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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17. 2019

길 위의 사랑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과 찬찬

길 위의 사랑   

  

모든 경우가 다 그런 건 아니겠습니다만, 보통은 눈으로 보면서 듣는 노래가 더 감동적일 때가 많습니다. 늙은 우리 세대의 가객들, 이를테면 장사익이나 정태춘이나 최백호 같은 이들의 노래하는 장면이나, <불후의 명곡>, <나는 가수다>류의 TV프로를 보면 쉽게 알 일입니다(이 부분은 전적으로 저의 주관적인 판단이니 혹시 견해가 다르더라도 양해바랍니다). 아마 대표적인 케이스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아닌가 싶습니다. CD로 들을 때와 유튜브나 DVD(음악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고 들을 때가 많이 다릅니다. 보고 듣는 게 훨씬 더 좋았습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가 1999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국내 개봉 때 음악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미국 음악인 라이 쿠더가 콤파이 세쿤도, 이브라함 페레 등 초야에 묻려 있던 쿠바의 전설적인 뮤지션들을 다시 불러 모아 만든 음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습니다. 이 음반은 세계적으로 600만장이 판매되었고, 국내에서도 10만장이 팔렸습니다. [이동진, 『필름 속을 걷다』 참조]

그 중에서도 이브라함 페레와 그의 동료 그리고 라이 쿠더(영화음악 기획자)가 함께 「찬찬(Chan Chan)」을 부르는 모두(冒頭)의 실황 연주 부분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했습니다. CD에는 없는 ‘장면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그들 쿠바의 예자(藝者)들을 그렇게라도 면대(面對)할 수 있었던 일은 제 일생의 행운 중의 하나였습니다. 감쪽같이 모르고 죽을 수도 있었던 일인데 어떻게 그렇게 조우(遭遇)가 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그 까닭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나이 들어서는 거의 음악과 담을 쌓고 지내던 차였는데 그들이 도적처럼 제게 닥쳤다는 게 신통하기까지 합니다. 쿠바의 예자들이 겪어야 했던 ‘6펜스’짜리 삶의 애환(굴욕)과 백만불짜리 예술(영광)이 그렇게 한 화면 안에서 공존할 수도 있는 게 인생인 모양입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문득 제 주변을 돌아다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6펜스’짜리로 여기던, 가깝고 낯익은 것들 중에도 혹시 백만불짜리가 있지나 않을까, 그런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 음악과 음악의 주인들이 견뎌온 세월이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음악이 불화한 그 긴 시간 동안, 속절없이 견뎌야 했던 그 보상 없는 날들의 쓸쓸함과 비장(悲壯)이 훨씬 더 큰 감동을 안겼습니다. 그들은 예술을 조롱하는 각박한 삶에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끝내 ‘하나 살아남을(그들의 경우처럼 적어도 50년은 견딜 수 있어야 진정한 藝者라 할 것입니다)’ 자신들의 기예(技藝)를 지켜내고, 인생의 최종 장면을 그렇게 화려하게 꽃피우는 그들의 삶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들을 보며, 불운과 허무를 뚫고 나오는 예술, 보상 없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맹목적인 찬미를 행하는 진정한 예자들의 모습은 어디서나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에 익숙해지면서, 「찬찬(Chan Chan)」이 왜 시종일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이 불후의 DVD의 배경 음악이 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뜻 모를 가사가 저음의 색소폰 소리에 실려 처음 제게 올 때의 그 감미로운 느낌을 종내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당신에 대한 사랑은 감출 수가 없어요. 

당신을 원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후아니타와 찬찬이 해변을 거닐 때 두 사람의 가슴은 두근거렸죠. 

나뭇잎을 치워줘요. 거기 앉고 싶어요.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 곁에 있겠어요. 

나뭇잎을 치워줘요. 거기 앉고 싶어요.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 곁에 있겠어요.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난 알토 세드로에서 나카네로 가고 있네. 

쿠에르토를 거쳐 마야리로 가야지….     


「찬찬(Chan Chan)」은 결국 그들의 주제였습니다. 어디로 향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길에서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 그것 이상의 예술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길 위에서의 사랑’은 지구 위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태어날 때부터 내장된, 원초적인 원망(願望)이라 할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낭만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그들은 그렇게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마지막 ‘길 위의 사랑’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떠남과 만남, 그 두 가지 숙명 앞에서 우리는 평생토록 일희일비하며 삽니다. 쿠에르토가 어딘지 마야리가 어딘지 먼 곳의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찬찬’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비록 꿈이더라도, 그들처럼 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미지의 사랑이든, 잃어버린 옛사랑이든, 모든 그리운 것들을 그리며 말입니다…….   

  

음악만 담은 CD보다는 그것을 만들 게 될 때까지의 과정과 연주 실황을 보여주는 DVD가 훨씬 더 울림이 컸다는 것은, 결국 모든 예술이 인간과 그의 삶으로 귀결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의 연꽃이 될 때 그 감동이 극대화 된다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건축이든, 무용이든 인간이 만든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결국 진흙탕에서 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우회로를 거쳐도 그것들은 종내, 하나 없이, 모두 만든 자의 인생을 은유하거나 환유할 뿐입니다. 그 어떤 것이든 생(生)의 보조관념에 불과합니다. 원관념 없는 보조관념은 자체로 상징이 되기 전에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상징은 본디 ‘태어나는 것’이라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감동으로 엮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술은 인간이 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옛 성현들의 말씀을 감히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먼 이방에서 흘러든 노랫가락 하나에서도 제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신통합니다. 아마 그것도 ‘하나 살아남을’ 진정한 예술의 힘(‘6펜스’짜리 삶의 애환)이 주는 분에 넘치는 선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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