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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08. 2019

마라톤은 왜 하는가?

출발점과 도착점

마라톤은 왜 하는가   

  

꽤 규모가 있는 마라톤 대회의 출발점(도착점) 근처에 사는 덕분에 일년에 한두 번은 꼭 불편을 겪어야 합니다. 사방팔방으로 교통 통제가 되기 때문에 급한 볼 일이 있어도, 싣고 갈 짐이 많아도, 속수무책으로 지하철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마라톤은 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무리하면서까지(두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죽자 사자 달릴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생각입니다(아마츄어들의 게임에서는 종종 인명 사고도 납니다). 아무래도 그것은 ‘인간의 체력과 사회적 생존 방식’에 어긋나는 경기인 것 같습니다. 그저 ‘관성의 법칙’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고, 밑도 끝도 없이, ‘인생은 마라톤 경기와 같다’라는 격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종의 시뮬라크르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정도의 가치만 가져도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사는 게 뭐 별 거 있나요?). 인생을 누리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출발점에서의 순위와 도착점에서의 순위가 달라질 확률도 높아질 것입니다. 좋은 부모,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혼맥으로 출발한 이들이 백년 가까이 살다보면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결승점에 훨씬 늦게 도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라톤 경기는 그런 ‘인생의 진실’을 가르치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의 소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생각, 행동, 감정의 기본은 어디에 있는가? 원래 타고난 기질도 기초공사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서로 성격은 많이 다르듯이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운 환경은 타고난 것만큼이나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성격 형성에 있어서 유전적 영향은 약 40%라고 한다. 그리고 IQ는 취학 전에는 40%, 청소년기는 60% 정도가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 거꾸로 말해 그 나머지는 교육과 양육의 몫이다. 그 중에서도 사회에서 공동생활을 하기 전에 가족단위에서 부모와 형제로부터 받는 영향은 원초적이며 이후의 삶에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또 그 안에서 생길 문제, 아이가 자라면서 겪을 문제도 비슷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기본단위인 ‘가족’을 다루고 있는 전래동화는 어느 곳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든 결국 비슷한 주제와 갈등을 다룰 수밖에 없다. [하지현, 『전래동화 속의 비밀코드』(살림,2009.3쇄), 23쪽]     


인용문은 ‘전래동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저는 그것이 지닌 보편적인 갈등구조와 문제의식(주제)에 관한 설명보다, 한 인간의 삶의 질에 ‘사회적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평균적으로 50%에 육박한다는 통계 수치에 더 관심이 갑니다. 저는 그 수치의 의미를 ‘자기가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로 해석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출발점에서의 순위는 얼마든지 노력을 통해서 뒤집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라톤처럼 긴 시간 동안, 많은 체력 소모를 요구하는 경기에서라면 그런 가능성은 훨씬 더 증가할 것입니다.     

자기가 젊어서(어려서) 한 일, 성공이든 희생이든, 그 출발점의 순위에 대해서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기득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그들은 전래동화의 ‘계모’처럼 굽니다. 뒤늦게 앞서 달려나가는 이들을 전실 자식 대하듯 합니다. 마라톤은 마지막 결승점의 순위로만 등수를 매깁니다. 그 ‘마지막 등수’를 위해 끝까지 열심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일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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