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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08. 2019

깊이 파고 드는 자는 흉하다

주역, 뇌풍향

깊이 파고드는 자는 흉하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자이다”, 최근의 한 비리사건의 주역(主役)을 두고 뉴스 해설자가 하는 말입니다. 흔히 그런 사람을 두고 브로커라고도 부릅니다. 보통은, ‘필요한 것을 주는’ 능력이 비상한 기획력과 추진력,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어발 인맥’을 바탕으로 가능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깊게 파고드는 힘’입니다.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관계의 맥’을 공략해서 자기가 원하는 해결을 도모할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에게 ‘필요로 하는 그 무엇’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그들 ‘능력자’들에게는 도중하차라는 게 없습니다. 끝을 볼 때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틈날 때마다, 자기를 곁에 두면 한없이 즐겁고 편하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반대로 자기를 멀리하면 한없이 불쾌하고 불편해질 것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에게 각인시킵니다. 

    

직장 생활을 수십 년 하다 보면, 뉴스에 나올 만큼의 거물은 아니더라도, 그런 능력자를 한두 사람은 꼭 봅니다. 불가능한 것도 그에게 맡기면 가능한 것으로 바뀝니다. 좋은 관계 속에서 만날 때도 있고 좋지 않은 관계 속에서 만날 때도 있습니다. 좋은 관계 속에서 그런 ‘능력자’를 만나면 마치 세상을 다 얻는 느낌을 받습니다. 당면한 난제가 어렵지 않게 해결이 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천지가 화평합니다. 직접 하기가 껄끄럽고 부끄러운 일도 그를 통하면 쉽게 해결됩니다. 그렇지 않고 좋지 않은 관계 속에서 만나면 매사가 불편합니다. 그들은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심플한 관계망을 즐겨 짜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불쾌감, 피로감을 느껴야 합니다. 혹시 돌아올 불이익을 생각해서 주변 정리도 자주 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처음부터 깊이 구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일반인들과는 많이 다른 외양과 포스를 보일 때가 많지만, 개중에는 그것마저도 교묘히 감추고 있는 경우도 있어 주의를 요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후자가 훨씬 더 흉한 자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능력자를 곁에 두고 일을 도모하다가 망조에 들면 그 끝이 험하기 그지없습니다.      


초육은 항상 파고드는 자라, 바르더라도 흉하여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初六 浚恒貞凶无攸利) -- 항괘의 처음에서 가장 괘의 밑에 처해 있으니 처음부터 깊이 구하는 자이다. 깊이 파고들어 밑바닥까지 다해서 사물로 하여금 남는 게 없게 하니, 점점 이에 이르러도 사물이 견디지 못하거늘 하물며 처음부터 깊이 파고드는 자랴! 이로서 항을 삼으면 바르더라도 흉하게 되고 덕을 해치게 되어 베풀어도 이로움이 없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256쪽]     


주역 서른두 번째 괘 ‘뇌풍항’(雷風恒), 항괘(恒卦)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초육에 대한 효사입니다. 육효 중에서 가장 아래에 있는 음효에 대한 설명입니다. ‘바르더라도 흉하여 이로울 바가 없다’가 핵심입니다. 굳이 ‘덕(德)’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앞장에서 ‘군자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본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 이기성 앞에서 ‘처음부터 깊이 구하는’ 일은 그 자체가 공격입니다. 선악을 떠나 흉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흉한 일을 반겨 맞으면 내 안의 이기성이 무엇인가를 탐낼 경우이고(그 힘을 빌릴 요량이고), 질색하며 싫어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를 방어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따라가다가 해체될까봐). 주역은 말합니다. “깊이 파고드는 것은 흉합니다. 그런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은 망조입니다.” 그러니 행여 내 안에서 그런 것을 본다는 것은 길한 징조입니다. 기회를 얻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뇌풍항! 준항정향무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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