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선규 May 14. 2019

돌 이야기

성현체

돌 이야기     


웬 돌이에요? 집아이가 물었다. 내 책상 위에서 굴러다니는 못 보던 돌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이는 한 번씩 집에 오면 그렇게 내 방 순시(巡視)를 한다. 문진(文鎭)이다. 짧게 대답했다. 아이는 더 참견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내가 그런 식으로 퇴장을 촉구했다. 논문을 한 편 써야 했다. 논문류의 글을 쓸 때는 옆에서 노이즈가 나면 공연히 짜증이 난다. 없는 걸 만들어내려니 그런가, 공연히 신경이 곤두선다. 우리 쪽은 모든 실험실습이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요즈음은 문체를 이리저리 흔들어 보기도 한다. 언젠가 한 번 그런 ‘문체실험’을 해서 학회지에 투고했더니 ‘논문답지 못하고 수필 같다’는 추상같은 불호령(심사평)이 떨어졌다. 창작론(쓰기론)이나 교육론에는 경험칙이 때로는 더 중요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적으면 ‘수필’이라고 대놓고 나무란다. 비슷한 내용을 비슷한 문체로 미국에서 누군가가 영어로 쓰면 경전이 되고 한국에서 나 같은 시골무사가 쓰면 ‘수필’이 된다. 잘못했다고 빌고, 그저 시론(試論)일 뿐이라고 발뺌을 해야 간신히 실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실린 학회지를 보면 또 가관이다. 좌우로 같이 실린 논문들을 보면 첫 문장부터 비문인 것도 있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잔뜩 쓸데없는 각주만 주렁주렁 달아놓은 것도 있다. 그야말로 『장자』의 수레바퀴 고치는 노인, 윤편이 말한 ‘성인이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들’이다. 그런 게 논문이라면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속담이 아니라 그냥 ‘레알’이다. 이제는 그런 짓이 싫어서라도 논문 쓰기가 싫어진다. 이건 그냥 해 보는 소린데, 앞으로 학회지 논문 심사는 반드시 피심사자의 나이와 연륜을 살펴서 동년배 이상의 심사위원에게 심사의뢰를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 같이 나이께나 먹은 축들이 좀 덜 억울하겠다. 특히 문학이나 문학교육 쪽은 꼭 그래줬으면 좋겠다.     

아이가 집에 근사한 문진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못난 돌을 가져다 쓰느냐고 물었다. 그건 아이가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우선 집에는 쓸 만한 문진이 없었다. 있어 봐야 고만고만한 것들뿐이어서 요즘처럼 두껍게 나오는(무슨 그런 할 말이 많은지?) 전공서적을 일도양단, 힘 있게 눌러줄 만한 것은 애초 없었다. 늘 2%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신천(新川) 산책길에 우연히 눈에 뜨인 것이 이 놈이었다. 제법 크기나 무게감이 용도에 부합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가져와 써 보았더니 딱이었다. 쓰는 맛이 제법 좋았다. 우리 앞에 놓인 자연물들 모두가 다 그렇겠지만, 그 돌 하나에 수 천 수 만년의 세월이 농축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受五百年雨打!), 생긴 모양이 가로로 조금 길어서 두꺼운 책을 펴서 누를 때의 용도에 잘 맞았고(참고서적에서 인용문 발췌할 때 좋았다), 표면도 적당하게 우둘투둘해서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무게감이 수월찮아서 그 어떤 두꺼운 책이라도 그 앞에서는 꼼짝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좋았다. 고인돌을 생각하면 금방 알 일이지만, 쓸데없는 것들, 죽은 것들, 입만 싼 것들은 좀 눌러놓아야 된다. 그러니까 작든 크든, 원래부터 돌의 용도가 그런 것이라고 보면 된다. ‘눌러 놓는 것’, 즉 성현체와 관련된 돌 이야기가 있어 인용한다.   

  

...앞서 예기한 성현체(聖顯體) 중에 돌은 그 둘을 설명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사례이다(해, 달, 별, 땅, 산, 하늘, 샘, 강, 바다, 용, 뱀, 나무 등등 이른바 많이 알려진 성현체들은 그 존재가 가진 본질적 속성 때문에 성(聖)을 발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외부의 힘이 안으로 주입되면서 성스러운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돌은 흔히 인간이 갖지 못한 견고함을 바탕으로 영속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렇지만 또 돌은 다른 성현체들과는 달리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작용도 일으킬 수 없는 무정물이며 부동물이어서 외부개입이 없이는 성스러움을 발현할 여지가 크지 않다(부처상이나 상서로운 동물상을 돌로 만드는 것은 외부에서 성이 주입된 경우이다). 실제 우리 민속신앙에서도 돌에 대한 숭배는 유별날 정도여서 기자(祈子)치성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도 한다. 돌이 신이(神異)와 관련된 내용 중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것 몇 개만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어느날 산천에서 제사를 지내어 후사를 구하였다. 이때 타고 가던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는 서로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이상히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 돌을 들추니 거기에 어린애가 하나 있는데 모양이 금빛 개구리와 같았다.(「紀異」 제일 <동부여>)

● 어느날 연오랑이 바다에 나가 해조를 따고 있었다. 갑자기 바위 하나가 나타나더니 연오랑을 등에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이것을 본 그 나라 사람들은 “이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하고 세워서 왕을 삼았다.(「紀異」 제일 <연오랑 세오녀>)

● 내제석궁(內帝釋宮)에 거동하여 섬돌을 밟자 세 개가 한꺼번에 부러졌다. 왕이 좌우사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 돌을 옮기지 말고 그대로 두었다가 뒷세상 사람들이 보도록 하라.” 이것이 바로 성 안에 있는 다섯 개의 움직이지 않는 돌의 하나이다. (「紀異」 제일 <천사옥대> [이강엽, 『고전서사의 해석과 교육』(일부 내용 인용자 재구성)]     


돌은 우리 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성스러운 물건이다. 돌이야기를 하다 보니 옛 제자 생각이 난다. 30년 전 쯤의 제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면사무소에 근무했다. 아마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직을 한 유일한 남자 제자였을 것이다. 근무지가 마침 좋은 돌로 유명한 남한강 근처였다. 주변에 좋은 돌이 있어서 선생님 생각이 나서 하나 가져왔다며 불원천리, 그 사이 직장을 옮겨서 멀리 떨어져 있던 나에게, 혼자 들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무거운 돌을 들고 찾아왔다. 자가용도 흔치 않던 시절이라 몇 시간씩 시외버스로 이동을 해서 찾아온 길이었다. 지금 그 돌을 한 번 제대로 사진에 담아 볼려고(위치를 옮기려고) 한 번 들어보려다가 이내 포기했다. 잘못하다가는 팔뚝 인대에 무리가 갈 듯싶었다. 그 친구도 지금은 불혹의 나이를 한참 지나 지천명을 바라볼 나이지 싶다. 때로는 제자가 스승이다. 스승의 날을 맞이해 고마운 마음이 돌처럼 굳어진다.

작가의 이전글 복수와 용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