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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ug 06. 2019

사랑의 열병

인간의 굴레에서

사랑의 열병

사람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성(異性)에 대한 사랑,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연애(戀愛)의 욕구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첫사랑이야말로 인생 최초로 몸으로 경험하는 ‘오묘한 화학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최초의 ‘변화(열병)’를 치르지 않고 누가 감히 어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삶을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타자(他者)와의 영원한 합일을 꿈꾸는, 이성(理性)의 마비를 초래할 정도의, 그 ‘첫사랑’이라는 ‘타자에의 몰입’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진정한 자기로 향한 인생 도정이 시작됩니다. 그것 없이는 내 앞의 삶이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연애 없는 인생은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자동차 바퀴처럼 제 자리에서만 공회전하는 것입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성장소설에 그런 이치가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누추하고 너절한 것일지라도 사랑이 있는 인생은 그것이 없는 인생보다는 곱절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그 책은 보여줍니다. 사랑은 언제나 그것 없는 것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동정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최악의 사랑이라도, 그것 없는 인생보다는 항시 곱절로 행복한 것이라고 작가는 강조합니다.

저 역시 연애를 달콤한 것만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힘들 때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헌신보다는 욕망이 늘 앞선던 것 같습니다. 타자에의 몰입에 앞서 자기에의 탐닉이 늘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젊어서 참여(?)했던(자의반 타의반) 모든 연애가 악전고투 일색이었다고 기억되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안타까운 오해, 못난 이기심, 분별없는 변덕, 속악스런 타산 같은 것으로 점철되어 있는, ‘죄 많은 내 청춘’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일일 것입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횡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며 저는 젊은 날의 제 연애 사업을 떠올렸습니다. 그 말이 사용된 맥락과 관계없이 제게는 그 말이 저의 ‘죄 많은 청춘’을 질타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그랬습니다. 디테일에 가서는 언제나 악마의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그때는 젊어서의 사랑에는 늘 그 ‘디테일의 악마’와 대적하기 위해 부단히 ‘싸움의 기술’을 연마해야 된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런 자명한 사실도 모르고 연애를 그저 싸움판으로 몰고 갔습니다. 저의 연애는 천사와 악마가 하루씩 배역을 나누어서 공연하는 블랙코미디와 진배없었습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보면 ‘최악의 사랑’이라 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필립이 사랑했던 여인은 불행히도(불행히도!) 저급한 영혼의 소유자, ‘디테일의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주인공의 구애를 마다하고 떠난 그녀는 충동과 타산으로 점철된 불행한 결혼생활(동거)을 청산하고 다시 주인공을 찾아옵니다. 그들의 재회가 보여주는 장면은 너무 통속적이고 전형적이지만 그럴수록 리얼하게 다가옵니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로 왔지?」 이윽고 그가 물었다.
여자는 대답 대신 울기 시작했다. 두 손을 축 늘어뜨린 채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 하지도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러 온 하녀 같아 보였다. 한없이 기어들어가는 태도였다. 무슨 감정이 북받쳐오르는 것 같았지만 필립은 그것이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불현듯 그대로 돌아서서 달아나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다시 만나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마침내 그가 말했다.
「죽어버리고 싶어요」 신음하듯 그녀가 말했다.
필립은 그녀에게 앉으라고 권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신음하듯 내뱉었다.
「웬일이야?」
「에밀이 가버렸어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필립은 그 순간, 자기가 그녀를 아직도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자기 앞에 얌전하고 다소곳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당장 부둥켜안고 눈물로 얼룩진 그 얼굴에 키스를 퍼부어대고 싶었다. 아, 그 동안 얼마나 오래 헤어져 있었던가. 그 동안을 도대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단 말인가.
「좀 앉지 그래. 마실 것 좀 갖다줄게」 
그는 의자를 불 곁에 끌어다주고 그녀를 앉혔다. 위스키 소다를 만들어 갖다주자 그녀는 흐느끼면서 마셨다. 그녀는 슬픔이 가득 어린 커다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 아래 커다란 주름이 깊이 나 있었다. 마지막 보았을 때보다 더 여위었고 더 창백했다. 
「당신과 결혼할 걸 그랬어요. 당신이 청혼했을 때」 그녀가 말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지 필립은 알 수 없었다. 그때까지 간신히 그녀 가까이 가지 않았지만 이제 참아낼 수 없었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안됐어. 사정이 어렵게 되어」
그녀는 얼굴을 필립의 가슴에 파묻고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모자가 방해가 되자 벗어버렸다. 그녀가 그처럼 울 수 있으리라고는 필립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키스를 또 하고 또 했다. 그러다보니 그녀도 얼마간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내게 항상 잘해 줬어요. 필립」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올 수 있었죠」
「어떻게 됐는지 얘기해 봐」
「아녜요. 말할 수 없어요. 난 못해요」 몸을 떼어놓으며 그녀가 소리질렀다.
필립은 그녀 곁에 꿇어앉아 그녀의 볼에 얼굴을 갖다댔다.
「당신도 알잖아. 내게 말 못할 게 뭐 있어. 무슨 일이 있대도 난 당신을 탓하지 않겠어」
그녀는 조금씩 그간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서머싯 몸(송무 옮김), 『인간의 굴레에서』 중에서]


필립에게는 그녀(밀드레드)가 생애 최초로 경험한 ‘화학 반응’이었던 모양입니다. 지상의 모든 ‘설명’이 그의 ‘몰입의 경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까지 생긴 여자가 그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울면서 자신을 찾아온 사실과 그간의 사정은 그의 사랑에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오로지 그 행복했던 첫 경험이 복원될 수 있다는 사실에만 몰두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이 실려 있던 그녀와의 연애가 다시 자신의 눈앞에서 재현된다는 것이 꿈만 같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기꺼이 그녀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가 떠났을 때 그녀의 빈자리를 메꾸어주고 있던 현재의 연애 상대(노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녀는 그에게 고맙고 필요한 존재임에 분명했지만 필립은 ‘눈 먼 사랑의 열정’을 택해 그녀를 떠납니다. 필립은 그녀와의 관계를 청산할 방법에 골몰합니다. 그게 자기에게나 그녀에게 윤리적인 결단이 될 것이며, 돌아온 연인 밀드레드와의 사랑을 좀더 소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못난 짓이 될 것이라는 예감은 애써 무시합니다. 그는 노라와의 연애에서 짐짓 묻어두고 있던 ‘디테일의 악마’를 다시 불러내면서(그녀에게 가졌던 불만을 되새깁니다) 그녀와의 절교를 실행에 옮기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그녀를 회피한 연후에 마음을 다잡고 이별 선언을 위해 그녀를 찾아갑니다.


「발소리 듣고 당신인 줄 알았어요」 그녀는 소리쳤다. 「그 동안 대체 어디 숨어 계셨어요, 이 망나니 아저씨?」
반색을 하면서 다가와 목을 껴안는다. 그녀는 다시 보게 되어 기쁘다고 한다. 필립은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그런 다음,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우선 차를 좀 달라고 한다. 그녀는 부산스럽게 불을 붙이고 차를 끓인다.
「그 동안 정신없이 바빴어요」 그렇게 말해 놓고 보니 멋쩍기만 하다.
그녀는 명랑하게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새로 일거리를 하나 맡았는데, 지금까지 거래가 전혀 없던 어떤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짧은 소설을 한 편 써주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십오 기니를 받는다 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이에요. 그걸로 뭘 했으면 좋을지 말해 볼까요? 간단한 여행을 다녀오는 거예요. 옥스퍼드에 가서 하루쯤 놀다오는 게 어때요? 대학 구경을 하고 싶어요」
필립은 그녀의 눈에 혹 책망하는 빛이 있나 살펴보았다. 여전히 솔직하고 즐거운 눈빛이었다. 그를 오랜만에 만나 너무 기쁜 모양이었다. 필립은 오히려 맥이 탁 풀렸다. 도저히 그 무참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그녀는 토스트를 만들어 여러 조각으로 나눈 다음, 마치 어린아이에게나 주듯 한 조각 한 조각 그에게 건네주었다.
「우리 강아지, 이제 배가 불러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를 물자 그녀가 얼른 불을 붙여주었다. 그러고는 여느 때 곧잘 그러듯이 필립에게 다가와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몸이 아주 가벼웠다. 그녀는 필립의 팔에 안긴 채 몸을 젖히며 행복해 죽겠다는 듯 한숨과 같은 콧소리를 냈다.
「듣기 좋은 말 한 번 해봐요. 내가 맘에 든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당신도 알잖아」
이렇게 되어서는 도저히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날만은 어쨌든 그녀를 마음 편하게 두고, 나중에 편지를 쓰면 되리라. 그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노라를 울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키스를 해달라고 했고, 그는 키스하면서 밀드레드를, 그리고 그녀의 창백하고 얇은 입술을 생각했다. 밀드레드에 대한 기억이, 실체는 없으나 허깨비는 아닌, 그보다는 분명한 어떤 모습을 하고 내내 그를 떠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자꾸만 정신을 어지럽혔다. [서머싯 몸(송무 옮김), 『인간의 굴레에서』 중에서]


필립은 노라가 밀드레드보다는 ‘열 배는 낫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머리도 좋고 성품도 착했고, 대담하고 정직한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필립은 노라와 ‘한 나절을 보내기보다 단 십분이라도 밀드레드와 같이 있고’ 싶었고 그에게는 ‘노라의 어떤 키스보다도 밀드레드의 그 차가운 키스 한번이 더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노라를 버리고 밀드레드를 선택합니다. 밀드레드가 ‘설령 박정하다 한들, 그녀가 사악하고 저속하다 한들, 설령 미련하고 욕심이 많다 한들 어찌하랴. 이 사랑의 마음을 어찌하랴. 노라와 행복해지고 싶기보다 밀드레드와 불행해 지고 싶다’고 거듭 다짐합니다.
물론, 이들의 연애는 순탄한 결말을 보이지 않습니다(흥미진진하고 자세한 ‘디테일’들은 소설을 직접 읽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제대로 된 성장소설에서 연애의 순탄한 결말을 찾는다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이나 진배없으니까요. 밀드레드에게 다시 상처를 받은 필립은 노라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이미 새로운 약혼자가 생긴 뒤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열병(熱病)’이 허여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성장통은 거기까지만 허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젊어서는(어려서는) 눈앞의 성공만이 의미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누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해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성공은 성공이고 실패는 실패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오직, 성공만이, 그것이 의지의 소산이든 운명의 시혜이든, 내 인생에서 의미있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것들만이 기억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실패 중에서도 성공 못지않은 의미를 지닌 것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어쩔 수 없이(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실패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믿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연애의 경험, 그 실패한 ‘몰입의 경험’에서도 실패한 성공의 자취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루어진 연애만 각별한 것은 아닙니다. 실패한 연애도 예외 없이 각별한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에겐가 필립도 되고(또 그에게서 밀드레드를 가로채 가는 그리피스도 되고), 에밀도 되고(극소수겠지만), 밀드레드도 되고, 노라도 되며(그녀의 새로운 약혼자 킹스포드도 되며), 그렇게 살아갑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때그때 주어진 배역에 열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승리의 희열도 느끼고 패배의 좌절도 겪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인생입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설명’이 아니라 ‘묘사’입니다. 필립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중언부언이겠지만,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에서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대목은 연애를 다루는 작가의 정직한 태도입니다. 연애에 관한 것인 한 그는 절대적으로 ‘묘사’에 충실하고 있습니다(다시 찾아온 밀드레드가 필립에게서 떠나며 부렸던 그 끔찍한 패악질과 그녀에게 버림받은 필립이 노라를 다시 찾아가 사랑을 구걸하는 모습, 그리고 그녀에게 거절당한 후의 심리 묘사를 그대로 옮겨 적고 싶은 충동이 솟구칩니다만 자제하겠습니다). 그는 인간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누구를 설명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인간에게는 그런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서머싯 몸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이 좋았습니다(물론 모든 좋은 소설들은 다 그렇습니다만). 
사족 한 마디. 그 지독한 ‘사랑의 열병(熱病)’이 없는 인생은 얼마나 허전한 것일까요? 그것이 있어서 우리가 허전한 한 목숨, 그 ‘이어붙일 데 없는 허전한 한 목숨’(조용미)의 굴레를 잠시나마 슬쩍 벗어나(비껴나) 볼 수 있는 것 아닐까요?
<201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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