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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Jul 30. 2019

신화적 상상력

위대한 어머니

신화적 상상력     

신화적 상상력이 가장 먼저, 관심하는 것이 ‘세계(생성)의 기원’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해명(解明)이 없이는 인간이 가진 그 어떤 제도와 문물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것 없이는 그 어떤 ‘신원 조회’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만약 조회 받을 수 없는, 원적지가 없는 제도나 문물이라면 그것들은 언제라도 버림받을 수 있는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설혹, 시혜(施惠)를 입어 버림받는 신세를 모면한다 해도 언제나 배불자(배후불순한 자)로 낙인 찍혀 어두운 거리를 배회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고, 평생을 고개 숙여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도가 되고 싶은 자들은 모두 자기만의 ‘창조의 기원’을 소유하려 합니다. 모든 신화적 상상력이 그것을 가장 먼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므로 언제나 ‘현재의 요구’입니다.     

모든 기원은 의인화 되어 설명될 때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하느님이 엿새 동안 만물을 창조하고, 하루 쉬셨다. 인간은 엿새째 창조했는데, 자신의 모습을 본떠 흙으로 만들었다(『창세기』)’나 ‘계곡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검은 암컷(玄牝,현빈)이라 한다. 검은 암컷의 문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 한다. 이어지고 또 이어져 영원히 존재하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노자』)’나, ‘천지가 완성되었지만, 아직 인간은 없었다. 그래서 여와(女媧, 중국의 태모신)가 황토를 손으로 이겨 인간을 하나하나 만들었다. 그러나 뼈가 잘 부러져 그것을 수습하는 일이 상당한 중노동이라서 쉬지 않고 계속해도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와는 진흙 속에 새끼줄을 담그고 그것을 끌어올려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리하여 새끼줄에서 뚝뚝 떨어지는 진흙이 잇달아 인간이 되었는데, 황토를 뭉쳐 만든 인간은 부자나 고귀한 사람이 된 반면에, 새끼줄에서 떨어져 생긴 인간은 가난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신화』)’와 같은 식으로 세계 부모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런 ‘부모의 역할’ 중에서도 어디까지나 그 중심은 ‘어머니’입니다.   

  

세계를 생성시키는 아버지의 정기는, 변형의 매개체 - 즉 세계의 어머니를 통해 다수의 지상적 체험으로 변한다. 이 세계의 어머니는,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고 창세기 1장 2절에 언급된 원초적 요소의 화신이다. 힌두 신화에서 이 세계의 어머니는, 여성적인 형상으로 등장하는데 자아가 모든 피조물을 생성시키는 것은 여성적 형상을 통해서이다. [조셉 캠벨(이윤기 역),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참조)  

   

신화적 상상력에서는 ‘원초적 여성’이 태초의 세계를 지배합니다. 이 원초적인 여성적 자질은 모든 것을 내포하는 포섭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이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그 ‘위대한 어머니’는 태초에만 존재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태초성(太初性)’을 지닌 인물들에게는 늘 ‘위대한 어머니’의 이미지가 부여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종교인 기독교(카톨릭)에서 성모 마리아가 하는 역할이 이 ‘위대한 어머니’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불교의 보살상에서 찾아지는 양성(兩性)적 이미지도 바로 이 원초적 여성 본질이 강조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누군가 ‘후천개벽’을 운위하면서 앞으로는 ‘여성성’이 이 세상을 운영해 내는(살려 내는) 원리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다면 그 역시 이 원초적 여성 본질이 이루어낼 ‘세계의 쇄신’을 강조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어머니의 ‘품어서 하나 만드는 사랑, 혹은 거대한 하나의 에로스’가 요구되지 않았던 시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사진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배로 생각한다는 시모노세키 아카마신궁의 신화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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