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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선일 May 26. 2020

2.  멈춰버린 시간

“능인(能忍) = 잘 참는 사람”

Shape of my heart
멈춰버린 시간

둥그런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주방에서 시작된 비릿한 해산물 향기가 코 끝에 맴돈다. 테이블마다 쏟아내는 수많은 사연들로 실내포차는 아수라장이다. 사람들 사이로 능숙한 이모들의 쟁반 묘기가 계속된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나름 체계적으로 포차가 돌아가고 있다. 복잡한 포차 구석 자리. 나는 풀린 눈으로 멍하니 잔을 기울이며 단체전 속에 개인전을 펼치고 있다.  닭발 한 접시에 소주 한 병. 지나치는 이모들의 애정 어린 잔소리가 들려온다.
“니는 맨날 혼자 오누. 손님들 안주 삼아 맛나게 먹어”
정말 그랬다. 왁자지껄한 손님들의 수다 소리가 제일 맛있는 안주거리다. 나는 그것을 너무 잘 알아 그 맛에 혼자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혼술의 매력이랄까. 나에겐 묘한 능력이 있다. 아니 믿고 있다. 언젠가 어떤 이는 나에게 “귀가 열려있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이 시끄럽고 정신없는 포차에서도 나는 테이블마다 오가는 대화 내용들이 또렷이 들려온다. 그리고 그 대화들을 멍하니 들으며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곤 했다.

봄 향기가 짙어진 4월의 일요일. 찝찝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매일 저녁 하루를 마무리하며 통화하는 엄마와의 통화를 못한 것이 영 마음에 남았다. 몇 번이고 전화를 해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TV 보시다 잠드셨나 보네...’
별일 없겠거니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집근처 단골 포차에 자리 잡았다. 멍하니 머리를 비우고 죄 없는 닭발과 정체 모를 옆 테이블의 대화들을 안주 삼아 달달한 소주 한잔과 함께 배를 채우고 있다. 내가 어려서 엄마는 포장마차를 하셨다. 고향의 개천 가에 리역거를 개조한 포장마차였다. 리역거 중앙에 마련된 수납공간에 두꺼운 판얼음을 매일 채워 냉장고를 대신했다. 그 안에 꽁치, 해삼, 멍게 등 다양한 안주거리를 준비하고 장사를 하셨다. 그 어린 시절 엄마의 포장마차에서 느꼈던 특유의 해산물 냄새가 이 단골 포차에서 느껴졌다. 항상 그 향수에 젖어 포차를 찾게 된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동글동글한 이모들의 고생살을 바라보면 어린 시절이 자연스레 떠오르곤 했다. 그렇게 추억과 잡념에 알코올을 버무리며 피곤을 풀었다. 소주 한 병을 다 마셨지만 닭발이 조금 남아버렸다. 평소 같으면 한 병 더 안주를 핑계 심아 마셨을텐데 왠지 모를 피곤함에 마무리했다  .
“벌써 가려고? 안주도 남았는데 더 먹고 앞치마 줄 테니 일하고 가”
늘씬한 다리에 풍만한 상체의 방실이 이모가 농담을 던진다.
“술이 안 들어가요. 앞치마는 다음 기회에...”
이모들과 친근한 대화로 마무리하고 4월 치고 싸늘한 밤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길을 나섰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며 집으로 향하는데 전화 연결이 안되는 엄마 생각에 계속 찜찜하다. 취기가 오르며 뿌연 담배 연기에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향했다.


‘That's not the shape of my heart
That's not the shape, the shape of my heart...’
매일 듣는 스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수년간 내 휴대전화의 벨소리이자 알람 소리인 음악이다. 알람 무한 반복이 생활인 나이기에 잠결에 무심코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려했지만 왠지 모를 싸한 기분에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빙하 속에 빠진 듯 했다. 고향에서 걸려온 전화다. 어머니를 방문 간병해주시는 아주머니의 전화. 다급하게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엄마가 대답이 없으세요. 밖에도 안계시구요. 대선씨 어떻게 할까요?”
숨이 멎는 듯한 아찔함과 불안함 속에 부탁드렸다.
“열쇠집에 연락해서 문을 열어주시겠어요. 부탁드릴게요”
“알았어요. 다시 연락할게요”
얼마 후 다시금 걸려온 전화.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엄마가 쓰러지셨어요. 의식이 없으세요. 호흡기하고 지금 구급차로 이송 중이에요. 의료원으로 가고 있어요”
간병인이자 오랜 지인이었던 아주머니는 울먹이며 말씀하신다. 정신없이 나는 대답했다.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
제정신이 아니다. 아내에게 말하고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두 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정신이 없다.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2시간 거리의 고향을 1시간 조금 넘어 차가 터질 정도로 빨리 달려 도착했다. 미리 도착한 작은 누이와 간병인 아주머니를 만나 상황을 전해 들었다. 버스로 이동하는 큰누이는 아직 도착 전이었다. 많이 놀란 간병인 아주머니는 호흡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가 호흡이 멈추려하고 피부가 파랗게 변하기 시작하셨어요. 구급차로 모시고 바로 호흡기를 해드렸더니 다행히 혈색은 돌아왔어요. 병원에서는 꽤 긴 시간 호흡이 제대로 안되신 것 같다고 하세요. 몇 시간 더 늦었으면 아마 어려우셨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위로의 마음이 담긴 아주머니의 설명에 할 말이 없었졌다.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 이상 어떤 말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잠시 후 담당 의사에게 면담 연락이 왔다. 의사는 CT 촬영한 필름을 보여주며 건조한 표정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미세하게 뇌에 출혈이 있으세요. 근데 출혈 때문에 쓰러지시면서 약간 토하셨는데 기도가 살짝 막혔던 것 같습니다. 약 10시간 정도 흐른 것 같고요. 기도가 막히면서 무호흡이 밤새 지속돼서 의식이 없어지신 것 같습니다. 일단 중환자실에서 상황을 보겠지만 마음의 준비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를 만나고 안내에 따라 중환자실에 모셔진 엄마를 만났다.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어머니는 평온해 보이는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그래도 눈앞에 살아계신 엄마를 바라보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껏 머물 수 없는 중환자실. 작은 누이와 나는 그렇게 엄마와 오랜만에 얼굴을 잠시 마주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둘 다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약속이나 한 듯 병원 로비를 지나 건물 밖 벤치에 앉았다. 도시 외곽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병원은 아주 좋은 전망을 갖추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 훤히 보이는 시내를 바라보며 누이와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누이야. 내가 너무 큰 죄를 진 것 같아. 엄마한테. 혼자 계시게 하면 안 되는 건데...”
말 끝이 흐려졌다.
“아니야. 왜 니 탓이겠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우리..”
애써 격려하는 누이는 쉴 틈 없이 눈가를 훔쳤다.
“그래도 너무 감사하지! 그냥 돌아가셨으면 얼마나 더 죄송스러웠을까...”
“그러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자”
다시금 멍하니 시내를 바라보는 작은 누이와 내 시야에 허겁지겁 달려오는 큰누이가 보였다.
이미 내려오는 버스에서 눈물의 강을 건넌 큰누이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금 울먹이며 동생들에게 팔 벌리며 안겼다.
잠시 작은 누이와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면회 시간을 기다리며 다같이 벤치에 앉았다. 봄 햇살 속에 마지막 힘을 다해 피어오른 벚꽃들이 화사하다. 잊지 못할 봄날의 따스함 속에 차갑게 얼어버린 슬픈 마음을 봄볕에 애써 녹여가며 삼남매는 나란히 앉았다.
4월의 봄날. 따스한 햇살 속에 시간이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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