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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24. 2019

소를 보지 말아야

장자, 포정해우

소를 보지 말아야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한 코미디 프로에서, ‘여성들의 분수에 넘치는 행태’를 나무라면서 사용한 성동격서(聲東擊西)식, 웃자고 한 만담(漫談)이었는데, 이제는 어디서고, 조자룡 헌 칼 쓰듯, 사용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틈을 보이는 행실이나 격이 떨어지는 행투가 보이면 너나없이 “소는 누가 키우나?”라고 일갈합니다. 특히 정치나 외교 행정이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할 때면 여기저기서 그 말이 터져 나옵니다. 요즘 들어서도 그 말이 자주 들리는 걸 보니 제대로 제 할 일을 챙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모양입니다.     

소가 비유의 소재로 사용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입니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인간과 가까운 존재였다는 말이겠지요. 특히 소는 유토피아를 가리키는 말에 많이 등장합니다. 사람이 살기 좋은 낙토(樂土)의 이름은 으레 우면(牛眠)이거나 우두(牛頭), 아니면 우배(牛背)로, 소의 자는 모습이나 신체 부위를 따 와서 지었습니다. 지금은 산(山) 이름 중에 그런 이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못 이름이나 평지 이름에도 그런 이름이 많이 쓰였습니다. 소처럼 평화롭게 생을 영위할 수 있는 땅을 고대하는 심리를 의탁하였던 호명 행위였습니다. 굳이 소와 관련된 형상으로 한 지역의 이름을 정하려 했던 것은 소의 그 평화로운 심성을 공간적 속성으로 환치하려는 일종의 공감주술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소는 그만큼 우리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공감주술의 대상이 아닌 소 이야기는 장자의 「포정해우(庖丁解牛)」가 거의 유일무이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도 평화로운 삶을 가져오는 정치에 대한 우화입니다. 그렇게 보면 아주 소량이나마 공감주술이 사용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경우는 소가 정치행위의 대상이 되는 인간들의 총체적인 삶을 표상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봉건적 군주를 백정에 빗대어서 ‘다루기(해체하기) 어려운 집단(소)’를 손쉽게 다스리는 이치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 ‘포정해우’입니다. 장자는 정치행위를 만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라 보고 ‘양생(養生)의 도(道)’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포정이 19년 동안 소를 잡아도 칼이 방금 숫돌에 갈아낸 것처럼 생생한 것처럼, 치자는 양생의 도를 베풀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임금이 정사를 돌볼 때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마치 포정의 칼이 소의 빈 곳을 노리고 들어가는 까닭에 19년 동안 써도 흠집 하나 남지 않은 것처럼, 천리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감동은 언제나 ‘묘사’에서 나옵니다. 포정이 자신의 기술의 경지를 말로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있습니다.   

  

...포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리는 동작에 따라 서걱서걱, 빠극빠극 소리를 내고, 칼이 움직이는 대로 싹둑싹둑 울렸다. 그 소리는 모두 음률에 맞고, 상림(桑林, 은나라 탕왕 때의 명곡)의 무악(舞樂)에도 조화되며, 또 경수(經首, 요임금 때의 명곡)의 음절에도 맞았다.

문혜군은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하면 저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포정은 칼을 놓고 말했다. “제가 반기는 것은 도(道)입니다. 재주(기술) 따위보다야 우월한 것입죠.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란 모두 소뿐이었으나, 3년이 지나자 이미 소의 온 모습은 눈에 안 띄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고 있고 눈으로 보지는 않습죠.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습니다. 천리(天理, 자연스런 본래의 줄기)를 따라 커다란 틈새와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 몸이 생긴 그대로를 따라갑니다. 그 기술의 미묘함은 아직 한 번도 살이나 뼈를 다친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솜씨 좋은 소잡이(良庖)가 1년 만에 칼을 바꾸는 것은, 살을 가르기 때문입죠. 수준 낮은 보통의 소잡이(族庖)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니까 그렇습죠. 그렇지만 제 칼은 19년이나 되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지만 칼날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저 뼈마디에는 틈새가 있고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을 틈새에 넣으니, 널찍하여 칼날을 움직이는 데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19년이 되었어도 칼날이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죠. 하지만 근육과 뼈가 엉긴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 일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두려움을 지닌 채, 경계하여 눈길을 거기 모으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서 칼의 움직임을 아주 미묘하게 합니다. 살이 뼈에서 털썩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칼을 든 채 일어나서 둘레를 살펴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마음이 흐뭇해지면 칼을 씻어 챙겨 넣습니다.” 문혜군은 말했다. “훌륭하도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의 도를 터득했다.” (『장자(莊子)』 「양생주」편)    

 

문혜군이 말한 ‘양생의 도’가 정치(政治)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순리에 따라서, ‘칼을 다치지 않고 소를 해체하는 경지’처럼 천리를 따라 정사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가 포정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 말도 결국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소는 누가 키우나?” 역시, 순리대로 하지 않고 때를 모르고 나서는 이들을 나무라는 취지를 가진 말이니까 의미를 조금만 확장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두 이야기를 합치면 이렇습니다. 그저 묵묵히 소를 키우고 있다가, 족포도 거치고, 양포도 거쳐서, 자타 공인 포정의 경지에 들었다 싶으면 그때 비로소 날 선 칼 한 자루 지고, 발걸음도 가벼이, ‘소를 잡으러’ 나서라는 말이 됩니다. 음악의 경지에 기꺼이 들 수 있는 ‘소 잡기’, 즉 정치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당연히 집에서 소나 키우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요. 함부로 나대지 말고요.     


장자는 정세가 급격하고도 복잡하게 변하고 전란이 끊이지 않던 전국(戰國) 시대 중기에 살았습니다. 그는 사회적 지위가 낮아서 기껏해야 옻나무 밭을 관리하는 낮은 관리를 지냈을 뿐입니다. 만년에 그는 더욱 궁핍한 생활을 하였는데, 어떤 때는 짚신을 삼아서 생활하였고, 또 어떤 때는 돈을 꾸러 다니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사정에서 이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신통하기까지 합니다(후대에 가미된 이야기겠습니다만). 결국 그렇게 ‘소만 키우다’ 말았지만, 장자는 수천 년에 걸쳐 ‘하나 살아남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소만 잘 키워도 이름을 길이 남길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습니다.      

하나 첨가하겠습니다. 장자가 역설한 포정의 이야기가 그 주의(主意)를 ‘양생의 도(道)’ 즉, 올바른 정치에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정치하는 이들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소’를 ‘소’로 보면 제대로 ‘소’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이 그것 아닐까요? 그 역설은, 포퓰리즘이나 패권주의로는 제대로 된 양생의 도(정치)를 펼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포정은 자신도 처음에는 소를 소로밖에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거울삼아서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눈의 작용을 멈추게 하자 천리(天理)를 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뼈를 자르다 칼이 상했으면 다음에는 그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소를 잡으려면 소를 봐서는 안 된다는 것, 눈의 작용을 멈추고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겨야 한다는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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