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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Sep 23. 2019

상징

상징, 알레고리, 기호

상징과 기호


융은 알레고리와, 기호(sign), 그리고 상징을 엄격하게 구별한다(보통은 상징을 기호의 일종으로 설명한다. <기호에는 도상(아이콘), 지표, 상징이 있다>는 식이다). “상징적 표현을 '알려진 것의 유사하거나 압축된' 지적으로 해석하는 모든 관점은 기호적(semiotic)이다. 그렇지 않고 실제로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최선의 가능한 정형화로, 또한 그러한 이유로 더 이상 명료하고 특징적인 것으로 표상될 수 없는 것으로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는 관점은 상징적이다. 만약 알려진 사실에 대한 의도적인 부연(敷衍), 고쳐 말하기, 기이한 변형으로 상징적 표현을 해석한다면 이는 알레고리적이다. 알려진 사실을 의미하는 표현은 언제나 단순히 기호로 남아 있지 상징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의미로 충만한 살아있는 상징을 알고 있는 연상으로부터 만들어낸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상징이, 모호하고 보편적인 심리 내용물들의 이미지이고 관념들의 신비스런 구조들의 대용품이자 그 증표이기 때문에, 명확하게 식별되는 개념을 만드는 일이나 혹은 쉽게 이해되고 명료히 정의될 수 있는 의미를 내포하는 이미지에는 부득이 알레고리가 채용될 수밖에 없다. 칼과 자를 든 여성이 정의의 표상으로 간주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호와 상징은 현실의 각기 다른 국면(two different planes of reality)에 속한다. 카시러가 적절히 말했듯 “신호는 물리의 세계에 속하고 상징은 의미의 세계에 속한다. 상징은 신호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기보다는 상징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피아제는 ‘의식적 상징’과 ‘무의식적 상징’ 사이의 차이점을 제시했다. 모든 상징은 사실 한 측면에서는 ‘의식적인 것’을 지시하고 다른 한 측면에서는 ‘무의식적인 것’을 환기한다. 모든 관념은, 아주 이성적인 것일지라도, 그 자신 안에 무의식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며 모든 심리적 과정은 무의식으로부터 의식으로, 다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흐른다. 그 단절되지 않는 흐름 속에서 인간의 삶은 존재한다.


에리히 프롬이 나눈 세 가지 상징, 즉 ①관례적인 것, ②우연한 것, ③보편적인 것 중에서 마지막의 것만이 융학파가 사용하는 상징의 개념이다. 상징이 보편적이면 보편적일수록 우주는 그것 안에서 자신을 더욱 힘 있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서 불, 물, 땅, 나무 혹은 소금을 생각해 보자. 그것들이 하나의 정신적인 속성을 표현해내는 상징으로 사용될 때 그것들은 자신의 물질성이나 개인적 경험의 틀 안에 갇히지 않고 흉내낼 수 없는 의미의 풍부함으로, 위대한 단순성으로, 작용한다. 집은 개성의 상징으로, 피는 삶의 필수적 요소인 정열의 상징으로, 동물은 다양한 본능과 그것의 발달 단계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상징은 알레고리도 기호도 아니다. 그것들은 의식을 초월하는 내용물들의 이미지이다. 의식을 초월하는 것들은 거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상징은 기호로 전락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호도 상황에 따라서는 상징으로 취급될 수도 있다. 상징은 의미로 충만할 때만 살아 있을 수 있다. 다른 것이 대신해서 더 충만한 의미를 표현해 낼 수 있게 되면 상징은 죽게 된다. 관례적인 기호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알고 있는 연상에서 살아 있는 상징을 창조한다는 것은 정녕코 불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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