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살아오면서 그런 사람을 아주 많이 만났다. 대개는 내 시계를 상대방의 시계에 맞추려고 애를 썼다. 그랬을 때 처음엔 무리 없이 가볍게 되는 거 같다가도 어느 시점부터 바늘이 조금씩 무거워짐을 느낀다. 잘 당겨 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내 바늘을 억지로 끌어다 상대에게 맞추려다 내 시계의 태엽이 끊어지거나 톱니바퀴가 튕겨져 나가 버리고 만다.
여러 번 그런 꼴이 나다 깨닫게 되었다. 어느 시점 (이게 아닌가 싶을 때)에서 멈췄어야 했다고... 나는 왜 그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내 잘못은 그거였다. 된다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한 거. 그거밖에 없다.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겠지라고 생각한 거. 심지어는 보상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최선의 노력을 했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스스로 알면 되었다고.
전혀 존중 받지 못하고 내 노력을 하찮게 여기는 상대를 힐난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어땠는지 아는 것으로 자위했다.
시간이 흘러 흘러 깨닫게 되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참으며 끌고 가기보다는 재빨리 또는 과감히 손절했어야 했다고... 안 되는 건 안된다는 걸 좀 알았어야 했다고..
결국 내 알량한 자만심과 자존심이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았지만 내 자리가 아니었기에 늘 어려웠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나는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학교 때 교회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있다. 남편이 바람 났다고 말했을 때,
"네가 그 선배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다들 그랬지. 이경이가 왜? 이경이가 왜 그 선배 하고?"라고. 선배의 옆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었다라고. 결과론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다들 의아해했었다고.
다들 의아했다는 자리에 자리 잡고서 그게 내 자리라고 믿고 내지는 내 자리로 만들 거라고 발버둥 쳤던 것이다. 미친 짓이었다.
결혼 한 지 4~5년쯤 되었을 때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미치지 않으려면 같이 미쳐야 했다. (앞의 미침과 뒤의 미침은 의미가 다르다.)
그때 미친 척해줌으로써... 이혼의 고비를 겨우 넘기고 안도의 숨을 돌렸다.
'... 잘했어. 정신병원에 가지 않은 게 어디야. 까닥했으면 정신병자 될 뻔했다. 다행이야. 잘했어.'라며 스스로 다독여 주었다.
결혼 생활은 그런 미친 척의 반복이었다.
이제는 좀 남의 시선도 의식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남들이 이상하게 보는 것은 이상한 것이니 재빨리 그 자리서 멈추어야겠다고. 잘난 것도 없으면서 맨날 잘난 척하지 말고... 너 자신을 좀 알라고...
지금부터는 언제 죽어도 아깝지 않을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타인의 시계에 맞추지 말라고.
더 이상 네 감정을 혹사시키지 말라고...
.......
늘 엉뚱한 곳에서 애쓰던 내 시계는 참 많이 닳고 낡아서 모든 부품이 다 헐거워지고 빛을 잃어버렸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진정한 내 자리였던 곳은 마치 기차가 정차하지 못하는 역을 지나치듯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 ...
여전히 나는 내 자리를 못 찾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못하겠다.
‘더 이상 네 자리가 아닌 곳에서 서성거리지 말라‘
그때 거기서 멈추고 나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