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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06. 2019

과도하게 건너지 마라

주역, 택풍대과

과섭의 흉은 허물을 물을 데가 없다(過涉之凶 不可咎也)   

  

총각 시절 처음 아파트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천정이 너무 낮아서 마치 작은 상자 안에 내 몸이 들어간 느낌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아늑하긴 했으나 답답하고 좁았습니다. 방 하나를 얻어서 몇 달간 기거를 했는데 당시만 해도 꽤나 고급진 아파트여서 나름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결혼 후 잠시 한옥에서 살다가 다시 아파트로 옮겨서 지금까지 아파트 생활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포기하지 않고 천정 높고 마당이 넓은 집을 꿈꾸고 있습니다. 천정 높은 거실 위에 작은 다락방을 하나만 두고 2층 높이를 전부 단층으로 쓰고 싶습니다. 

낮은 천정이 저의 낭만적 기질에만 불편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안에서 간단한 몸 풀기를 할 때도 제약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거실에서 죽도를 흔들다가 거실등을 쳐서 그 파편이 제 엄지발가락을 덮쳤습니다. 발가락에도 동맥이 있는지 피가 용솟음쳤습니다. 가까스로 수습해서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죽도로 몸을 풀지는 않습니다만 목검이나 진검류로 몸을 풀더라도 천정이 낮으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벌써 천정 여기저기에 찍힌 자국이 많이 나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언제든지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것도 큰 복일 것입니다. 언젠가는 제 작은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역을 펴서 반성하고 실천할 일이 없는지 살펴봅니다.        


대과(大過)는 기둥이 흔들리니 갈 바를 둠이 이로워서 형통하니라. (「상전」에서 말하기를, 못에 나무가 빠진 것이 대과(大過)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홀로 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피해도 근심하지 않으니라)     

초육은 흰 띠풀을 써서 자리를 까니 허물이 없느니라.

구이는 고목나무가 싹이 나고, 늙은이가 처를 얻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느니라.

구삼은 기둥이 흔들리니 흉하니라.

구사는 기둥이 높으니 길하거니와, 다른 궁색함이 있으리라.(「상전」에서 말하기를, 동륭의 길함은 아래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구오는 고목나무가 꽃을 피우며 늙은 지어미가 젊은 장부를 얻으니 허물이 없으나 영예도 없으리라. (「상전」에서 말하기를, 고양생화(枯楊生華)가 어찌 오래갈 것이며 노부(老婦)와 사부(士夫)가 또한 추하도다)

상육은 지나치게 건너다가(過涉) 이마까지 빠지는지라 흉하나, 허물이라고 할 수는 없느니라.「상전」에서 말하기를, 과섭(過涉, 과도하게 건너는 것)의 흉은 허물이라 할 수가 없느니라(過涉之凶 不可咎也).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222~228쪽]     


주역 스물여덟 번째 괘는 ‘택풍대과’(澤風大過), 대과괘(大過卦)입니다. '못에 나무가 빠지고' ‘기둥이 흔들리는’ 괘입니다. 효사를 보면 변화가 막측입니다. 대체로 흉하지만, 사이사이 길함도 있습니다. 제게는 ‘고양생화(枯楊生華)가 어찌 오래 갈 것이며’라는 말과 ‘과섭의 흉은 허물이라 할 수 없다(過涉之凶 不可咎也)’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기둥 높은 집안에서 평소의 취미생활과 동락(同樂)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저의 집념(執念)이 ‘고양생화’이긴 하지만 큰 허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위로로 들립니다. 과다한 비용을 들이고 남들과는 다른 저 혼자의 낙을 추구한다는 것이 불문곡직 ‘대과(大過)’이긴 하지만, 그 또한 나눔을 목표로 한 것이라 군자가 취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만, ‘과섭(過涉, 과도하게 건넘)’하다가 이마까지 빠져서 흉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과섭지구 불가구야(過涉之凶 不可咎也)’라는 「상전」의 말씀을, “과도하게 건너다가 흉하게 되는 것은 아무도 탓할 수가 없다”라고 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자만에 빠지지 말고 항상 노심초사 전전반측하며 좋아하는 것을 지킬 일입니다. 택풍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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