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선규 May 06. 2019

위대한 것의 몰락

암흑의 핵심2

위대한 것의 몰락      

『암흑의 핵심』이 좋은 글쓰기 교본이 되고 있는 것은 앞에서 든 것처럼(‘그의 환영이 나와 함께’라는 글) 묘사의 적절성(환영을 그려내는)이나 관념의 현란함(암흑의 핵심을 강조하는)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암흑의 핵심’이라는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이 소설은 무엇인가의 ‘핵심’에 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당연히 ‘핵심을 보는 눈’이 이 소설에는 있습니다. ‘암흑의 핵심’을 보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 소설의 목적은 인간을 꿰뚫는 것입니다. 한 치의 가감도 없는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이해와 설명을 하고 싶은 것이 이 소설을 쓴 작가의 포부입니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위대한 것의 몰락’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준 ‘승리하는 인간’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암흑의 핵심』은 리얼리즘 소설입니다. 오히려 『노인과 바다』가 판타지입니다. 

모든 위대한 것들은 선악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듭니다. 그만큼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범인(凡人)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그것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인간이 인간 아닌 것을 표방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합니다. 노스럽 프라이가 『비평의 해부』라는 책에서 “영웅이라도 신이 아닌 이상은 환경에 패한다.”라고 말한 것이 생각이 납니다. 신이 아닌 것들은 항상 ‘몰락의 기회’를 가진다는 것을(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소설은 반드시 적고 맙니다. 『암흑의 핵심』은 그런 소설의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오늘은 소설을 좀 많이 인용하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회사의 상거래 비밀을 폭로하고 싶지는 않아. 사실 나중에 지배인은 커츠씨의 방법이 그 일대의 상거래를 망쳤다고 하더군. 그 점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의견도 없어. 다만 그 말뚝 위에다 사람의 머리를 얹어둔다고 해서 딱히 무슨 이익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자네들이 분명히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야. 그 머리들은 커츠 씨가 자기의 여러 가지 욕구를 충족시킴에 있어서 자제력을 결하고 있었으며, 그에게는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지. 그에게는 무언가 사소한 것이 결핍되어 있었는데, 절박한 필요성이 대두될 때 그것은 그의 그 화려한 달변에도 불구하고 아무데서도 찾아 볼 수 없었어. 그가 그 결핍을 알고 있었는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다구. 다만 나는 그 앎이 결국은 그를 찾아왔지만 아주 마지막 순간에 찾아왔었다고 생각하네. 그러나 밀림은 일찌감치 그의 정체를 알아냈고 그 어이없는 침략에 대해 그에게 끔찍한 보복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그 밀림이 그가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속삭여주었으리라고 생각하네. 그는 이 거대한 고독과 사귀게 될 때까지 그런 것들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 밀림의 속삭임은 그에게 거역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혹적일 수 있었던 거야. 그는 속이 텅 빈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 속삭임이 그의 내부에서 요란한 소리로 울릴 수가 있었어……. 내가 망원경을 내려놓자 그간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던 머리가 이제는 접근할 수 없이 먼 곳으로 껑충 뛰어 물러서는 듯했다.

그 커츠 씨의 찬양자는 약간 풀이 죽어 있었어……. 그는 희미한 목소리로 황급히 말하기를 자기로서는 그 상징물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감히 치워버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하더군. 원주민들을 무서워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어. 커츠 씨가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원주민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거야. 원주민들에 대한 커츠의 지배적 우위는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네. 그들이 친 캠프가 그곳을 둘러싸고 있었고, 추장들이 매일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는 거야. 추장들이 그의 앞에서는 기어다니다시피 했나봐……. <원주민들이 커츠 씨에게 접근할 때의 의식절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요.> 내가 소리쳤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따위 세부 사항이 커츠 씨의 창 아래에서 말뚝 위에 놓인 채 말라가고 있던 그 인간의 머리보다도 내게는 더 견디기 어렵다는 느낌이 엄습해 오더군. 어쨌든 그 말뚝 위의 머리야 야만적인 광경에 불과했지만, 나는 마치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오묘한 공포 지대로 단숨에 뛰어든 듯한 느낌이었어. [조셉 콘래드, 이상옥 옮김, 『암흑의 핵심』 , 민음사, 2004(4쇄), 131~133쪽]     

화자(말로)가 증언하는 것은 커츠의 몰락이었습니다. 커츠는 야만의 최대치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문명을 학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지닌 문명의 이기들과 교양은 오직 ‘지배와 복종’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화자 말로는 그것을 ‘밀림의 속삭임’에 그가 저항하지 못한 결과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속이 텅 빈 인간이었기 때문에 그 속삭임이 그의 내부에서 요란한 소리로 울릴 수가 있었어……’라고까지 그를 끌어내립니다. 그러나 커츠는 ‘텅 빈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였습니다. 그는 너무 자신을 채우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그는 큰 매혹으로 다가온 ‘밀림의 속삭임’과 자신의 그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만큼 바꿀 것이 안에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속이 ‘텅 빈 인간’이었다면 그는 그렇게 몰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밀림의 속삭임’을 아무도 모르게 문명으로 가져와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을 것입니다. 원주민 쪽에서 봐도 그는 도저히 ‘텅 빈 인간’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문명을 접하지 못한 아프리카 원주민들이라 해도 ‘텅 빈 인간’에게는 머리를 조아리지 않습니다.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커츠가 말로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텅 빈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은 말로가 커츠의 약혼녀를 만나 나눈 대화의 내용으로도 증명이 됩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분의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는 말하더군. <그분은 사람에게서 가장 좋은 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방편삼아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곤 했지요.> 그녀는 감정에 겨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건 위대한 사람들의 천품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말을 계속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녀의 나직한 목소리는 내가 기왕에 들은 적이 있는 불가사의함과 황폐함과 슬픔으로 가득한 다른 모든 소리들을 동반하고 있는 듯했지. 그 목소리에는 강에서 잔물결이 이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의 살랑거림,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내는 웅얼거림, 멀리서 들려오는 뜻 모를 절규의 그 희미한 울림, 영원한 어둠의 문턱 너머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 등이 섞여 있었단 말일세. <선생께선 그분의 말을 들어보셨겠지요! 그러니 알고 계시겠군요!> 그녀가 소리치더군.

<네, 알고 있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절망 비슷한 것을 느끼며 말했지만, 실은 그녀가 가슴속에 품고 있던 믿음 앞에서,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비현세적인 이글거림으로 빛을 내고 있던 그 큰 구원의 환상 앞에서, 내가 머리를 숙이고 있었을 뿐이야. 그 기세등등한 암흑으로부터 그녀를 지켜내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내 자신을 지키는 일조차도 불가능했을 거야. 

<저에게는, 아니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손실입니다!> 그녀는 이처럼 고쳐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아름다운 너그러움을 베풀고 있었어. 그러고 나서 중얼거리며 덧붙이더군. <온세상 사람들의 손실이기도 하지요.> 나는 마지막 저녁노을 덕분에 눈물이 글썽한 그녀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그건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 눈물이었어. <중략>

<우린 언제나 그분을 기억할 것입니다.> 내가 서둘러 말했지.

<이럴 순 없어요!> 그녀가 울부짖더군. <이 모든 것이 상실될 순 없어요……. 그 고귀한 생명을 희생했는데도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겨우 슬픔뿐이라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분이 얼마나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 선생께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저도 그 계획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요. 그걸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무언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그분의 말씀은 죽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분의 말씀은 남겠지요.> 내가 말했어.

<그리고 그분이 보인 모범도 남아야 해요.>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속삭이더군. <사람들은 그분을 우러러보았고, 그분의 훌륭하심은 모든 행동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어요. 그러니 그분이 보인 모범만은…….>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지. <그분이 보인 모범도 남아야지요. 아무렴요. 그 모범도 남아야 한다구요. 제가 그걸 잊었군요.> [조셉 콘래드, 이상옥 옮김, 『암흑의 핵심』 , 민음사, 2004(4쇄), 171~173쪽]     

커츠의 약혼녀는 커츠의 몰락을 모릅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커츠가 지닌 ‘위대한 사람들의 천품’입니다. 그녀에게 커츠의 죽음은 ‘희생’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위한 대속(代贖)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녀가 말하는 ‘모범’과 이 이야기를 전하는 말로가 말하는 ‘모범’은 정반대의 것입니다. 말로가 본 것은 ‘위대한 몰락의 모범’이었습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위대한 몰락’이었습니다. 말로는 자신의 방식으로 커츠가 보인 ‘위대한 몰락의 모범’을 기억합니다. 그 기억의 전달이 바로 이 소설이고요.

작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말로’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한 개인의 기억’으로 커츠의 몰락을 요약하는 것이 마지막에 가서 큰 효과를 봅니다. 이 마지막 약혼녀와의 대화 장면이 그래서 더욱 생생합니다. 또 한 가지의 소득.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가 주변의 그 숱한 ‘커츠’들을 큰 어려움 없이 불러낼 수 있는 것도 아마 그 ‘거리 두기’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저항하는 자의 목을 베어 창 가 말뚝 위에 걸어두는 커츠, 그러나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하나의 ‘모범’으로 기억되는 커츠, 그런 우리 안과 밖의 커츠를 부담 없이 소환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작가가 베푼 그 작은 친절 때문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쇠는 나무를 이기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