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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Feb 21.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3강. 서사, 단단하고 위태로운

3. 단단하면서 위태로운 – 서사의 효과 

    

서사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     

서사(敍事), 이야기 하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架橋)와 같은 것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장의 제목이 서사의 효과(效果)이다. 설명이나 묘사와는 달리, 서사는 오직 그 효과가 중하다는 뜻이다.

이야기가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같은 이유로 희로애락(喜怒哀樂)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확인한다. 묘하게도 그렇게 동병상련을 확인하는 과정이 즐겁다. 인간만이 누리는 행복이다. 

서사는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다. ‘사건(事件)’은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특별한 일이다. 글쓰기에서는 일반적으로 인물의 행동에 유의미한 변화가 보일 때 사건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그것이 서술되는 단계는 ‘시작-중간-끝’으로 분절되는 것이 보통이다. 중간 단계에서 위기감의 고조나 극적인 반전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어야 독자 쪽에서도 흥미와 감동이 뒤따르게 된다고 옛날부터(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온다) 구성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서사는 무엇보다도 구성이 단단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서사에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 사건의 진행에는 반드시 시간의 흐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서사에서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는가의 문제는 항상 심사숙고의 대상이 된다. 장면 묘사에서부터 요약 설명까지 다양한 시간 배분이 가능하다. 어떤 것이 더 ‘가교’ 역할에 충실한 것이 될 수 있을까를 고려해서 사건마다 얻어 쓰는 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다. 짧은 서사 글쓰기를 예로 들어서 구성의 문제와 서사 시간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취하는 것>     

술이 왜 있을까? 한동안 그게 의문이었다. 그러나 술꾼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경외심마저 들 때가 많았다. 그들이 있어야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 우리 집이 한때 선술집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공원의 ‘가고(상자) 부대’(들병이 영업을 하던 아낙들)를 주 거래처로 하던 주류 도매로는 제대로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워지자(길 맞은편에 새로운 경쟁업체가 생기면서 거래처가 반으로 줄었다), 직접 홀 가운데 바를 하나 설치해서 선술집을 열었다. 낱잔 소주를 파는 소매로 나선 것이다. 서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시쳇말로 소주 칵테일 바였다. 맥주잔만 한 큰 소주잔 한 잔에 5원이었던가? 주정을 사다가 아버지가 직접 제조한 ‘싸고 순한 소주’는 할 일 없이 공원 주변을 맴도는 주당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는 진로든 금복주든 백구소주든 모두 30도 소주 일색이었고, 고량주는 45도였다. 아버지는 22,3도로 도수를 크게 낮추어서 주조(酒造)를 했다. 그때는 엄연한 '밀주 장사'였다. 범법이었지만 고객들이 그 맛을 사랑해서 별 탈 없이 장사는 계속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소주는 뒤끝이 깨끗하다는 평을 받았다. 술을 입에도 대지 못했던 아버지가 어떻게 그렇게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소주 맛뿐만이 아니었다. 모여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객담을 나누는 재미도 꽤나 소소했는지, 단골손님들도 많았다. 주로, 한때는 잘 나갔으나 지금은 찬밥 신세인, 낙일거사(落日居士)들이 많이 모였다. 그렇게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버지의 공원 앞 선술집은 그들에게는 '작지만 실(實)한' 소확행의 장소였다.     

아버지의 단골손님 중, 젊어서 교편을 잡았다는 키가 작고 단단한 몸집을 가진 유씨라는 이가 있었다. 그 양반과 동래고보 축구부 출신의 양아치 대장 변상태가 아버지의 손님 중에는 단연 위엄이 있었다. 주당이라면 누구나 취하면 취할수록 말이 많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 두 양반은 그렇지 않았다. 화장실 볼일 때문에 잠깐 자리를 비우는 아버지 대신 내가 소주 주전자를 들고 여기저기, 올망졸망, 달랑달랑, 빈 잔을 채우러 다니던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도 그 두 양반은 말없이 그저 술잔만 앞으로 조금 밀 뿐이었다. 간혹 내 뒤통수를 한 번씩 쓰다듬는 일이 있기도 했었다. 변상태는 가끔씩 말을 걸기도 했다. 내 팔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며 ‘이찌방?“이라고 농담도 건넸다. 아마 아버지가 아이들이 공부께나 한다고 자랑했던 모양이었다. '공부 잘 하냐?'는 말이었다.     

변상태와는 좀 격이 다른 유씨 아저씨의 카리스마 있는 위엄은 주당들 사이에서 일종의 경외감마저 동반한 채 공공연히 인정되고 있었다. 행색도 그중 가장 멀쑥했다. 아무도 그에게는 농지거리를 함부로 던지지 않았다. 오직 50여명의 양아치(넝마부대)를 수하에 둔, 대여섯 살 연상인 변상태만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떠도는 말로는 엄청난 무예의 소유자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의 소주방 고객들은 늘 그런 식이었다. 그저 무성한 소문만 즐길 뿐 실제를 보여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소문의 진상이 만 천하에 드러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변상태가 주워서 키운 양아들인 ‘백인종’ 덕구가 양아버지 변상태를 공공연하게 갈구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덕구는 얼굴이 너무 하얘서 백인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수십 명의 어린 식구를 거느린 양아치 부대의 실질적인 보스였다. 몇 년 전 변상태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때 그는 나름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었다. 더 이상 술꾼인 변상태에게 대식구의 살림살이를 맡겨둘 수가 없다고 공원 주변의 주민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나 공원 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덕구가 양아버지 변상태를 젖힌 것은 보살펴야 될 아이들보다는 새로 만난 인연과 함께 제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여자가 그렇게 요구했다는 소문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덕구가 젊은 과부와 살림을 나겠다고 했을 때 주제넘게도 변상태가 그 과부의 행실을 문제 삼으며 강하게 말렸다는 거였다. 이삼 년 전, 멀리 어디서 수재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해 와서 공원 옆 공터에 임시거처를 짓고(나라에서 지어줬다) 거주한 적이 있었다. 그 수재민들 중 한 집에서 오자마자 초상이 난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집 과수댁인 모양이었다. 소문이 계속 좋지 않게 나던 인물이었다. 완력에서 상대가 되지 못하던 변상태는 순순히 덕구의 모반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얼굴에 난 시퍼런 멍을 애써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소주방이 그의 종일 근무지가 되었다. 종일토록 시도 때도 없이 술만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늦은 시간까지 변상태와 유씨 아저씨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공원 앞 가게의 특징은 해가 지면 고객들도 일제히 철수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소주방이 고즈넉한 기운이 낮게 가라앉아 있던 때였다. 어둑어둑한 신작로에는 굵은 장대비가 한번 지나간 뒤, 가늘게 부슬비만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눈을 내리 깔고 길바닥 쪽만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유씨가 갑자기 냅다 술잔을 내던지더니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백인종, 너 이 쌔끼 거기 서라우!”

비를 맞으며 가게 앞을 잰 걸음으로 지나치려던 덕구가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야 이 썅놈의 쌔끼야, 나 좀 보고 가라니끼니!”

유씨 아저씨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덕구는 어릴 때부터 권투를 해서 몸이 민첩했고, 키도 훤칠했다. 생긴 것도 깔끔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혀 양아치 대장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입과 손은 마냥 거칠었다.

“이놈의 영감쟁이가 웬 지랄이고?”

달려드는 유씨를 향해서 덕구가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그 순간, 아저씨의 몸이 쓰윽 덕구의 품 안으로 안기는가 싶더니 덕구의 몸이 크게 ‘사카다찌(아버지의 표현이다)’ 했다. 크게 원을 그리며 덕구의 그 긴 몸뚱아리가 진흙 바닥에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저녁 무렵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아버지의 가게에 나와 앉아있던 내게는 신기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중에 그 비슷한 이미지를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1999)의 라스트신에서 봤다. 인간이 벌이는 몸싸움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덕구는 그 한 번의 큰 기술로 완전히 제압된 듯했다. 꼼짝을 못했다. 무슨 말인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진 채로 유씨 아저씨의 훈계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유씨 아저씨는 그렇게 자신의 무도(武道) 교사 이력(본인은 그렇게 주장했지만 순사 출신이라는 말도 떠돌았다)을 소주방 친구 변상태를 위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유씨의 분투(奮鬪)에도 불구하고 변상태는 그해 겨울 공원 뒷길에서 얼어죽고 말았다. 유씨 아저씨도 술을 끊었는지 그 뒤로는 우리집에 나타나지 않았다. 변상태가 죽고, 과수댁과 살림을 차린 덕구도 후배 용구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그곳을 떴다. 우리집도, 어머니의 빈대떡으로 권토중래를 노렸지만(경쟁자의 신고로 즉심에 넘겨져 벌금만 물었다. 불법으로 내건 화덕이 문제였다),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그곳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나도 술을 잘 마실 거라고 생각했다, 동래고보 축구부 출신 양아치 대장 변상태나 왜정 시절 무도 교사였다는 유씨 아저씨처럼 소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쓸쓸하게 늙어갈 것으로 생각했다. 선술집 아이가 그 출신성분에 어울릴 만큼의 주량은 가질 것이라 당연히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체질이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취하는 것이 어디 술뿐이야, 아버지도 술을 입에도 대지 못했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술로 많은 사람들을 기분좋게 취하게 했다. 그러니, 나도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하지만, 술 한 잔 권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로, 여러 사람들에게 ‘취하는 것’ 한 잔(편) 권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면 될 일이다. <양선규, 페이스북>


<취하는 것>은 술에 얽힌 이야기다. 물론 술이 다는 아니다. 아버지, 변상태, 유씨 아저씨라는 세 명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소재는 그렇고 주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다. 조금 더 넓히면 ‘아버지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제목은 아버지와의 추억에 취한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취하는 것>을 서사의 효과라는 측면에서 해체해 보자. 

① 제목은 술의 효과가 ‘취하는 것’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수미일관의 기법을 사용해 ‘이야기로도 취할 수 있다’라고 매듭을 짓고 있다. 인생의 묘미는 ‘취하는 것’에 있음을 넌지시 암시해서 독자가 확장된 주제를 스스로 구축할 수 있도록 돕는다. 

② 이 이야기에서 중심 사건은 유씨 아저씨의 소문으로만 떠돌던 무용담이 현실로 나타나는 장면이다. 낙일거사 아버지만 바라보며 살아온 어린 화자에게는 경이로운 발견이다. 그 한 장면이 어린 화자에게 부여한 성취동기가 보통의 것이 아니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동경(憧憬)의 시선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③ 변상태 아저씨의 비참한 몰락은 유씨 아저씨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 역할도 하지만 그 자체로 우리의 과거 역사와 우리의 옛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환유적 소재가 된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들은 그런 동병상련을 공유한다.

④ <취하는 것>은 장르상 꽁트라고 할 수 있다. 손바닥만큼 짧은 소설이다. 분량은 적지만 인물, 사건, 배경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세 사람의 아버지, 그들이 하는 일, 그들이 서식하는 공간이 모두 그럴 듯하게 제시되고 있다. 구성이 완비되어 있다. 경험담을 표방하고 있어 어디에서 허구가 개입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독자로서는 알 필요가 없는 일이다. 다만, 동병상련을 확인하는 과정이 즐거우면 그만이다.

⑤ <취하는 것>은 서사의 외형(外形)과 본질을 잘 보여주는 글이다. 시작과 중간과 끝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다. 아버지의 소주방과 변상태의 몰락으로 시작해서 유씨 아저씨의 활약상이 반전(反轉)을 부르는 중간을 거쳐 마지막 수미일관으로 끝을 맺는다. 하나의 특수한 사건이 보편적인 감흥(感興)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무난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상의 해체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서사의 효과였다. 이 이야기는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달리고 있다. 공감이라는 목표다. 그 목표된 효과 달성에 필요 없는 요소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앞만 보고 달린다. 그 결과로 이야기의 목표는 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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