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노화 Nov 13. 2024

시간의 간격을 느낄 수 없다니...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여보세요? 나야 이경아~"

아침잠이 많은 나는 9시가 돼서도 침대서 나오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 전화벨이 울리면 마치 이불속이 아닌 거처럼 몇 번 '컥컥'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아침잠이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침에는 될수록 전화를 안 하거나 부득이하게 되면 10가 넘었는데도 "아직 안 일어났지?" 라며 운을 띤다.

이 날도 영화를 보느라 두 시가 넘어 잤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시간이 9시를 넘어가는 중이었다. 부스스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드니 두둥...

'노민호'라는 이름이 떠 있다.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방금 일어난 게 아닌 거처럼 목청을 '음, 음' 가다듬고 폰을 열었다.

"아~네..." 나는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엉겁결에 존대를 썼다.

"잘 지내지?"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다.

"아 ~네... 아니... 으응 잘 지내" 놀란 가슴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진짜로 연락을 하다니!

"벌써 삼 개월이 지났네. 아버지 장례식은 잘 치렀지? 바로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

그렇네 벌써 삼 개월이 지났네... 아버지 돌아 가신지... 내가 별거 한 지도 삼 개월이 지난 거구...

"... 잘 치렀지. 덕분에. 미안하긴.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고맙긴...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상심이 컷을 텐데"

그의 위로의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울컥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만이 아니다. 얼마 전 선배들과의 모임에서 언짢았던 마음 때문에 또 문득문득 속을 끓이고 있던 중이었다. 

속마음을 들킬까 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경아~ 언제 함 볼까? 맛있는 거 사줄게" 그는 나를 달래 줄 거 마냥 맛난 걸 사주겠단다.

"어? 그래? 맛있는 건 내가 사줘야 지. 내가 사줄게" 부주를 받았으니 답례도 할 겸 내가 사는 게 맞다 싶었다.

"그래 누가 사든... 일단 만나..."




두 번째다.

어릴 적 사진 속 모습이 조금 남아 있는 거 같기도 하다. 몸집은 약간 통통하고 키는 눈대중으로 볼 때 175는 안 넘는 거 같고 머리숱이 많고 이마 위로 살짝 흰머리가 보인다. 염색을 안 한 거 같았다.

그가 보는 내 모습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어릴 적 모습이 남아 있다고 생각할까... 

나는 어릴 적에 동네에서 무척 이쁨을 받고 자랐다. 특히 친척들한테... 5명이나 되는 사촌 언니들은 나를 애완견처럼 데리고 놀았다. 서로 머리를 빗기겠다며 나를 가운데 앉혀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길을 걸을 땐 서로 내 손을 잡고 가려고 끌어당기고... 속눈썹이 길다며 성냥개비 올리기 시합도 벌이고...

그런 추억이 떠올랐다.

자라는 내내 "이쁘다!"는 말을 들었다.

만약에 민호가 어릴 적 내 모습을 기억하거나(기억 못 하겠지...) 그 발가벗고 찍은 사진을 봤다면 내가 어릴 때 얼마나 이쁘고 귀여웠는지 알 테지만... 그 사진에 대해 알고 있을까나...

모직 콤비와 셔츠를 입은 그는 장례식 때와 같이 옷차림이 세련되었다. 외모에 신경을 쓰는 티가 났다.

"사실은 나는... 형한테서 네 소식을 간간이 듣고 있었어" 라며 말을 꺼냈다.

금시초문이다. 민호는 내 소식을 알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동안 그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을까.

"물론 미국에서 살고 사업상 바쁘다 보니 몇 년에 한 번 정도지만... 그래서 너를 만날 기회도 없었어" 그는 아쉬운 듯 말했다.

"이제 그만 한국에 들어오려고 준비 중이야. 그래서 장례식도 갈 수 있었고 너도 이렇게 만난 거지"

아하~그렇구나... 그랬구나. 허긴 민호가 이제껏 미국에 있었다면 날 만날 일이 없었겠다 싶었다.

"넌 어릴 적 모습이 아직 보인다" 그가 먼저 어릴 적 얘기를 꺼냈다.

"너하고 어릴 때 같이 찍은 사진이 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 봤어."

"엇! 혹시 발가벗고 찍은 사진 말하는 거야?" 하고 내가 물었다.

"그 사진 너도 봤구나. 그 사진 속 너를 말하는 거야."라고 그가 말했다.

그 어릴 적 사진을 그도 가지고 있다니... 그리고 아주머니는 돌아가셨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어머~ 그 사진 좀 웃기지 않아?"

"그렇지만 귀엽잖아." 라며 그가 하하하 웃었다. 나도 같이 웃었다.

사진 이야기를 하니  공감대가 형성되며 어색함이 사라졌다.

한 장의 사진 덕분에 수 십 년의 세월이 쭉 이어져 왔던 거처럼 간격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릴 때 동네에서 가족처럼 지냈던 기억이 뇌회로에 세포처럼 남아 있어서 그랬을까.

어째 이럴 수 있는 있나 싶을 정도로...

이제야 그를 두 번째 보는 것일 뿐인데 말이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