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선규 May 11. 2019

글쓰기의 전략 – 끝맺는 법

글쓰기 인문학 10강 부록

글쓰기의 전략 – 끝맺는 법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시작 부분입니다. ‘시작이 절반’이니 다른 부분보다 어려운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글쓰기 연금술>이라는 타이틀로 이런저런 글을 올립니다만, 그나마 조금 생각을 하는 것은 오직 시작 부분입니다. 그 이하는 그냥 ‘붓 가는 대로’ 씁니다. 다만 마지막 부분, 즉 결말 부분은 조금 신경을 씁니다. 결말에 따라서 글맛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경 쓰는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①역지사지(易地思之)는 충분했는가?(이성에 호소하는 글이든 감정에 호소하는 글이든,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글들은 반드시 역지사지를 바탕으로 쓰여져야 합니다)     

②강조할 부분은 없는가?(본문 가운데 특별히 더 강조할 점이 있으면 다른 용어를 써서, 가급적이면 독자가 두 번 듣는다는 느낌을 안 가지도록 해서, 한 번 더 반복하되 그것이 주(主)가 되지 않도록 합니다)     

③여운(餘韻)을 남겼는가?(본문의 내용을 기계적으로 요약해서 단정적인 어조로 끝을 맺거나 섣부른 전망을 꾀해서 독자 스스로 ‘발견의 진실’을 찾아 나서도록 격려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④반전(反轉)이 가능한가?(반전이 가능하다면 미련 없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 ‘한 문장’을 찾아서 결론을 뒤집습니다. 뒤집어서 더 좋은 결론이 나오면 그것이야말로 십중팔구 명문장이 될 공산이 큽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판에 박힌’ 설명은 별로 글쓰기 공부에 큰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같이 한 번 보실까요?     


...결말은 서두와 본문에서 이야기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 부분이다.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요약’과 ‘전망’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요약’과 ‘전망’을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보여주면 된다. 즉, 서두에서 제기한 문제와 그것에 대한 본문의 논의를 요약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보여주거나 제기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바탕으로 전망하면서 끝을 맺는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요약을 할 때 서두나 본문에서 썼던 말을 그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약이므로 본문에서 다룬 내용이어야 하지만 표현은 달라야 한다.

전망을 할 때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 이를 밝히는 것은 필자의 정직성을 보여주고 독자의 반박을 피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정희모, 이재성, 『글쓰기의 전략』, 들녘, 2007(28쇄), 220~221쪽.]    

 

인간이 만드는 지상의 글쓰기는 언제 봐도 ‘미완(未完)’입니다. 오직 ‘신의 목소리(필적)’만이 수정을 거부합니다. 그것만이 완전한 글쓰기라 할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연암이 <소단적치인>에서 밝히고 있듯이, 끝까지 한 명의 적병(敵兵, 賊兵)이라도 더 잡아죽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바로 글쓰기 전장(戰場)터입니다. 결말이 ‘표현만 다른’, 앞 내용의 동일한 반복이거나 이미 밝힌 것들을 재차 밝혀서 ‘전망’하는 장소가 아님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좋은(프로의?) 글쓰기는 마지막 마침표 하나까지 적을 죽이는 공격의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암기(暗器, 暗技)의 사용도 불사해야 합니다. 기계적인 요약과 섣부른 전망이 절대로 결말을 자기 영토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본 내용입니다. 송나라의 학자 정이는 인생의 3가지 큰 불행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첫째, 어린 시절에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는 것.

둘째, 권세 좋은 부모 형제를 만나는 것.

셋째, 뛰어난 재주와 문장력을 가지는 것.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자(程子)의 말씀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소년등과(少年登科) 끝에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을 신문 방송에서에서 자주 봅니다. 그것 아니더라도 세상에서 일찍부터 ‘결핍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라는 것을 ‘심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요즘 자주 방송에 나오는 이들은 항룡유회(亢龍有悔), 너무 높이 올라가버린 사람들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소년등과해서 잘 나가시다가 퇴직해서 무사히(?) 잘 사시는 페친들도 많습니다. 바쁜 현직 시절임에도 페이스북을 소홀히 대하지 않는 분도 계시고요. 따지고 보면 소년등과하지 못해서 섭섭한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둘째, 셋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생각할 때는 정자의 말씀이야말로 혜택 받고 사는 이들의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 그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들이 대체로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주장도 가능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정자의 말씀도 말씀이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재주도 문장력도 없으면서, 이 화창한 휴일에 무슨 ‘돈 나올 일 있다고’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서, 남들 다 가는 동창회 체육대회도 안 가고, 괴발새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지 제 궁상(?)이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오늘의 제 글쓰기가 본문의 취지를 잘 따르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붉은 까마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