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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l 03. 2019

여우굴과 늙은 여우

심리학의 존재 가치

여우굴과 늙은 여우     


오래 된 무덤자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우굴인 것 같은데 그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누가 앞장을 섭니다. 제 마음은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앞장 선 사람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짜증을 냅니다. 얼른 따라서 들어오지 않는다고 타박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왜 여우굴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초인지가 발동을 합니다. 순간 제가 무엇인가를 취재 나온 것이라는 인식이 듭니다. 여전히 저는 여우굴 앞에서 망설입니다. 또 초인지가 듭니다. 여우굴에 관한 책을 읽었나? 그러나 확실히 집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다 깼습니다. 오늘 아침 제 꿈자리 이야기였습니다.

며칠 전 학교식당에서 몇 사람이 의기투합했습니다. 한 사람이 도시 외곽에 자리한 ‘순대국’ 맛있게 하는 집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또 누군가가 말로만 하지 말고 데려가서 한 번 사줘 보라고 말했습니다. 말을 꺼냈던 양반이 어제 밤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정오에 캠퍼스 모처로 나오라는 겁니다. 자기 차로 그날 같이 있던 사람들을 ‘모시고 가서’ 순대국을 사겠다는 거였습니다. 듣기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분들과 20년 넘게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도 그런 식의 ‘의기투합’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까운 식당에는 한 번씩 같이 가본 적은 있어도 그렇게 장거리 식사 기행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이 들면서 바뀌는 즐거운 변화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저의 ‘여우굴’ 꿈도 그 행복한 식사 기행 소식과 연관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리저리 윤색이 되어있지만 제 무의식이 그렇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과학적 심리학의 핵심 연구주제 중 하나는 마음의 구조와 과정이다. 인지심리학과 인지과학은 마음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형을 시도해 왔는데, 마음을 정보처리 체계로 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에는 두뇌와 마음 간에 더 직접적 대응관계를 보이고자 하는, 신경과학적 혹은 뇌과학적 연구가 활발하다. 마음을 두뇌 활동에서 찾는 연구들은, 한편으로는 견고한 물질적 기반을 확보한 듯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의 의식적 국면과는 괴리가 있는 두뇌 작용에 현혹된 듯이 보이기도 한다. 뇌에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나 중단으로 사랑을 설명하는 것은, 그 둘이 거의 동시적인 사건임을 보여줄 수 있을지언정, 사람이 체험하는 사랑의 감정을 설명해 준다고 할 수는 없다. 여하튼 두뇌, 인공 지능 장치(예컨대 로봇), 그리고 인간의 지력에 대한 탐구와 개발은, 학제적인 인지과학이나 뇌과학의 발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서로 맞물려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이전보다 더욱 계산론적이고(컴퓨터 모형으로 구현 가능하고) 또한 실제 뇌와 유사한 ‘마음 모형’을 가지게 될 것이다.

최근에 심리학적 연구의 주제들이 여러 방향으로 분기하고 있다. 보편주의적인 과학 모형에서 벗어나, 여러 대상들에게로 관심이 확대되고 있으며, 인접 분야와 제휴해 새로운 연구 영역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가 다변화되고 여러 하위 집단의 특수성이 두드러지고 이에 걸맞은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것과 맥을 같이 하면서 노인, 은둔형 외톨이, 가정폭력 피해자, 장애인, 이주민, 그 밖의 소수자 등 다양한 하위집단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또한 소통과 암묵적 이해와 규범의 기반인 문화에 대한 심리학적 관심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이런 양상은 심리학에서 보편주의적 인간관과 서구 중심주의적 연구로부터 지역적인 연구가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략>

이상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심리학의 연구 문제들은 과거에 비해 매우 복합적인 것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여러 하위 심리학 영역 간 혹은 인접 분야 간 공조나 융합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광범한 자료 수집과 분석이 전보다 수월하게 됨으로써 심리학의 연구들도 매우 계량적이고 정교한 통계적 모형을 기초로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나 계량적인 모형이 주는 수치는 분명해 보이긴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 것일 수도 있다. 가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간이 심리학에서 기대하는 것은 단지 수치들만은 아닐 것이다. 쉽게 수량화되지는 않겠지만, 공감과 깊은 이해가 가능한 의미 차원의 설명을 추구하기 위해 질적 연구방법론을 도입하는 연구들이 점차 늘고 있다.

몇몇 주요한 심리학 접근은 생물학적 충동에 의해서든 환경에 의해서든 결정론적인 인간관을 취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마르쿠제는 생물학적 충동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상상했다. 스키너는 적절한 행동에 대한 보상과 보상체계의 조정이라는 ‘행동공학’적 원리를 적용하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러나 결정론의 뿌리는 적극적 의미의 유토피아 혹은 행복과의 거리를 좁히기에 힘들어 보인다. 반면에 인본주의적 접근은 인간의 주체성과 긍정적인 성향을 강조한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긍정심리학 흐름은 경험적 증거를 통해, 우리의 일상적 습관과 태도, 인간관계 등을 바꿈으로써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과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기는 유물론적 인간관에 혼란을 일으키며 심리학의 향방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박창호, <학문의 미래, 4.심리학>, 교수신문, 2009. 3. 23]     


그 어떤 전제와 유보조항이 있더라도 심리학이 여전히 유용한 ‘과학’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결정론적인 사고를 가진 ‘의사(擬似) 과학자’들의 양산은 자중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상담 받아야 할 분들이 상담자로 나서는 경우가 많은 곳이 그 분야이고, 인간에 대한 통찰이 마치 여우굴 속의 늙은 여우들처럼 폭 좁은 시야에 의존해 있는 곳도 그 분야입니다. 모든 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안에서 설명하고 있는 곳도 그곳입니다. 제대로 된 프로이트 식 ‘교양 분석’을 거쳐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아는 것이 전부다’라고 행세하는 곳도 그 분야입니다. ‘공감과 깊은 이해가 가능한 의미 차원의 설명’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설명의 기술’에 불과한, 인문학적 가치로는 공염불에 불과한 것들만 나열하고 있는 곳도 그 분야입니다. 일전에도 한 시인의 말을 빌려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그럴 바에야 “알아서 뭐 할 것이가?”라는 투정이 절로 나오게 하는 곳입니다. 인간은 그 어떤 매개도 없이 자기를 쇄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여우굴은 어엿한 사람이 드나들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제 어지러운 꿈자리를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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