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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24. 2019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건곤감리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태생적으로 ‘한 뿌리로 얽히기’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체질입니다. 늘 형세를 저울질합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무슨 일을 도모하려면 이런 이들을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 만나게 될 때는 일반적으로 ‘달콤한’ 계기가 있을 경우가 많으므로 이들의 본색을 알기가 힘듭니다. 오히려 그쪽에서 적극적으로 접근해서 ‘뜻이 (밖에)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하여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오는’ 날이 되면 그들은 초지(初志)를 거두어들이고 공연히 배반합니다. 누가 필요해서 찾아가면 십중팔구 ‘뜻이 (밖에)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렇게 또 저울질을 일삼으며 또 다른 달콤한 계기가 없는지 이리저리 물색합니다.

     

초구는 띠뿌리를 뽑으니 얽혀있음이라, 그 무리를 지어서 가니 길하니라. (初九拔茅茹 以其彙征吉) - 띠풀은 그 뿌리를 뽑으면 서로 당겨 끌려 나온다. 여(茹)는 서로 엉킨 채로 끌리는 모양이다. 세 양(陽)이 뜻을 같이 하니, 모두 밖에 뜻이 있다. 초효는 무리의 머리가 되어 자기가 들리면 (다른 양들도) 따라 들리게 됨이 띠뿌리가 얽힌 것과 같다. 상괘가 순순히 응하고 거슬러 거부하지 아니하니, 나아가려 함에 모두 뜻을 얻으므로 그 무리를 지어 나아가면 길하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113쪽]   

  

주역 열한 번째 태(泰)괘 ‘지천태(地天泰)’와 열두 번째 비(否)괘 ‘천지비(天地否)’는 서로 대비되는 괘입니다. 형태(괘상)가 상반됩니다. 각각 ‘곤/건’과 ‘건/곤’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괘와 하괘가 3음, 3양이거나 그 반대로 3양, 3음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확 기운 형세를 드러냅니다. 경문은 각각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다’(小往大來)와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오다’(大往小來)입니다. ‘양이 안에 있고 음이 밖에 있으며, 안으로 강건하고 밖으로 순하며,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통하면’ ‘지천태’(地天泰)이고 그 반대면 ‘천지비’(天地否)입니다. 전자는 길하고 후자는 흉합니다.  

  

비는 사람이 아니니, 군자의 곧음이 이롭지 못하다.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오느니라.(否之匪人 不利君子貞 大往小來)[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119쪽]     


태(泰)괘와는 달리 비(否)괘에서는 ‘군자의 곧음’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말합니다. ‘소인의 도가 자라고 군자의 도가 사라지는’, ‘천지가 사귀지 못하는’ 때를 적시합니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인간세에서는 늘 ‘태’와 ‘비’의 운세가 오고 갑니다. 사람의 길이 ‘사람 아닌 것들’에게 유린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사람 아닌 것들이 오히려 사람을 자처할 때도 흔히 봅니다. 그러나, 설혹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오는’ 세월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모두 ‘밖’에 뜻을 두고 있다면 조만간에 그 ‘작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큰 것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야 인간세입니다. 주역은 그런 인간세의 변화를 요약하고 있는 책입니다. ‘띠뿌리’가 보여주는 ‘여(茹)’의 아름다움을 반드시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족 한 마디. 굳이 ‘뜻을 밖에 두고’ 있지 않더라도, 살다보면 매사 작은 것을 보내고 큰 것을 기다려야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작은 것에 매여 있다가는 큰 것이 오는 것을 제대로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소탐대실(小貪大失)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제 인생은 늘 소탐대실의 연속이었습니다. 갈림길에서는 항상 즉흥적, 감정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제가 제공하는 노력이나 노역, 혹은 감정보다는 항상 적은 양의 보상을 얻곤 했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만약 저의 선택이 신의 한 수, 대박의 연속이었다면 제 인생이 크게 좋았을까요? 그 뒤에 오는 작은 것들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주역에서 강조하는 ‘군자의 곧음’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요? 한 번씩 뒤돌아 봤을 때, 제 스스로 예상치 못했던 자리에 와 있음을 알고 놀라는 경지가 되어야 진정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는’(小往大來)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닐까요? 운이든 계산이든, 쉽게 대박을 얻고 용케 대세에 편승한다 쳐도,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결국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오는’(大往小來) 삶으로 자신의 인생살이를 마감한다면, 공수래공수거, 과연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자신이나 자손에게 뭐가 좋겠습니까?     

<2015. 3. 24. 오늘 아침 일부 수정>


참조 : 《주역》에서는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의 팔괘를 기본으로 하여, 천지만물을 상징하는 육십사괘를 설정하였다. 건괘(乾卦)는 하늘을 상징하며, 오행(五行)의 금(金)을 뜻한다. 곤괘(坤卦)는 땅을 의미하며, 오행의 토(土)를 뜻한다. 기본 괘 가운데서도 건괘와 곤괘는 모든 괘의 중심이며,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감괘(坎卦)는 달과 물을 상징하며, 오행의 수(水)를 뜻한다. 이괘(離卦)는 해와 불을 상징하며, 오행의 화(火)를 뜻한다.

각각의 괘의 형상은 효(爻)로 표현되는데, 효는 끊어지지 않은 선(―)으로 표현되는 양효(陽爻)와 끊어진 선(--)으로 표현되는 음효(陰爻)로 나뉜다. 괘의 형상은 이 양효와 음효가 홀로 셋을 이루거나 1 대 2 또는 2 대 1 등의 비율로 짝을 이루어 표현되는 것이다. 건괘는 양효만 세 줄로 표현되고, 곤괘는 음효만 세 줄로 표현된다. 감괘는 맨 위와 아래가 음효이고 가운데가 양효로 표현되며, 이괘는 감괘와 반대로 맨 위와 아래가 양효이고 가운데가 음효로 표현된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에서 가운데 그려진 태극 문양은 음(파랑)과 양(빨강)의 조화를 상징한다. 네 모서리에 그려진 건곤감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양효와 음효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4괘는 각각 하늘·땅·물·불을 상징하며,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룬다. 건괘는 기면(旗面)의 왼쪽 윗부분에, 곤괘는 오른쪽 아랫부분에 위치하여 무궁한 정신을 나타낸다. 감괘는 기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이괘는 왼쪽 아랫부분에 위치하여 광명의 정신을 나타낸다. 

[네이버 지식백과] 건곤감리 [乾坤坎離]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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