어 부부가 팔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맘에 들기는 해도 막상 계약하려니 겁이 나는데 김사장은 기회를 놓칠세라 다른 사람한테 팔리기 전에 빨리 내려오라고 성화를 했다.

"다시 한번 더 보고요" 김사장이 밀어붙인다고 거기에 말릴 수는 없는 문제였다. 한 박자 쉬고 텀을 두었다.

그리고 그 집을 한번 더 보러 갔다.

 다시 갔을 땐 정말 팔 맘을 굳혔는지 여주인이 처음보다 훨씬 부드럽게 대했다.




내가 그 집이 맘에 들었던 이유가 세 가지 정도 있다.

첫째는 집을 짓지 않아도 된다는 거. (강화도에서 집 짓는 현장을 보기도 하고 자기 집을 짓는 사람들을 여럿 봤는데 집 짓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맘에 들게 집을 지으려면 세 번은 지어 봐야 한단다. 근데 여자 혼자 집을 짓는다는 게... 생각처럼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째는 그 집 주변의 경관이었다. 황토집은 어디에도 있을 그저 평범하고 흔한 집이었는데 주변 경관은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거 같은... 신비스러움 마저 들었다.

세 번째는 천연염색을 맘껏 할 수 있을 마당이 있다는 것이었다. 넓은 마당이 있으니 강화도에서는 꿈만 꾸던 천연염색 공방을 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도시에서 살다가 강화도로 이사를 갈 때도 사고팔고 하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정선에 집을 구할 때도 비슷했다. 처음에 집주인이 조금 불친절하게 굴었던 거 외에 어려운 일이 없었다.

마음에 들기도 했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집을 보러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계약을 했다. 그리고 주변에 알리지 않고 혼자서 강화도와 정선을 오갔다. (미영이와 영순 언니한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나 입이 떨어지지 않아 당분간 숨겼다.)

그 집은 지은 지 5년밖에 안 되어 특별히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크게 손 볼 것은 없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쓸고 닦고 해 보니 새 집처럼 깨끗해졌다. 왔다 갔다 하면서 이불이나 간단한 조리도구 부터 조금씩 차에 실어 옮겼다.

황토집 옆 10m도 안 되는 곳에 이웃집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라 무슨 일이 생기면 부엌문 열고 소리치면 되겠다 싶었다.

옆집엔 늦결혼 한 40대 초반의 신혼부부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남편은 농사를 짓고 아내는 사회 복지사로 일하고 있었다. 남편은 정선 사람이었고 아내는 수원 사람이라고 했다. 워낙 작은 마을인 데다 사람이 귀해서 그런지 새로 온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가까운 이웃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하던지...

450m 고지에 있는 두 집은 동네에서 제일 높은 곳이어서 마을을 내려다본다. 아래로 20m쯤 떨어진 곳에 70대 후반의 노부부가 살고 있고  노부부 집에서 또 20m쯤 떨어진 곳에 이장님 집이 있다. 이장님 집 앞쪽에 시흥에서 귀촌한 50대 후반의 남자가 혼자 살고 있었다.

이렇게 다섯 집은 1반으로 비교적 가까웠고 그 외 다른 집은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고 반이 달랐다.




마을에 도시에서 여자 혼자 이사를 왔다고 금세 소문이 났다. 이사를 하고 난 후 정식으로 마을 분들께 떡이라도 돌리며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계획을 바꿔야 했다.

이사를 하기도 전에 소문부터 나버려 하는 수 없이 인사 먼저 올려야 했다. 마을 회관에서 마을 회의가 있을 예정이라는 정보를 이장님이 알려 주어 그날에 맞춰 정선으로 내려 가 동네 어른들을 뵈었다.

20여 명쯤 모였는데 거의 70, 80대의 노인 분들이었고 40,50대의 젊은 사람들은 나와 우리 옆집 신혼부부 그리고 이장님 부부였다.

모두들 마치 외계인을 보듯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할아버지들은 숙기가 없으셔서 나를 똑바로 못 쳐다보았고 할머니들은 여자 혼자 어찌 살려고 이런 산골에 이사를 왔느냐며 걱정했다.

다들 눈치가 빨라 왜 혼자 사느냐 등의 곤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혼자 살 수도 있고 결혼을 안 할 수도 있는 거고 혼자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사생활의 영역이다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이 날 마을 회의에 참석한 주민을 위해 부녀회에서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일손을 보탰다.

메밀 전 부치는 것도 돕고 상 차리는 것도 돕고 식사가 끝난 후엔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한 일은 아니었다. 거의 노인 분들이었고 어른 들이라 한 살이라도 젊은 내가 해야겠다고 했을 뿐인데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에 동네 어른들은 매우 흡족해하며 좋아했다.

일단 첫인상은 좋은 점수를 받은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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