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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l 20. 2019

빵만으로 사는 인간

천공의 눈

빵만으로 사는 인간     

집사람과의 일화 하나를 소개합니다(이 글이 곧 삭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계란 하나 구워줄까?”, “고등어 한 토막 구워줄까?”, “새 김치 내어줄까?”, “오늘 아침은 빵으로 할까?”, 눈 비비며 일어나 밥 달라고 보채는 저에게 아내는 종종 그렇게 묻습니다. 모르긴 해도 전날 부식 조달이 원만치 않았을 때 주로 그런 친절한(?) 아침 인사가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제가 하는 대답은 으레 “마음대로 하쇼!”였습니다. 그 말은 결단코 진정이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특히 아침은 더 그렇습니다. 무엇이든 목구멍을 채우고 넘어가는 것만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 심통이 돌았습니다. 아마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어느 날 아침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날도 아내가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그런 아침인사를 던졌습니다. 문득, 이건 아니지 않은가라는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묻지 말고 그냥 좀 해 주면 안돼?”라고 대답을 해 버렸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때의 아내 표정을 잊지 못합니다.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평생 말 잘 듣더니 왜 갑자기 그런 난폭한 말을 하니?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그 사랑이 넘치는 아침 인사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가끔씩 아침을 빵으로 먹습니다. 물론 형식상으로나마 아내는 동의를 먼저 구합니다. “괜찮죠?”, 거기에 만약 토를 달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럼, 괜찮지! 내가 원래 빵을 좋아하잖아유!”, 진심입니다. 실제로 저는 빵을 좋아합니다. 어제도 가까운 백화점 빵 가게에 가서 저녁 세일로 내어놓은 빵들을 한 보따리 사서 왔습니다. 식빵도 우유식빵, 버터식빵, 호텔식빵, 프랑스식빵 다종다양하게 구비해 놓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저는 빵만으로도 살 수 있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라는 유명한 격언을 저는 신봉합니다. 진심입니다. 저는 그 말씀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굳이 희랍의 아낙사고라스가 말한 ‘누스(정신)’와 그의 추종자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빵’이 완벽하게(?) 해결된 지금의 처지에서도 저의 꿈자리가 늘 뒤숭숭한 것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물론, ‘꿈자리’가 늘 불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 반대도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라는 저의 신조가 흔들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어제 잠깐 낮잠을 청했을 때는 행복한 꿈자리가 오랜만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어린 시절 하루하루의 ‘빵(밥)’ 때문에 시도때도 없이 좌불안석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불안(不安)이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순간 불안했지만 곧 꿈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는 이내 큰 안도가 뒤따랐습니다. 안도감과 함께 잠깐이나마 그 ‘회고적’ 꿈자리가 마냥 행복했습니다.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 이 정도의 ‘누리는 삶’만으로도 내 인생은 대성공이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다. 그렇게 꿈속에서 굳게 다짐했습니다.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맑고 고요해졌습니다. 꿈이려니 하면서도 마냥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곧 씁쓸한 기분이 저를 둘러쌌습니다. 좌절, 분노, 질시, 고독, 무력감 등과 같은 기분 나쁜 느낌들이 다시 제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이 마치 제 집을 찾아 들어서는 집주인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러면서 제 안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혹시 아직도 ‘빵’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회의가 들었습니다. 편하게, 부족함 없이, 먹고 입고 누워서 발 뻗는 것만 ‘빵’이 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것 말고도 다른 ‘빵’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그것들에 굶주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깨끗하게 내다버리지 못하는 한 저는 언제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인간’인 셈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빵’에 죽고 ‘빵’에 사는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는 주장을 어떤 유물론자들은 다른 맥락으로 해석합니다. 빵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게 결국 다른 종류의 빵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빵은 신이니 영혼이니 의식이니 명예니 하는 수상한 이름이 붙어 있어 마치 빵과는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 역시 우리의 ‘끼니’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수단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왕주, 『철학풀이, 철학살이』 중에서]     


이왕주 선생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꿈자리는 늘 뒤숭숭하고, 그 반대의 경우라도 깨고 난 뒤의 기분은 늘 찝찝합니다. ‘빵 아닌 빵’들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 모양을 자주 바꿉니다. 이를테면, ‘그때그때 다른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헛것’,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헛것’ 없이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족 한 마디. 어제 <감시자들>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이 영화는 홍콩영화 <천공의 눈>을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마지막 부분, 임달화라는 홍콩배우가 나오는 ‘오마쥬’ 대목이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원작 영화에서 설경구가 맡은 반장 역을 담당한 배웁니다. 임달화와 설경구는, 비록 맡은 역이 같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로 다른 배웁니다(자세한 것은 약하겠습니다). “(지치면 지고) 미쳐야 이긴다.”, 영화 안에서 그런 말을 설경구는 하고 임달화는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라는 말도 설경구는 하지만 임달화는 하지 않습니다. 원작의 감독은 그런 말이 “계란 하나 구워줄까?”와 같은 면피용 인사치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의도의 오류일 수도 있겠습니다. 젊은 시절 때부터 조연급 배우 임달화에게 은근 정이 많이 갔습니다. 같이 늙어 가는 그가 보기에 좋았습니다.

<2013. 7. 20.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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