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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y 16. 2019

마술 인생

마술적 사실주의

인생이 마술이다.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그냥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감쪽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요. 물론 우리가 마술사가 되는 건 아닙니다. 무대 위에 오르는 것도 우리 의지였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마술통 안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몸을 구부리고 누워 톱질도 당하고 관객들의 눈앞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지기도 하는 묘기를 부리며 살아왔습니다. 일부는 다시 나타나고 일부는 그냥 사라지기도 하면서요. 매번 두려움에 덜기도 했습니다. 실패작이 되어서 그냥 사라지거나 아무도 모르게 쓰레기더미 속으로 버려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공포에 떨기도 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운수 좋게 무대 위에 다시 나타나는 것이 반복되면서 그저 마술사를 믿고 그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마술 도구가 마술이 성공할까 실패할까까지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제 말이 들리세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 지금 어디 있니?
어머니의 음성이 대답했다.
- 저는 지금 어머니의 고향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있어요. 제가 안 보여요?
- 안 보이는구나.
마치 모든 세상을 감싸는 듯한 어머니의 음성이 대지에 스며들고 있었다.
- 네가 안 보여. <중략>
나는 공기를 찾아 거리로 나갔다. 그러나 나에게 달라붙은 열기는 떨쳐낼 수 없었다. 
공기가 없었다. 밤은 8월의 땡볕에 달구어진, 바람 한 점 없이 정체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공기가 없었다. 나는 폐부에서 목구멍을 통해 입으로 빠져나오는 공기를 두 손으로 감싸서 그 공기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 들이마셔야 했다. 그러나 공기가 입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느낌뿐이었고, 나중에는 그 느낌조차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잠시도 머물지 못한 채 영원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영원히.
나는 무엇인가를 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머리 위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짙은 안개 같은 것을. 나의 입을 씻어내던 거품 같은 것을, 나를 사라지게 만들었던 운무 같은 것을. 그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어떤 것이었다.[후안 룰포, 정창 옮김, 『뻬드로 빠라모』, 세계문학전집93, 민음사, 2004(3쇄), 80~81쪽]


참조 : “그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어떤 것이었다.”는 화자인 후안 쁘레시아도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하는 문장이다. 후안 쁘레시아도의 죽음의 시점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후안 쁘레시아도가 꼬말라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 있었다는, 다시 말해 꼬말라에 온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라는 견해이며, 또 하나는 꼬말라에 와서 죽었다는 견해이다. 이 점에 대해 작가 롤포는 인터뷰에서 “꼬말라에 도착할 때는 살아 있었으나, 거기서 죽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후안 룰포, 정창 옮김, 『뻬드로 빠라모』, 세계문학전집93, 민음사, 2004(3쇄), 177쪽]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말은 그 자세한 내포를 떠나서 이미 남아메리카 문학의 우수성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뻬드로 빠라모』는 라틴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인생이라는 마술을 인간들 입장에서 기술합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마술사를 대신해서 마술도구가 대신 인생이라는 마술을 설명(묘사)합니다. 죽은 자의 영혼을 등장시켜 그들의 입으로 산 자들의 ‘인생 마술’을 말하게 합니다. 마술통 안의 독자들은 자신들의 삶이 실패 확률이 높은 마술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뻬드로 빠라모’의 악행을 고발하고 사회 정의를 쟁취해야 할 필연적인 까닭도 그런 역전(逆轉) 속에서 더 선명하게 제시됩니다. 선동과 격려, 그 방법론적인 모색의 정점에 ‘마술적 사실주의’가 놓여있다는 평이 그래서 가능해집니다. 
본디 이단도 교세가 커지면 당당한 정통이 되는 것이 종교의 세계이듯이 문학의 세계에서도 주변이 중심이 되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물릴 수 없는 감동을 주는 것들은 반드시 중심으로 진입합니다. 반칙으로 간주되던 것들, 하나의 결핍으로 간주되던 것들,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되던 것들, 모호해서 천대받던 것들이 ‘감동’이라는 마술통의 비밀(작동원리)에 의지해서 인생이라는 마술이 볼 만한 것임을 증거하는 것들로 환골탈태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낡은 것들을 대체합니다. 
종교나 예술이나 마술의 세계에서는 적자(嫡子) 상속이 없습니다. 자신의 지위에 안주하는 것들은 늘 고루하고 권위적이고 세속화되어 있으며 그 이유로 늘 타도, 타파의 대상이 됩니다. 마술은 현실의 무료함을 돌파하는 한 유희인데, 우리의 인생 마술이 누구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알 수 없는 궁금증에 매달리는 것도 무료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내가 속해 있는 마술 게임, 내가 들어가 있는 마술통에 충실할 뿐입니다. 몸을 구부리고 밖에서 마술사가 마술통을 열어보일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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