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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y 15. 2019

공부의 무익함

매사에 감사하라

공부의 무익함     


오늘이 스승의 날이었군요. 페이스북을 여니 그와 관련된 포스팅이 여럿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페친 한 분께서는 “그동안의 우정에 감사한다.”라고 댓글을 손수 남겨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페이스북의 모든 벗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평생 배운 것보다 페이스북에 들어와서 배운 것이 곱절은 더 되는 것 같습니다. 거듭 고마운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더 자주 찾아뵙고 많은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스승은 무언가 가르쳐주는 사람입니다. 스승에게 배워서, 공부를 해서,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게 되고 그것을 수단 삼아 직업을 얻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 공식’입니다(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배우지 않고 성공합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아주 길게는 10년 이상씩 공부를 해서 그 방면의 지식인, 기술자, 전문가, 나아가서 스승이 됩니다. 보통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이 있으면 안정된 직장 생활을 영위합니다. 몇 해 전, 교생 실습 지도를 나가서 당해 학교 교장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 중에 “몇 년 배운 것으로 평생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며 아이들 잘 키우고 나름 긍지를 가지고 살아 올 수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같은 시절 공부를 했고, 같은 세월을 겪으며 동병상련해 온 ‘인생 동기생’ 처지라서 그런 대화가 아주 각별했습니다. 그런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가 ‘공부의 고마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모종의 공감대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절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누구나 하고 싶은 만큼 공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공부하는 자’로 선택된 자들은 늘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한 식구 중에서도,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만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받은 처지가 경제성장기와 함께 하면서 분에 넘치는 성공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세대의 불문율 중 하나가 “배운 자이면서 고마워할 줄 모르면 인간이 아니다.”인 것도, 그리고 우리끼리 하는 욕 중에서도 “저 자는 고마워할 줄 모른다.”가 가장 심한 욕 중의 하나라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좀 흘러서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모두가 하고 싶은 만큼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세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마땅히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데도 고마워하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배운 자’라고 해서 매사에 감사할 필요가 꼭 있는가라고 정면에서 반박하는 이들도 간혹 눈에 띕니다. 예의 그 교장선생님이나 저와 같은 사람들이 볼 때는 균형감각이 한참 떨어지고 대인 관계에서의 밸런스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불량 제품’들인 것 같은데 본인들은 전혀 그런 의식을 못합니다. 그들 앞에서는 “매사에 감사하라.”라는 성경 말씀이 당연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됩니다. 역시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그런 친구들이 사는 쪽에서 친구 하나 얻는 일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하는 일입니다. 무척 어렵습니다. 자기들끼리도 그렇습니다. 유유상종, 제법 끼리끼리 모여서 웅성웅성거리는 것 같은데 무슨 일만 생기면 금방 흩어집니다. 각자 ‘모래알’로 다시 돌아갑니다. 선배도 없고 후배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공부가 자신의 모자란 곳을 채우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자람을 합리화하고 감추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아는 것으로(비판하는 것으로) 모든 실천궁행이 면제된다.”는 최악의 막가파식 자기합리화가 횡행합니다. 이런 식입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신학을 공부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도 없으면 책 몇 권 읽고(쓰고) 인문학자를 자처합니다. 자기와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자들이 교육을 논하고, 자기 윤리도 제대로 못 갖춘 자가 인생을 가르칩니다. 작품 하나 쓰고 읽을 줄 모르면서 문학을 가르치고 의리는 눈꼽만큼도 없는 자들이 없는 자가 공맹을 논합니다. 대의는 안중에도 없는 자들이 정치를 나무라고 자기를 버릴 줄 모르는 자들이 정의를 외칩니다. 제 주변이 특히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눈에 띄는 ‘공부깨나 했다는 자’들의 태반이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고 워낙에 제가 모자라서 그렇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스승의 날’을 기해서 배운 자를 자처하는 자들은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도 많이 반성하겠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제 곁에 그런 자가 많은 것은 결국은 다 제 탓입니다.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힌 제 ‘나쁜’ 생각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냥 쏟아냈습니다. 읽기 불편했던 부분이 있으셨다면 저를 친구에서 삭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용서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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