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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겸손 Oct 18. 2020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암석 사막 위를 지나는 고양이 한 마리 

나에겐 콘크리트의 무덤 같은 인상을 준 파주출판단지. 박스형의 노출 콘크리트가 비슷한 비율로 집합되었으니 그 정경이 삭막하고 어딘가 황량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노출 콘크리트 구조물을 좋아하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미메시스 미술관에 막 도착했을 때 썰렁해진 마음이 환기되었다. 유려한 흰색의 곡선, 균질한 질감과 풍부한 질량감이 극적인 기분을 선사했다. ‘휴, 그래도 잘 찾아왔구나! 하며 안도하게 되는.


암석 사막 위를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의 고양이가 파주출판도시에서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진입로를 들어서면 곡선으로 이루어진 두 매스(덩어리)가 아름다운 곡선을 출렁인다. 입구와 연결된 정원에서 바라보면 이 건축물의 곡선과 고양이 발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인증샷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그 아래에서 사진을 찍어보시길 추천한다. 그리고 꼭 고개를 들어보시길, 하늘을 보면 고양이 발이 반갑게 인사한다. 



도착했으니 우선 한숨 돌리기 위해 커피 한 잔. 별도의 베이커리나 디저트류는 취급하지 않고 커피와 음료 주문만 가능하다. 높은 층고가 인상적인 1층 북카페는 모든 방문객에게 개방한다. 나머지 반은 갤러리이다. 열린책들과 미메시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뮤지엄이기에 책과 미술이 조화를 이룬다. 열린책들과 그 자매 브랜드인 미메시스의 도서들이 서가에 보기 좋게 꽂혀있다. 열린책들의 장정은 읽기에도, 보기에도, 전시에도 좋은 오브제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 



카페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어둡다는 인상을 받게 될 텐데 이는 건축가의 의도이다. 이 비밀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면 2~3층을 방문해보는 것이 좋다. 티켓값은 5,000원. 뮤지엄 입장권을 구매하면 음료와 도서 1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1층 일부와 2~3층은 뮤지엄 입장권을 구매해야 한다. 



재미있는 스케일들  

프리츠커 수상자인 알바로 사자는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아름다운 디테일을 가진 현대적인 건물을 창조했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다양한 크기의 여러 개 전시 공간이 하나의 덩어리에 담긴 설계로 독특한 조형미를 선보인다. 바닥, 벽면, 천장이 자연광과 함께 어우러져  유동적인 전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공간 구성이 매우 이례적이다. 동선에 맞춰 걷다 보면 개별 요소 대 전체 공간 간의 비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아주 재밌다. 지적인 재미가 아니라 걸으면서 느끼는 공간감. 1층에서 2층으로 그리고 마지막 3층으로 이어지는 레벨 간의 극적인 변화에서 리듬감이 느껴진다. 1층과 2층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두 개의 매스 중 한 덩어리는 1층 북카페에게 또 나머지 한 덩어리는 2층의 사무공간에 양보한 듯 보인다. (*2층의 사무공간은 층고를 알 수는 없었지만) 




무엇보다 층고, 창문, 문 등의 공간적 요소들의 비례가 건물만의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전체적으로 매우 차분한 공간이지만, 디테일에서 재미있는 구성을 맛볼 수 있다. 흰색 단일 톤의 공간에 창문, 계단, 문, 벽, 바닥 등의 기본적인 요소로만으로 건축만이 할 수 있는 공간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창은 동일 규격이 아니라 커졌다 작아지고, 문은 얇고 길다. 엘리베이터 역시 다르다. 눈에 띄는 세심한 디테일에서 호기심 속을 느끼면서 자연스레 3층으로 향한다.



아름답고 정교하게 설계된 전시장

선과 면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3층 메인 전시홀에 들어서면, 메인 모티프가 된 외관의 곡선을 공간 내부에 그대로 살렸음을 알 수 있다. 벽면은 외관의 곡선을 따라 흐르지만 방문객이 이 부분을 즉각적으로 인지하기 힘들 것 같다. 곡선과 직선은 튀어나오거나 회전하면서 더욱더 역동적인 관계를 만들었다. 서정시와 기하학이 만난달까? 고양이의 유선과 자연광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는 선과 면들. 기하학의 인상을 주지만 선과 면들의 만남은 수학적 이기라보다는 건축가들 의 아름다운 건축 스케치에서 보이는 역동적인 드로잉의 모양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을 관통하는 자연광 설계 

건축가의 자연광에 대한 건축적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가 곳곳에 스미는 빛으로 증명한다. 이를 메인 전시 홀인 3층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자연광을 다루는 건축가의 작(직)업적 태도와 함께. 미술관은 인공의 스포트라이트로 미술 작품을 때리거나 쏘아보는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는 태도. 미술품도 한 개인처럼 자연스러운 빛을 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알바르 시자는 자연광을 극대화하여 건물로 스며들게 했다. 인공조명의 경우도 자연광의 세기에 맞춰 조정되어 있어 보였다. 자연광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커버할 것 인지, 설치된 미술 작품을 어떻게 비출 것인지, 나아가 방문객에 전시 체험에 도움을 줄 것인지, 더 나아가 건축 경험을 제공할 것인지를 면밀하게 탐구한 건축물이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그 안에 있는 그림이나 조각만큼이나 건축이 중요한 예술적 표현이 되길 원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예술 전문 출판사가 ‘건축의 시인’이라 불리는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루 시자에게 의뢰한 작품. 자연과 주변 환경에 반영하는 유기적인 미술관. 비 오는 날, 구름 낀 날, 해가 내리는 쬐는 날 건물의 표정은 전부 다를 것이다. 강함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건축가의 건축 의지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물론 그 의지는 강력하지만 자연광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 (20.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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