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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04. 2019

드나듦에 병통이 없어야

주역, 지뢰복

드나듦에 병통이 없어야   

  

‘물레방아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 안에서 전화위복(轉禍爲福)도 보고 새옹지마(塞翁之馬)도 봅니다.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인생 말년에 이르러서는 모두 다 비슷한 소감을 갖게 됩니다. 살아보니 별 것 없더라는 소감이지요. 그래서 늙으면 내 편 네 편 할 것 없이 동병상련하는 처지가 되는 모양입니다. 물론, 끝내 여의치 않는 인생도 많습니다. 모질게 안 풀리는 인생도 있습니다. 될 듯 될 듯 하다가도 결국 안 되고 인생도 있고 갖은 노력 끝에 풀리기 시작하는데 그만 끝나는 인생도 있습니다. 천도무친(天道無親), 인간의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입니다.     

 

늙어서 제 인생을 한 번씩 뒤돌아봅니다. 전화위복도 있었고 새옹지마도 있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전화위복은 저의 글쓰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20대 이후 궁지에 몰릴 때마다 글쓰기가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망하자면 글 복이 터져서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가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그런 순환이 10년마다 한 번씩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1983~85년, 1993~95년, 2003~05년, 2013~15년 사이에 그런 글 복이 터졌습니다. 1983년에 작가로 등단을 했고, 작품집이나 여타 저서들의 출간 연도도 대체로 그 시기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두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 정도 큰 사건은 아니지만 작은 새옹지마들도 수차례 있었습니다. 일일이 밝히기에 쑥스러운 것들입니다. 궁색한 처지를 마다하지 않고 감내하다 보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보게 되는 일이 곧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징크스도 있었습니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는 일들은 계절을 타는 듯합니다. 연초에 시작한 것들은 늘 시들시들합니다. 그런데 한여름에 시작하면 왕성하게 풀립니다. 성공한 새로운 도전은 늘 한여름에 이루어졌습니다. 평생의 든든한 벗이 되고 있는 검도를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은 연초였지만 곧 시들해졌다가 한 여름에 다시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문학 수프> 연작을 가장 많이 써내려간 것도 한 여름철이었습니다. 어제 우연히 어떤 책을 보다가 제 사주와 이름이 ‘한 여름의 운세’와 관련이 있다는 대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신비한 지식’을 믿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신비한 지식은 믿지 않습니다. 다만, 살아오면서 겪은 ‘신비한 경험’들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이 원인이든(어쩌면 원인 같은 것이 애초에 없이) 제게 일어난 일들을 저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아무 것도 아는 것도 없이 주역을 매일 조금씩 읽는 것도 바로 그 까닭에서입니다. 모르긴 해도 주역을 읽다 보면 자기에게 일어난 ‘소중하고 신비한 경험’을 허투루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도 삶의 원리와 원칙을 발견하지 못하면 전화위복도 새옹지마도 아예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우레가 땅 가운데 있는 것이 복(復)이니, 선왕이 이를 본받아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 장사와 나그네를 다니지 않게 하였으며(至日閉關 商旅不行), 후왕이 나랏일을 살피지 아니하니라(后不省方). -- 방(方)은 일이다. 동지는 음이 돌아가고 하지는 양이 돌아가므로 복이 되면 적연히 아주 고요해진다. 선왕은 천지를 본받아 행하는 자이다. 동(動)이 돌아가면 정(靜)해지고 행(行)이 복귀하면 지(止)해지고 일이 돌아가면 일이 없게 된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197~198쪽]     


주역 스물네 번째 괘는 ‘지뢰복(地雷復)’, 복괘(復卦)입니다. ‘복은 형통하니 드나듦에 병통이 없어 벗이 와야 허물이 없으리라. 그 도를 반복해 이레만에 회복하니, 갈 바를 둠이 이로우니라’가 경문입니다. 초구만 양이고 나머지는 다 음효입니다. 만물이 돌아감을 알고(갈 바를 두고) 행하면 (벗이 곁에 있고)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주역의 가르침에 순응하려고 할 경우, 돌아갈 때를 분명히 아는 것이 관건이라 할 것입니다. 

스스로 평가해 보건대, 총론에는 강한데 각론에 가서 약해지는 것이 저의 큰 약점입니다. 늘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성취가 분명하지 않고 말미에 가서는 늘 흐지부지합니다. 본디 타고난 재주가 박약하고 보고 배우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압니다. 이 정도로 하고 글을 마치려고 하니 그 ‘각론에 약한 성정’이 또 심술을 부립니다. 제 인생에 또 하나의 반복되는 주기가 있다고 적고 싶어집니다. 하나 더 전화위복과 새옹지마의 주기가 제게는 있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말씀드립니다. 제 인생에는 두어 번의 큰 반복 주기가 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신비한 경험’이 그렇게 말합니다. 제가 저의 몸담을 곳을 스스로 정하는 주기가 그것입니다. 철든 이후로 두어 번 그런 선택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모두 ‘잘못된 선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늘 좋았습니다. 앞으로 또 한 번 그런 전화위복의 선택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천지를 본받아’ 행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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