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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an 17. 2024

억장이 무너졌다는 남편의 속마음

퇴원하는 길에서

25일 만에 퇴원하는 길

비록 외래를 가야 하는 날은 남았지만

입원할 때의 짐을 다시 정리해서

집으로 왔다.


입원하는 날은 눈이 내렸는데

퇴원하는 날은 맑다. 기분이 좋다.

오늘 지금 이 순간의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일 일은 잊어버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에

집중했다,


남편에게 고마웠다고 덕분에 내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었다고, 아이들 잘 돌봐줘서 고맙다고 했다. 난 경상도 여자라 표현을 잘 못 한다. 용기 내어하고 싶었다.


석 달동안 괜찮아. 괜찮아.

이겨낼 수 있어. 아무 일 없어.

걱정하지마. 잘 될거야 라는 말들로

나를 안심시켰던 남편이었다.


그랬던 남편이 하는 말


‘내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갑다.


매일 볼 때마다 얼마나 속이 상하든지

이젠 아무 일 없으니 걱정하지 마라’


경상도 남편은 그동안 멘탈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간호병동이라 면회도 되지 않는 병원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분 얼굴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왔다 갔다 했다.


오지마라고 했지만 매일 나에게 줄 신선한 사과 한 개, 물 두 개, 오트밀 라떼, 그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주기 위해 왔다.

물티슈로 발과 손을 닦아주며 힘내라고

이제 다 끝났다고 응원을 했다.


남편은 표현은 서툴지만 눈빛에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젠 건강해져야겠다.

나 때문에 소중한 가족들이 힘들어진다는 건 너무 마음 아프다.  


이번에 아프면서 가족의 소중함, 남편의 애틋함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알고 지냈던 사람들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시간이었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 주려고 노력하는 내편이 있다는 건 감사하고 축복이다.


언제나 평정심을 잃지 않고 똑같은 태도로 살아가는 남편이 대단하게 보일 때도 있다.

온갖 투정 다 받아주고도 허허 웃는 남편의 속마음을 듣고 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동안 세 달 동안 나에게 온 모든 것들이 이제 서서히 사라지고 일상 복귀만 남겨두고 있다. 운동하고 잘 챙겨서 나를 지키는 것이 우리 가족을 지키는 것이다.


오늘부터는 감사한 사람들에게 더 잘하고, 불필요한 관계는 이제 다 잊고, 나에게 집중하자. 이젠 좀 내려두고 사랑 주고받으며 살자.


고마워 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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