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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영 Jul 01. 2023

기다림 포기 다시 기다림

간식 먹고 싶다아옹. . 야옹


저녁 8시부터 공부를 했다. 글을 쓰고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안방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두 시간 반 이상을 애기는 내 방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잠깐씩 볼 때마다 내가 언제 나오나 애절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모습이 짠하다.

고양이는 집에만 있기 때문에 살이 찌면 빼기가 어렵다. 그래서 간식 주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언제나오나옹. . 나 쓸쓸한척 하고 있을게옹. 간식줘

이렇게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 간식을 주고 싶다. 애기도 내 마음을 알고 있는지 눈만 마주치길 기다린다.


눈 마주치면 그때부터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며 내 손에 나도 모르는 사이 간식이 자동으로 나온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내 눈을 바라봐. . . 넌 간식을 줄거야. .


근데 오늘은 안 주기로 했다. 사실 낮에 좀 많이 준 것 같아서 눈을 피했다. 맘이 약할 때는 한없이 약해지는 내 마음 ㅜㅜ


한 시간이 지났을까? 아주 편안한 자세로 누워있다. 앞다리 뒷다리를 쭉 뻗어 있는 모습은 정말 아.... 어.... 으.... 귀엽다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저 지겨운 공부를 왜 하는거냐옹. . 언제 끝나냐옹


내가 힘이 없거나,  기분이 꿀꿀할 때 애기 눈, 코, 입, 발바닥 젤리, 앙증맞은 귀, 풍성한 꼬리, 자는 모습만 보면 그냥 힐링이 된다.


비타민 같은 그녀 애기...

자다가 그루밍을 하고 다시 내가 나오길 기다린다.  

나를 보라고, . 애교에 안 넘어온다고옹
오늘 공쳤네. 집사야 너 좀 심했어. . 내일 기대해라

난 나가지 않았다. 결국 다시 누워버리는 애기.. 오늘 나의 애교는 통하지 않았음을 원통하기라도 하듯 그루밍을 열심히 하며 내일 새벽을 괴롭히리라 다짐하는 듯하다.


새벽마다 침대에 올라와 나를 깨운다. 한 번도 빠짐없는 출석률을 자랑한다. 안 일어나면 보복이 무섭다. 내 발가락이 어디에 있는지를 탐색하고 찾아내어 솜망치 공격을 한다. 그때는 사실 더 하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그토록 만지고 싶던, 애타고 보고 싶던 핑크와 회색으로 만들어진 고양이의 애교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젤리라니.... 난 새벽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ㅎ ㅎ

평소에는 언감생심 만지면 난리가 나지만 새벽만은 솜망치의 느낌을 느끼며 완전 기분이 좋아진다.

(고양이들은 발바닥 만지는 걸 싫어한다. )


방문 앞에 걸쳐 누워 있는 애기.. 지금 물을 마시고 싶다. 내가 부엌으로 가는 즉시 난 아기에게 포위될 수도 있다. 애기는 그걸 노리는 걸까?  내일 새벽에 줄 거야라고 말했지만 싫다는 듯 째려보고 있다. 아 갈등된다. 나가면 졸졸 따라올 것이고 안 나가려니 배가 고파서 속이 쓰리다.  


내가 휴지만 들면 눈곱과 코딱지 떼려는 줄 알고 도망가고, 빚만 들면 기겁하고 손톱깎이는 아주 숨어버린다.  이런 똑똑한 고양이라니..


오늘 낮 후덥지근해서 에어컨의 제습기능을 돌리고 책을 읽는데 발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애기의 꼬리털이 내 발을 덮고 있었고 난 너무 따뜻했고,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웬일로 내 옆에서 자 주시는지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낮에는 항상 숨어서 자는 애기가 오늘은 내 곁에 있어주었다,


깨기라도 할까 봐 나는 조용하게 책만 읽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작은 아기에게서 전해지는 온기는 내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했다.

발바닥 찍지마라. 찍으려면 촉촉트릿 줄거지?
옛다. . 딱 이번만 허락한다. 대신 츄르 한개 알지
오늘만 옆에 있어준다. 복받은 줄 알아. . 인심쓰네 오늘


고양이랑 같이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 기분.. 뭔가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음 이해가 될지..... 그래서 결론은 고양이는 사랑입니다로 또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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