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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Sep 10. 2019

시골무사

불치하문

시골무사

‘시골무사’가 저의 닉네임이 된 지는 좀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그 별명을 접한 것은 일본 무협소설에서였습니다. 아마 30대 중반 쯤이었을 겁니다. 저의 서사적 정체성(敍事的 正體性)에 많이 부합했습니다. 그런데 저항이 왔습니다. 그 이름으로 글을 몇 편 썼더니 저의 검도 스승님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여쭈었더니 그 말 속에는 ‘무식쟁이, 형편없는 놈’이라는 뜻이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명색이 국립대 교수라는 사람에게 그게 어울리느냐는 말씀이었습니다. 제 검도 실력에는 딱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했더니 그것도 해당 사항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는 스승님의 그런 지적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이 당대 최고의 일류 검사(劍士)인데 당신의 제자가 ‘시골무사’를 자처했으니 마땅치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공자님의 제자가 돌아다니면서 ‘저는 무식쟁이로소이다’라고 떠들고 다닌다면 결국은 스승을 욕하는 일밖에 더 되겠느냐는 겁니다. 제자의 본업이 소설가였으니 그나마 그 정도로 해두셨던 것 같습니다.  

‘시골무사’라는 저의 닉네임에 또 한 번 ‘저항’이 온 것은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검도 회보에 에세이를 연재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서 ‘시골무사 아무개의 이야기 검도’를 싣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편집자로부터 제목에서 ‘시골무사’라는 말을 빼는 게 어떻겠냐는 ‘부탁’이 전해졌습니다. 형식은 ‘부탁’이지만 내용은 ‘명령’이었습니다. 무언가 반골적인 냄새가 난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 무얼 넣었으면 좋겠냐고 되물었습니다. ‘소설가’를 넣자는 거였습니다. 좀 뜨악했습니다. 본디 이야기는 좀 꼬는 맛이 있어야 재미가 있는 법입니다. ‘시골’에서 보니 ‘서울’이 좀 그렇더라라는 이야기가 조금씩은 섞여야 읽는 맛(씹는 맛)이 생기는 법인데 그런 게 '반동'으로 여겨졌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검열’이 들어오면 절반은 이미 기(氣)가 꺾여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기가 힘듭니다.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그러다가는 진짜 ‘시골무사’가 되는 느낌이어서 그 ‘부탁’을 마지못해 들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마지못해 연명하던 그 연재물도 결국은 ‘늙은 스승, 젊은 스승’이라는 글로 종언을 고했습니다. 누군가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던 모양이었습니다. "늙은 스승도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썼는데 다음부터는 글을 보내지 않아도 좋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도 이제 젊다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늙은 스승’이 되어 있습니다. 학과회의를 하든, 전체 교수회의를 하든, 뒷전에 앉아 있습니다. 간혹 발언 기회가 주어지면 ‘경험으로 아는 것’을 주로 말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논어>의 여러 구절들이 자주 뇌리를 스칩니다. 주로 공자님의 ‘나는 배우기를 즐긴 자였다’라는 말씀과 연관된 것들입니다. 공자님 역시 타고난 ‘시골무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주유천하가 실패로 돌아간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세상의 부귀공명과 한 몸이 되면 ‘시골무사’가 될 수 없는 것, 공자님 역시 ‘시골무사’가 자신의 ‘서사적 정체성’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은 아니다. 그저 옛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그것을 구해서 알게 된 사람일뿐이다.”라는 스스로의 말처럼, 공자는 하늘에서 떨어진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아니라 무지하고 모자란 인간으로 태어나 깨우쳐 배움을 거듭한 끝에 어떤 경지에 이르렀던 이였다. 우리는 그 점을 중시해야 한다. 즉 우리는 공자를 인간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공자가 강보에 누인 벌거숭이에서 담박에 <가라사대>의 그 위대한 스승으로 뛰어넘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하고, 때로 마당에서 제기차기 하느라 해지는 줄 몰랐던 꼬마, 숙제를 다 해 가지 못해 훈장에게 회초리를 맞기도 했던 학동, 신산한 육애의 충동을 넘어서지 못해 좌절에 사로잡히기도 했던 청년 공자 등, 우리가 공자를 제대로 이해하려 한다면 이 그늘진 초상들을 복원해 내고 그것들을 근엄한 수염이 대자로 뻗친 공자의 표준 초상에 접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이럴 수 있다면 그가 토한 모든 <도통한 성인의 말씀>도 대화 중에서 추출된 언어들의 표준 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그만 동네에도 나처럼 신망이 깊은 사람은 있어도 나처럼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거나 “나는 만들어내는 재주는 없고 단지 있는 대로 말하는 재주밖에 없다.”는 말들은 그저 성인이 보여주는 황송한 겸손의 제스처가 아니다. 그가 늘 <불치하문>하여, 즉 <아랫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수행한 대화에서 실제로 보여주었던 태도들이다. [이왕주, 『철학풀이, 철학살이』 중에서]


오늘부터 본격적인 다이어트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배 나온 시골무사’는 꼴볼견일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유난했던 더위 때문에 실패했습니다만, 이 가을에는 반드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생활에 몰두할 작정입니다. 밖으로 많이 나돌 생각입니다. 그때까지는 실물을 좀 감추고 살아야겠습니다. 이름값을 제대로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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