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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26. 2019

아난의 돌다리

어느 소귀의 행장

어느 소귀(小鬼)의 행장(行藏)     

살다 보면 ‘소귀(小鬼)’들을 종종 봅니다. 조금도 양보를 모르고, 조금도 자기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한 번 상처 입으면 도통 잊지 못하고, 언제나 잇속 챙기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인간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음전한 것 같기도 한데 뼛속까지 철면피의 품성이 배어있습니다. 사람같이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한 여름의 모기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소귀(小鬼)들은 자기가 얼마나 큰 불운(不運)이고 불편(不便)인지를 모릅니다. 자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통 모릅니다. 그들 스스로는 자기를 ‘법 없이도 살 사람’, ‘경우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 ‘나설 때 정당하게 나서는 사람’,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사람’ 식으로 자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자기애 실행의 일환으로만 그것을 사용합니다. 그러니, 산다는 것이 때로는 행운이고 때로는 희생이고 때로는 인내라는 것을 그들은 모릅니다. 오직 그때그때의 ‘계산된 이익’과 ‘나의 편리’만이 삶의 목표가 됩니다. 그들을 볼 때마다 불가에서 전하는 아난 존자(阿難尊者, 부처님의 사촌 동생. 부처님이 성도하시던 날 밤에 낳았다고 하며, 25살에 출가하여 25년 동안 부처님의 시자로 있었다. 십대제자 가운데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의 총명을 지녔었다)의 ‘돌다리’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난이 출가하기 전 한 소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 소녀를 사랑하는 것이 어느 정도냐?’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돌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오백년 바람에 씻기고

오백년 햇빛에 쬐이고

오백년 비에 맞은 후

그녀가 저를 밟고 건너기를 원합니다.  

   

몸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면, 마음까지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근자에 처음 겪었습니다. 타고나기를 그렇게(멘탈이 약하게) 태어나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비슷한 시기에 큰 병치레를 한 친구와 치병담(治病談)을 나누다가 그것이 노년의 병치레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몸이 죽기 전에 마음이 먼저 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모질게 한 번 아픈 뒤에 때 아닌 반성이 문득 일었습니다. 여태까지 소귀 인생들을 깔보며 살아왔는데 행여 그동안 내가 살아온 길 역시 소귀(小鬼)의 행로가 아니었던가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고작해야 오십보백보, 정도의 차이에 불과했던 것을 마치 종류의 차이인양 여겼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살아온 길도 영락없이 소귀(小鬼)의 그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아난의 돌다리’를 앞세우며 속으로는 ‘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고군분투 해 온 것이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빈말이 아닙니다. 막상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세상을 등질 것을 생각하고 제 주변을 한번 돌아다본 일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온통 없어도 될 것들뿐이었습니다.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너무 많은 ‘쓸데없는 잡동사니들’이 저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수단이었던 책과 책상은 논외로 치더라도 각종 기기(器機)며 도구며 옷가지며 그 외 우수마발과 같은 잡동사니들이 눈짐작으로도 트럭 한 대 분은 족히 넘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 하나만 봐도 제가 소귀의 일생을 살아왔다는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반성이 들면서 ‘행장(行藏)’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보통 사람살이에서의 처신을 뜻하는 말로 많이 쓰는 것이 ‘행장(行藏)’입니다. 공자(孔子)님이 ‘천하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숨을 것이니라’고 말씀한 데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합니다. 그냥 나고 드는 것이 아니라, 처한 곳마다 도(道)의 유무를 판단하라는 훈계(訓戒)의 의미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공자님에게는 ‘안빈낙도(安貧樂道)’가 60세를 넘어서서야 하나의 주의(主義)가 됩니다. 공자님은 그 무렵에 ‘60번도 넘게 새롭게 자신을 바꾼’ 거백옥을 상찬합니다. 부단한 자기 수양을 강조한 것이지요. 그런 안빈낙도와 자기수양의 강조, 그리고 롤 모델로서의 거백옥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공자님이 이미 속세에서 뜻을 거둔 뒤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안회가 스승과 행장(行藏)을 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후계자로 지목되는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공자님은 예순아홉 살에 겨우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었는데, “독실하게 믿으며 학문을 좋아하고 죽음으로 선한 도를 지키며,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아니하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숨을 것이니라(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태백」)라는 평소의 지론을 그 때서야 실천에 옮길 수 있었습니다.

공자님이 강조한 ‘행장’의 요점은 역시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몸을 숨긴다’라는 것입니다. 몸을 드러내고 감추는 ‘현은(見隱)’이 곧 ‘행장(行藏)’의 본색(本色)인 것이지요. 행여 그 말이 기회주의로 받아들여질까 두려웠는지 후학들은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답니다.     


... 군자가 위태함을 보면 목숨을 바치는 것이니, 그렇다면 위태한 나라에서 벼슬하는 자는 떠날 수 있는 의(義)가 없다. 그러나 밖에 있을 경우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옳다. 난방(亂邦)이란 위태롭진 않아도 형정(刑政)과 기강(紀綱)이 문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몸을 깨끗이 하고 떠나는 것이다. 천하(天下)는 온 세상을 들어 말한 것이다. 도(道)가 없으면 자기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오직 독실하게 믿으면서도 학문을 좋아하고, 죽음으로써 지키면서도 도(道)를 잘하는 자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성백효 역주, 『논어집주』 태백 제팔]     


도(道)가 없는 곳에서 벼슬을 살다가는 ‘군자는 죽음으로써 의(義)를 실천’해야 하므로 떠나고 말고 할 것이 없다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곳(危邦)에는 애초에 들어가지 말고(不入), 형정과 기강이 문란한 곳에서는 머무르지 말고(不居) 냉큼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장(行藏)’의 요체입니다.

나고 들 곳도 없는 주제에, 문득 지금에 와서 ‘행장(行藏)’에 관심하는 까닭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제게는 지금이 은인자중, 마지막으로 ‘은(隱)’하고 ‘장(藏)’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천하에 도가 있고 없고를 따지기 전에, 사경(死境)을 흘낏 본 자들은 그저 ‘은(隱)’하고 ‘장(藏)’할 일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평생 걸어온 소귀(小鬼)의 행로를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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