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선규 Feb 23.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총 맞은 것처럼

다리 위에서기관총 사격을 받게 된 사람처럼      


진정한 묘사는 ‘번지는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술(記述)의 방법에 설명, 묘사, 서사, 논증이 있다고 했을 때, 묘사야말로 여왕과도 같은 존재다. 은유가 비유의 여왕인 것처럼, 묘사는 글쓰기의 여왕이다. 한 번 더 비유를 쓰자. 설명이 일개미라면, 묘사는 여왕개미다. 인간이 가진 것 중에서는 가장 높은 지능(知能,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지적 능력)이 소용되는 곳이 묘사다. 연상이나 유추가 구체적인 사상(寫像, 공간적 형상으로 전이됨)으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비상한 피드백 작용이 상상력을 요동치게 하지 않으면 좋은 묘사가 나올 수 없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은 저 깊은 곳에서 하나의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곳까지 내려가지 못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통로를 자유로이 왕래한다. 그런 사람들이 주로 과학자나 예술가가 된다.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즈』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는 그런 ‘통로’를 누구보다도 탁월하게, 효과적으로 이용한 작가로 평가된다.

     

...조이스를 현대적인 작가로 만드는 동시에 이 소설을 현대적인 소설로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이 소설에서의 현실 파악 방법이다. 스티븐의 현실 파악에서 종래의 소설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그가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적으로 현실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한 근시안으로 인해 시각적 이해력에 있어서 남달리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 그가 에피퍼니(epiphany, 상징적 장면들이 지닌 계시적 의미) 같은 심상을 많이 보거나 그려내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거니와 – 그는 주로 촉각, 청각 및 후각에 의한 현실 접근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제1장에서 스티븐은 <길고 희고 가늘고 차고 부드러운> 아일린 손을 만져봄으로써 <상아탑> 같은 성모 마리아를 인식할 수 있고, 픽, 팩, 퍽, 폭 소리를 내는 크리켓 방망이 소리에서 분수대에 솟은 물방울이 낙수반(落水盤)에 덜어지는 청각적 이미지를 느끼기도 한다. 제2장에서 스티븐은 마음속으로 오만과 희망과 욕망이 약초처럼 향기를 뿜어 올리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이상옥, 『젊은 예술가의 초상』 작품해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2001, 399쪽)     

무엇이든 구체적인 것으로 바꾸어 이해하고 설명하고 싶은 것이 예술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성격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시각이 하지 못한 일을 다른 감각들이 대신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예술가들의 공감각 능력은 꼭 그런 결핍과 보상의 원리에 입각해서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시각이 멀쩡해도 후각이나 촉각, 혹은 통각(痛覺)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작가도 있다. 안에서 ‘번지는 것’이 중요하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에 나오는 제3부 서두 배경 묘사 장면 한 부분을 보면 쉽게 이해될 듯하다.   

  

......그렇다. 나는 정처 없이 걸었다. 모라바 강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강물을 바라보았다. 이 모라바 강은 얼마나 흉측한가(너무도 흙빛이어서 물이 아니라 진흙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리고 강변은 또 얼마나 음산한가. 중산층의 단층집 다섯 채가 각기 따로따로, 고아인 양 괴상스럽게 서 있을 뿐이다. <중략> 그 고아 같은 집들이 끝나는 곳에, 철로 된 전봇대들이 있고, 철 늦은 거위 몇 마리가 거니는 풀밭이 있을 뿐, 그 다음에는 벌판, 끝없는 벌판, 아무 곳으로도 이르지 않는 벌판, 모라바 강의 흐르는 진흙이 사라져 들어가는 벌판이 있을 뿐이었다.

도시들은 서로서로 마치 거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모양인지, 나는 이 풍경(어린 시절 아주 잘 알았으나 이제 내게 아무 의미도 없는 풍경) 속에서 돌연 오스트라바, 그 거대한 임시 숙소 같은 광부들의 도시를 보았다. 버려진 건물들과 지저분한 거리로 가득한 도시, 그 길들이 이어져 나간 끝에는 공허만이 있는 곳, 나는 함정에 빠져버린 것이다. 기관총 사격을 받게 된 사람처럼 다리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오스트라바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그 황폐한 거리와 거기 서 있는 얼빠진 다섯 채의 집을 더 바라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뒤로 돌아 강을 거슬러 강변을 따라 걸었다.

조그만 길가 한쪽으로 포플러 나무가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전망이 좋은 좁다란 가로수길이었다. 오른쪽에는 풀과 잡초가 무성한 비탈이 수면까지 내려와 있었고, 좀 더 멀리 강 너머로는 창고와 작업장들, 초라한 공장들의 마당이 건너다보였다. 길 왼쪽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쓰레기터가 먼저 보였고, 고압전선이 지나가는 철탑들이 무리 지어 늘어선 넓은 벌판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마치 물 위의 긴 구름다리 위를 걷는 법을 익히고 있는 것처럼 좁은 가로수길을 따라 걸었다 – 이 풍경 전체를 드넓게 펼쳐진 물에 비유하는 것은, 거기에서 나를 꿰뚫고 들어오는 한기가 느껴지고 또 내가 자칫하면 굴러 떨어질 것처럼 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이 풍경의 이상한 분위기는 바로 루치에를 다시 만난 후 내가 머릿속에 떠올리지 않으려고 스스로 금했던 것을 복사판처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억압되어 있던 내 기억들이 지금 내가 주변에서 보는 모든 것들 – 저 황량한 벌판과 마당과 헛간들, 탁한 강물, 배경 전체를 하나로 통일시키며 모든 곳에 스며 있는 이 한기 – 에 배어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 기억들로부터 달아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기억들은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밀란 쿤데라, 방미경 옮김, 『농담』, 민음사, 2004, 43~45쪽.>     

     

몇 부분에서 느껴지는 ‘거친 번역의 혐의’에도 불구하고(이를테면 ‘중산층의 단층집 다섯 채’를 ‘중산층의 삶에 아등바등 매달리고 있는 단층 가옥 다섯 채’로, ‘철 늦은 거위’는 ‘철 모르는 거위’로(가금인 거위에게 철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 곳으로도 이르지 않는 벌판’을 ‘그 어디에도 가 닿지 않을 벌판’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다. 인용 분량 때문에 <중략>된 곳에 그 다섯 채의 중산층 가옥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다. 이것들 말고도 두어 개 더 있지만 생략한다), 위의 글은 가히 ‘배경 묘사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정처 없이 걸었다”에서 시작해서 “기억들은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에 이르기까지(제3부 1장 전문) 말 그대로 청산유수(靑山流水), 다음부터 전개될 ‘불편한 기억들과의 한 판 싸움’을 충분히 예고하고 기대하게 만드는, 그와 더불어 ‘묘사’에 대한 설명까지 보태는, 이를테면 ‘묘사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그 자체로 빛나고 있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무진기행」의 안개 묘사 장면은 여기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 그 가운데서도 “기관총 사격을 받게 된 사람처럼 다리 위에 서 있었다”가 가히 압권이다. 한 때 시중에서 유행했던 대중가요의 노래 가사처럼, 독자들은 그 대목 앞에서 ‘총 맞은 것처럼’ 망연자실할 뿐이다. 그만큼 신선한 표현이다. “어린 시절 아주 잘 알았으나 이제 내게 아무 의미도 없는 풍경”을 그처럼 잘 묘사하고 있는 글은 아마 전무후무할 것이다.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삶의 허전함 앞에 섰을 때의 그 ‘탈탈 털린’ 느낌이 솔솔이 전달되어 온다. 

소설가로 입신하기를 꿈꾸는 자들은 대개 ‘묘사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주제와도 맞서고, 줄거리도 무시하며, 오직 자기 자신만으로 빛나고 오래 기억될 수 있는 묘사 문장 하나를 갖고 싶어 한다. 아비보다 잘난 자식처럼, 그런 묘사가 빛나는 작품 하나만 남기고 갈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여긴다. 그러나, 십중팔구, 스스로는 '깊은 통로'를 갖지 못한 자의 비애를 통감하며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다. 미시마 유키오나 밀란 쿤데라는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그들에게도 ‘묘사의 불안’이 있었을까?           


참조

미시마 유키오와 그의 스승 가와바타 야스나리 사이의 일화가 인구에 회자된다. 두 사람은 노밸 문학상을 두고 경쟁하던 사이였다는 것이다. 2년의 간격을 두고 각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도 그러한 사제 간의 애증병존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참고로 그에 관련된 페이스북 자료를 소개한다. 

   “지난 월요일 2월 5일 [NHK클로즈업 현대] 방송. 새로운 서간문 발견으로 알게 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을 다루었다. 둘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의 연으로 시작되지만, 미시마가 가와바타의 기대 이상으로 좋은 작품을 내놓자 가와바타는 자신의 신진 작가를 보는 안목이 성공했다고 만족했을 거라고 해설. 둘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를 넘어 차츰 라이벌 관계로 이어져、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둘 다 거론되자 가와바타가 노벨 문학상 후보 추천서를 미시마에게 부탁한 편지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수상 후에는 "미시마 군은 아직 너무 젊으니까" 못 받은 것이라며 명분 아닌 명분을 내세운다. 흥미로운 것은 가와바타는 미시마를 노벨 문학상 후보감이라고 단언했다는 인터뷰다. 둘의 공동 수상도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서로를 높이 인정하는 사이이면서 노벨 문학상 양보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미시마가 자살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노벨 문학상을 양보한 것도 원인의 하나라고 단정할 수 있다. 2년 뒤에 가와바타도 자살을 하기까지 서간문의 일들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으로 결말을 짓고 있다. 어쨌든, 고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대학 연구자 못지않게 20여 년 전부터 가와바타 연구에 열심인 후카자와 하루미 씨의 새로운 서간문 발굴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Soon Ae Choi, 페이스북, 2019. 2. 8>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 인문학 10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