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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19. 2019

작은 여우는 큰 내를 건널 수 없으니

주역, 화수미제

작은 여우는 큰 내를 건널 수 없으니   

  

언제가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각자의 체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태양, 소양, 태음, 소음 등 이제마의 사상 체질에 따른 자가진단이었습니다. 식성(食性)과 체형(體型)이 주로 거론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논쟁이 붙었습니다. “체질은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저는 변한다는 쪽에 섰습니다. 제 경우를 두고 봤을 때 그런 것 같았습니다. 큰 테두리 안에서는 변화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 젊을 때, 나이 들었을 때가 달라도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한 운동을 열심히 오래 한 뒤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식성도 많이 변했습니다. 육식 위주의 식성이 ‘육반채반(肉半菜半)’으로 변했고, 야행성 체질이 아침형 체질로 변했습니다, 지금의 체형이 고정된 것은 장년(壯年)에 들어서입니다. 성질도 많이 변했습니다. 즉결 심판형에서 두고 보자형으로 많이 갔습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그런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그것도 원래부터 타고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사상 의학 쪽 주장을 한 번 살펴봤습니다.    

 

1.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은 각자의 체성(體性)은 혈액형과 같이 선천적으로 부모의 체성(體性)을 이어 받는다고 본다. 그러나 모계(母係)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관계로 외할머니의 체성(체질)을 받아 태어나는 수도 있다.

2. 사상의학은 몸만을 위한 의학이 아니고, 몸과 마음을 다 같이 다스려야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3. 사상의학은 같은 증세라 할지라도 체질에 따라 몸이 차가운 사람은 열성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서 몸이 정상으로 되돌아오게 해 주고, 몸이 뜨거운 체질은 차가운 성질의 약을 써서 몸이 정상적으로 균형이 잡혀서 신진대사가 잘되게 한다. 

4. 사상의학은 체질에 맞는 약을 처방하여 부족한 기(氣)를 보충하여 증대된 면역력으로 하여금 질병을 물리치게 한다. 

5. 사상의학은 같은 증세라 할지라도 체질마다 몸의 성질(陰陽의 차이)과 약의 성질이 전혀 다른 처방을 쓰는 것이 특징인데 반하여, 현대의학은 체질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동일한 약을 처방하므로 종종 부작용이 발생한다. 반드시 자기체질에 맞는 식이요법을 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식이요법들은 사상의학(체질)과 무관한, 식생활이 전혀 다른 서양식인 경우가 많다. 체질(體性)을 모르면, 약 식이요법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 사상의학의 목적은 체질에 맞는 섭생으로 부족한 기를 보충하는 데 있다. 

    

요점은 선천적으로 부모의 체성을 이어받아 체질이 형성되므로 체질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기 체질에 맞는 섭생과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전적으로 체형이나 체질을 타고 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평생을 살면서 내 몸과 마음에서의 ‘변화’를 일절 도외시하고 산다는 것은 좀 썰렁하다는 느낌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다 가짜다.”라는 믿음으로 살아야 허무한 인생이 좀 덜 허무하지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주역을 읽는 재미도 훨씬 덜할 것 같습니다. 

    

주역의 논법에 따르면, 설명이 구구한 것들, 상충하는 설명이 자주 등장해서 어렵거나 그 반대로 지나치게 일사불란, 조리정연하게 상식에 부합하는 것들은 가치 없는 것일 공산이 큽니다. 지나치게 복잡한 것이나 지나치게 명료한 것들은 진정성이 좀 덜하다는 것이지요. 고등어를 한 번 예를 들어볼까요? 고등어라는 생선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고등어가 생물일 때 식료인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물이 좋다’, ‘물이 안 좋다’라고만 평가하면 됩니다. 물론 살집이 통통한지 아닌지도 보겠지요. 그러나 유통과정에서 이미 그런 평가와 분류는 공급자 쪽에서 이루어져 나올 때가 많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 아니면 불량하다가 우선입니다. 양호하면(물이 좋으면)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아직은 물이 나쁜 상태가 아닌데 굳이 미리부터 갑을병정 식으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요? 공연한 걱정을 사서 하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치료 과정에서 그런 분류가 나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부터 아플 것을 상정하고 자신의 체질을 몇 개의 분류 기준 안에서 특정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가상적 상황’을 미리 상정하고 그것에 따라 우왕좌왕 하는 것은 별로 현명한 태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나는 체질은 당연히 있습니다. 살아보면 자신의 어디가 약한지 알 수 있습니다. 약한 곳을 보(補)하면서 운동에 충실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살면 됩니다. 자작 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병원에 가서 의술, 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될 일입니다. 갑을병정, 애매한 것을 더 애매한 용어로 규정하는 분류법은 건강하게 사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살 만큼 살아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굳이 부연해서 한 말씀 드린다면, 작은 음(소음)이다, 혹은 음이 적다(작다)라는 것은 다른 큰 무엇이(양) 그것과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고요. 결국은 모두 잡종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크게 보면 몸도 마음도 이것저것 섞여 있는 상태라는 점입니다. 그것들의 혼합 비율은 또 수시로 변하고요. 저에게도 한의사 친구가 있습니다만 그 친구가 제 체질에 대해서 명확하게 ‘한 말씀’을 아직 안 해 주고 있습니다. 체질을 판단하는 두어 가지 실험도 해 보았습니다만 다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제(未濟)’형 체질이라 스스로 여깁니다. 아직 완전히 고정되지 못한 체질인 거지요. 서론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주역 미제(未濟)괘를 보면서 뜬금없이 든 소감이었습니다.  

   

... 미제는 형통하니 작은 여우가 거의 물이 마른 데로 건너다가 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울 바가 없느니라. (未濟亨小狐汔濟 濡其尾无攸利)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78쪽]   

  

주역의 마지막 괘는 ‘화수미제’(火水未濟), 미제(未濟)괘입니다. 작은 여우(小狐)는 대천(大川)을 건널 수 없으니, 물이 거의 마른 후에야 건널 수 있습니다. 미제(未濟)의 때에 처해서는 반드시 강건함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간 후에야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여우는 비록 건널 수 있더라도 여력이 없어 그 꼬리를 적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역의 마지막 교훈은 “때를 기다리고 끝까지 자중하라.”인 것 같습니다.    

 

주역의 가르침에는 어긋나는 일입니다만(제가 지닌 작은 여우 본색일까요?) 한 마디 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제 주변의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사람의 형색을 동물에 비유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오늘의 ‘작은 여우’도 그렇습니다. 여우 자체가 ‘큰 인물’과는 거리가 멉니다만 여우 중에서도 ‘작은 여우’이니 소인배 중의 소인배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작은 여우들이 모여서 당(黨)을 이루면 늘 소란스럽습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개중에는 제법 큰 놈도 있어 자기가 마치 호랑이라도 되는 듯 느릿느릿 걷고 말도 쉬엄쉬엄 하는 놈도 생깁니다. 한 번씩 사람들을 모아놓고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후천개벽의 때가 왔다.”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가관입니다만, 인간사 좁은 바닥에서는 왕왕 있는 일입니다. 작은 여우들이 떼를 지으면 호랑이도 황구(黃狗)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용이 개천에 내려오면 새우가 놀리고 호랑이가 저자에 내려오면 황구가 놀린다”라는 <변검>이라는 중국영화에 나오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대놓고 찧고 까불며 까르르댑니다. 여론도 조작하고 순진한 새끼 호랑이 정도는 아바타 게임을 벌여서 간단히 사냥을 해버립니다. 욕심도 많아서 싸움이 끝나고 공치사가 적으면 앙심을 품고 난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어디서나 작은 여우들이 문젭니다. 물이 마르면 여우들이 큰 내를 건너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물이 마르기 전에 힘을 모아 여우 사냥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이상은 어제 모종의 회의에 참석해서 갑론을박, 자기들에게 유리한 모종의 ‘규정 및 시행 세칙’ 제정안을 마련하려고 다투는 작은 여우들의 준동을 본 연후의 소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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