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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ug 09. 2019

소문난 기름집에

거짓 과학에 대한 반발

기름집에 쓸 만한 됫박 없고


'소문난 기름집에 쓸 만한 됫박 없고, 대장간에 좋은 칼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름집에 쓸 만한 됫박 없고, 대장간에 좋은 칼 없다'라는 말은 제가 듣기에는, 두 가지 전혀 다른 뜻을 전달합니다. 하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정작 좋은 기구(機具)가 있어야 할 곳에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타성에 젖어 있거나, 좋은 것들이 자리잡지 못하게 밀어내는 어떤 분위기나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 곳을 그렇게 나무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와는 정 반대의 뜻입니다. ‘쓸 만한 됫박’이나 ‘좋은 칼’은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고대하는 것이고 정작 전문가들에게는 그런 ‘기구의 필요성’이 그닥 절실하지 않다는 겁니다. ‘쓸 만한 됫박’ 하나 없이도 눈대중으로 정확하게 양(量)을 담아내는 게 오래된 기름집 주인들의 수완입니다. ‘정확한 도구(기준되는 외물)’는 초보자나 문외한들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대장간도 마찬가집니다. 언제든 좋은 칼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굳이 ‘좋은 칼’을 두고 볼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있다면 그것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할, 그러나 직접 칼을 만들지는 못하는, 이에게 얼른 팔아야지요.  

제게는 두 번째 의미가 더 솔깃합니다. '기름집에 쓸 만한 됫박 없고, 대장간에 좋은 칼 없다'라는 말은 외물(外物)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진정한 고수(高手)들의 살림살이를 뜻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마 야스퍼스의 일화가 그런 생각을 부추겼을 겁니다. 
야스퍼스(Karl Jaspers)가 ‘대장간에 좋은 칼 없다’며 자신의 모태지식(母胎知識)인 정신의학(정신분석학)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뛰쳐나와 자신만의 실존철학을 정립하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젊어서부터 늘 프로이트나 융의 정신의학 쪽으로 마음을 기울이고 있던 저로서는 새롭다 못해 ‘골을 때리는’ 느낌마저 받아야 했습니다. 스스로 한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원인을 가지고 설명한다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건 고작 ‘쓸 만한 됫박’이나 ‘좋은 칼’에 의존하겠다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초보 시골무사에서 그치는 일이었습니다. ‘골 때리는’ 야스퍼스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야스퍼스는 의식의 기본구조에서 출발하여 인식의 한계들을 예리하게 의식하고 존재로 사고를 집중시켜 죽음, 고뇌, 투쟁, 책임 등의 한계상황에서 실존이 초월자와 대항하고 따르는 철학적 신앙의 형태를 취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을 한데 묶어, 전체 과학으로 전화한 거짓과학, 실존을 잃어버린 허무적인 원리, 인간을 조작하고 노예화하는 파괴적인 거짓신앙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신분석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첫째, 키르케고르와 니체가 이룬 것을 조잡하게 뒤집은 통속심리학이며, 매개체 없이 작용하는 진정으로 위대한 것을 방해하여 전체 정신병리학의 정신적 수준을 저하시켰다.
둘째, 의미의 양해와 인과적인 설명, 깨닫지 못한 것과 의식 밖의 기구 등 가설적 산물을 혼합한 양해를 무제한으로 행하며,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관찰사실을 근거로 합리주의적인 ‘신화’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에 대한 모독이며 동시에 엄연히 존재하는 인과적 가능성을 잘못 받아들인 것이기도 하다.
셋째, 학설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과학의 옷을 입은 세계관적(신앙적) 운동이며, 자격 수여 조건으로서의 교육분석과 심사는 교양에 대한 신앙고백과 결사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입신을 위한 비밀스러운 행동 내지는 가입의례로서 기능하고 있다. 자기증명은 정신치료사들에게는 꼭 필요한 영속적인 요청이지만, 본래 그것은 열린 인격 상호간의 교분과,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의 소산과의 접촉에 자극받아 자유 속에서 생기는 내면행위이며, 다른 사람의 통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분석에서의 그것은 자기기만이다. (『정신분석이라는 이름의 인간 드라마』 중에서)


야스퍼스는 법률을 공부하다가 정신의학으로 전공을 바꿉니다. 30대 후반까지 정신의학과 심리학을 연구(강의)하다가 막스 베버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철학으로 선회합니다. 10년을 침묵 속에서 지낸 뒤에, 거의 50 줄에 들어 『철학』이라는 책을 간행하면서 세계적인 실존철학자로서의 지위를 확립합니다. 그가 제 안에 들어온 것은 그가 말한 ‘매개체 없이 작용하는 진정으로 위대한 것(의 존재)’에 대해서 공감했던 까닭이었지 싶습니다. 일종의 ‘길 없는 길’에의 초대장을 받아든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야스퍼스가 맞았다면 우리도 ‘매개체 없이 작용하는 진정으로 위대한 것(의 존재)’을 믿고 실행에 옮기는 이를 우리의 지도자로 뽑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가 속류(俗流)들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첩경일 것 같습니다.<2012.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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