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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20. 2019

군자는 표범으로 바뀌고 소인은 낯을 고치니

주역, 택화혁

군자는 표범으로 바뀌고 소인은 낯을 고치니     

후회 없이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 누구의 인생이라도 만족보다는 후회가 많은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습니다. 젊은 후배 교수들이 “늙어서는 선생님 같이 살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간혹 합니다. 저는 그냥 웃고 맙니다. 속을 모르니 하는 말일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니 후회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언가 새로이 일을 도모할 때마다 ‘후회 콤플렉스’가 작동합니다. ‘괜히 시작하는 게 아닐까?’라는 염려가 늘 뒤따릅니다. 그런 걱정이 앞서서 생가만 그득하지 진도는 1도 나가지 못하는 것이 여럿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음에 드는 집 하나 지어서 유유자적하며 살자”라는 희망입니다. “살아생전에 집 세 채 지으면 제 명에 죽지 못한다”라는 속설의 공포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별 기대 없이 시작했으나 ‘끝이 창대한’ 것도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들어와서 매일 한두 편씩 글을 쓴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주 후회 없는 일입니다. 제 ‘삶의 지평’이 많이 넓어진 것 같습니다. 가식 없이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 몇 십 억의 재산보다도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후회가 없으니 앞으로도 그대로 갈 것 같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라 후회의 빌미를 주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오늘도 평소 하던 대로 주역 한 구절을 읽어 봅니다.     


... 혁(革)은 시일이 지나야 이에 믿으리니, 크게 형통하고 곧음이 이로워서 후회가 없어지느니라. (革已日乃孚 元亨利貞悔亡) -- 저 백성이란 평상시에는 함께 할 만하되 함께 변화에 대응하기는 어렵고, 이루어놓은 것을 같이 즐길 수는 있으되 일을 도모하도록 꾀함에는 같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혁명의 도는 그 날로 믿지 못하고 시일이 지나야 이에 믿는다. 믿은 후에야 ‘원형(元亨), 이정(利貞), 회망(悔亡)’을 얻을 수 있다. 시일이 지났는데 믿지 않으면 혁명이 부당한 것이다. 회린(悔吝)은 변동하는 데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혁명이 합당하면 그 후회가 없어진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375쪽]     


주역은 ‘혁명 좀 해 보신 분들’에게도 좋은 책입니다. 마흔아홉 번째 ‘택화혁’(澤火革), 혁괘(革卦)의 경문을 해설하는 서두가 그걸 보여줍니다. ‘혁명’이 삶의 한 과정임을 생각하고 읽으면 더 깊이 와 닿는 설명입니다. 사람이 사는 일이 곧 혁명하는 일이기에 예순네 개의 괘 중 하나로 혁괘가 취택된 것이 아닌가도 싶습니다. ‘백성’에 대한 언급이 재미있습니다.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을 같이 즐기는’ 존재이지 ‘일을 도모하도록 꾀함에 같이하기’에는 어려운 존재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영웅들이 나타나서 그들을 선동하고 감화시키기 전에는 그들은 꼼작도 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영웅들이 몇 사람 죽어나가야 백성들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저에게 ‘후회’를 남긴 최근의 몇 가지 일들이 결국은 제 주변의 ‘백성’들을 제대로 선동하고 감화시키지 못한 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효사(爻辭)에서는 상육(上六)의 ‘군자는 표범으로 변하고 소인은 낯을 고치니(君子豹變 小人革面)’가 심금을 울립니다.     


... 변화의 마침에 거해 변화의 도가 완성되었으니, 군자가 이에 처함에는 그 문채(文彩)남을 이루고, 소인은 그 이뤄놓은 것을 좋아하므로 낯을 바꿔 위를 좇는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381쪽]     


“소인은 그 이뤄놓은 것을 좋아하므로 낯을 바꿔 위를 좇는다(小人樂成 則變面以順上也)”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것으로 오늘의 주역 읽기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표범이 되기를 기대하고 높은 자리에 앉혔더니 고작 하는 일이라곤 ‘낯을 바꾸는’ 일뿐인 고위공직자들을 종종 봅니다. 혁명의 문채를 자랑하지 않고 고작 한다는 일이 ‘이뤄놓은 것을 좋아’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혁명을 완성하지 못하고 또 망합니다. 

안으로 시선을 돌려도 매 한 가지입니다. 제 개인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표범이 되기보다 ‘낯을 바꾸는’ 일에 더 능숙했습니다. 열두어 살 때부터 늘 혁명을 꿈꾸고 살았습니다. 젊어서 연전연승, 혁명이 성공할 때는 한때 표범인 양 했으나 나이 들면서 ‘낯을 바꾸는’ 일이 훨씬 잦았습니다. 오늘 주역을 읽으면서 다시 혁명 앞에 섭니다. 제대로 ‘변화의 도’를 완성시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립니다. 몸에도 마음에도 군살이 많아 우둔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심하고 군살부터 빼야겠습니다. 인생 정리기에 제가 새로 도모하는 일이 두어 가지가 있습니다(자세한 것은 나중에 고하겠습니다). 하나는 시절 운이 좋아 ‘낙성(樂成)’하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 ‘변화의 마침에 거함(居變之終)’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1,2년 안에 그 역시 ‘낙성(樂成)’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마지막 혁명이니 부디 표범이 되어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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