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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02. 2019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

주역, 지택임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   

  

주역 열여덟 번째 괘 ‘산풍고(山風蠱)’, 고(蠱)괘에서는 “법령에 앞서 사흘을 두며 법령의 뒤에 사흘을 두느니라.”(蠱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라고 해서 특히 후갑삼일(後甲三日)을 강조합니다. 일의 마무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뒤를 마무리하지 못할 때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애써 높은 자리나 경지에 올랐는데 어쩌다 보니 타성에 젖고 성과는 없는데 뒤는 바로 절벽입니다. 정년이 다하거나 맡은 임기가 촉박한데, 의지나 열정이 예전처럼 강건하지가 않습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말로는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라고 입이 아프도록 외치지만 더 이상 앞으로 나갈 힘도, 때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어느 서양의 문학이론가가 말했던가요?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저는 철들고 나서부터 두 가지 기예를 꾸준히 익혀왔습니다. 글쓰기와 칼쓰기(검도)입니다. 어지간히 해 온 일이기에 이제 몸에 많이 붙었습니다. 특히 글쓰기에는 자신감이 좀 듭니다. 파라독스와 아이러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전장고사(典章故事)를 활용해서 신의(新意)를 창출하기를 자주 합니다. 처음 글쓰기를 접한 것이 초등학교 2학년 때이니(본격적으로 한 것은 15년 뒤입니다만) 평생의 과업인 셈입니다. 칼쓰기는 좀 뒤에 만났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죽도를 잡아보고 본격적으로 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뒤의 일입니다. 글쓰기는 입신(立身)의 발판이 되었고 칼쓰기는 성년(成年)의 수신(修身)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글쓰기는 일주일에 한 번, 칼쓰기는 일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제자들과 만나서 기예를 닦는 시간을 가지기도 합니다. 타고난 재주는 부족하지만 수십 년을 한결같이 해 온 일이라 제자들에게 이것저것 잔소리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를 매일같이 강조합니다. 한 번씩 엉뚱한 생각도 듭니다. 어려서나 젊어서 지금의 저와 같은 스승을 만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만난 스승들은 대체로 말을 아끼는 분들이었습니다. 그저 시범으로 일관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글쓰기는 더했습니다. 거의 독학으로 익혔습니다. 두 갈래 생각이 듭니다.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지금처럼 꾸준하게(두 일에서 다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우선 듭니다. 스스로 익히면서 자득(自得)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제가 지금도 깨치지 못하고 있는 묘수(妙手)를 혹시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았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라는 근거 없는 생각도 들 때가 있습니다. 저의 제자들이 제가 애써 전수하고자 하는 기예의 본령과 묘수들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할 때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결국은 모두 타고난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기예의 수련은 특히나 자득에 전이(轉移)가 어떻게 접목되는가에 따라서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제가 익혀온 기예들에 대해서 마무리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도 좀 알고 제자들 가르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합니다만 물러날 때가 되었습니다. 정년이 내일 모래고, 새로운 기법을 익히고자 하는 발분(發憤)의 의지도 많이 수그러들었습니다. 체력, 근력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다가는 부상을 감내해야 합니다. 지금도 몇 달째 부상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는 말이 실감이 됩니다.    

  

주역 열아홉 번째 괘는 지택임(地澤臨), 임괘(臨卦)입니다. ‘임은 크게 형통하고 곧음이 이로우니, 팔월에 이르러서는 흉함이 있으리라’(臨元亨利貞 至于八月有凶)가 경문입니다. 주역 경문에 ‘8월’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이 나타나는 것은 임괘에 와서 처음입니다. 양(陽)이 최대로 커졌다가 사그러들고 음(陰)이 커지기 시작하는 때로 군자의 도가 쇠하고 소인의 도가 자라나는 형세라고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못 위에 땅이 있는 것이 임(臨)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교화(敎化)의 생각이 끝이 없으며 백성을 받아들여 보전함이 한계가 없느니라.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165쪽]     


주역 임괘를 보니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란 걸 알겠습니다. 실망할 일도 물론 아닌 것 같습니다. 제 여행은 끝났지만, 더 멀리 떠날 사람들이 제 앞에는 많습니다. 그들의 여행에 제 경험이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게 제 소임입니다. 그렇게 배운 그들 역시 언젠가는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라는 말의 참뜻을 이해할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 힘닿는 데까지 제 남은 역할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못 위에 있는 땅처럼’ 그들에게 스며들 수만 있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친절한 여행 가이드의 역할에도 ‘끝남’이 없다고 주역은 가르칩니다.

<2015. 4. 2.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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