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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Oct 08. 2019

금각사(金閣寺)

전에 관하여 5

전(傳)에 관하여⑤ - 금각사(金閣寺)


그 어린 시절,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金閣寺)』가 어떤 연유로 내게로 온 것인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다. 그 근방의 기억이 몽땅 통째로 지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뚱맞은 내인론(內因論, 원인을 내부에서 찾음) 정도는 한 번 유추해 볼 수 있다. 그 시절 나는, 세계의 비참 속에서도 난생 처음 보는 황홀한 미감(美感)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그렇게 갑자기, 도적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황홀경은 그 이후로 다시 없었다. 그만큼 큰 사건이었다. 40대에 막 접어들 무렵, 영화 <동방불패>의 몇 장면이 그 아류적(亞流的) 느낌을 주면서 사추기(思秋期)의 여러 가지 상념을 불러일으킨 적은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의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를테면 그 둘 사이에는 정도(degree)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kind)의 차이가 존재했다. 모르긴 해도, 전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어린 유미주의자로의 입신(立身)을 감행하게 만든, 이른바 계기적 사건이 아니었던가 싶다.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던 3월에 어머니를 여의고 두문불출, 공부에만 열중한 덕분에 악동으로 호가 났던 불미스런 과거는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특별한 교육관에 따라서 우리는 3년 내내 같은 반 급우들과 헤어지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그때 친구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3학년에 올라가자마자 같은 반 친구 한 명이 혼자서 공부하는 게 너무 심심하니 자기 집에서 숙식을 하며 같이 공부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나도 많이 외로웠던 터라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응했다. 친구집은 M시의 전경이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몇 채 남아있던 꽤 큰 적산 가옥 중의 하나였다. 북쪽으로 대문이 있고 남향으로 안채가 앉아 있는 전형적인 왜옥인데 마당에 큰 연못까지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집이었다. 집은 큰데(온돌로 개조한 안방과 다다미방이 서너 개 있었고, 화장실도 따로 썼다) 식구는 어머니, 가정부, 친구, 여동생, 그리고 큰 개 한 마리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배를 타는데 멀리 나가 계신다고 했다. 그 시절 기억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여기저기 결락(缺落)이 심해 매끈하게 재생해내기가 쉽지 않다. 기억에 남는 것만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는 근엄하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분이었다. 친구는 어머니를 많이 닮아서 진중하고 말이 별로 없었다. 초등학생이던 여동생은 아주 귀엽게 생긴 아이였는데 생활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밥을 같이 먹을 때만 볼 수 있었다. 한 번씩 무용 실력을 뽐내고 싶었는지 나 보란 듯 한쪽 다리를 들어서 옆얼굴에 척하고 갖다 붙이곤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가 동생을 나무랐다. 대문 안쪽에 묶어두는 큰 개는 성질이 꽤나 사나웠다. 나만 보면 사정없이 짖곤 했다. 끝까지 나를 식구로 인정하지 않았고 헤어질 때까지 나와는 한 번도 눈을 맞추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혼자 계시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친구 어머니에게 그 말씀을 드렸다. 친구 어머니의 표정이 크게 어두워지면서 눈빛마저 흔들렸다. 평소에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으시던 분이 그렇게 심란해 하는 건 좀 의외였다.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시면서 한숨까지 내쉬는 거였다.
“어휴~, 오늘 두 명이 함께 나가는구나.”
알고 보니 그날 우리가 등교를 하고 난 뒤 그 사나운 개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개가 안 보였다. 개 짖는 소리도 안 들렸는데 마음이 급해서 개집이 비어 있는 것을 챙겨볼 여유가 없었다. 무엇을 잘못 먹은 것도 아니고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어서 노화로 인한 자연사였던 것 같은데 어머니는 크게 상심하는 듯했다. 개가 죽은 것과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한데 묶어서 어떤 나쁜 징조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친구집에서 나올 때까지 친구 아버지는 한 번도 뵙지 못했다. 어쨌든 내 생애 최초의 '유미주의'는 그때 찾아왔다. 친구집에서 머물 때 등하교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친구 집으로 가려면 M고등학교 앞으로 난 좁은 축대길을 지나야 했다. 이제하 소설 「태평양」에 그곳 정경의 한 편린이 묘사되어 있다.


학교는 시(市)의 서북쪽에 있는 학산(鶴山) 비탈 숲 밑 양지쪽에 자리 잡고, 거의 전 시가지와 부두와 예배당 뾰족탑과 바다를 내려다보고 앉아 있었다. DDT 무더기가 본관과 별관 건물 모퉁이 이곳저곳에서 햇볕에 허옇게 타고 있었고, 그 귓속을 후비는 듯한 소독 냄새와 함께 채 깨지지 않은 유리창들이 대공(大空)을 향하여 눈이 시도록 번쩍거리고 있었다.( 이제하, 「태평양」, 『초식』, 민음사, 1973, 36쪽)


동란이 끝나고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던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수업을 할 수 있었던 무렵의 풍경 묘산데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이 소설에서는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전망 좋은 자리에 터를 잡은 이 학교에는 정작 명물이 따로 있다. 축대 위 운동장 담을 따라서 열 그루 정도, 장엄히 서 있는 씨알 굵은 벛꽃나무가 그것이다. 아마 이 학교의 역사와 거의 같은 나이를 지닌 고목들이지 싶은데 이 벚꽃나무가 일제히 자신의 여린 살점들을 바다를 향해 날려 보내는 장면이 가히 장관(壯觀)이다. 정말이지 귀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몇 가지 조건이 제 때 갖추어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니 매 년 정기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꽃 필 때 봄비가 자주 내려서 꽃잎을 미리 떨구어서도 안 된다. 낙화 시점에 때맞추어 산 위에서 바다 쪽으로 힘찬 바람이 불어줘야 한다. 그래야 꽃잎들의 화려한 집단 비행이 가능하다. 바람 부는 시간도 중요하다. 푸르고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마음껏 쓸 수 있는 때여야 최고의 미장센이 가능하다. 제대로 된 낙화 장면을 보려면 가히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의 도움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그날도 친구집을 향해서 터벅터벅 걸어가던 중이었다. 친구집은 M고등학교의 높은 축대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내가 다니던 M중학교에서 M고등학교로 가는 길은 급한 오르막길이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늘을 쳐다보며 걷는 중이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새뗀가 싶었다. 무엇인가 살아있는 것들이, 반짝거리는 수많은 작은 날개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바다를 향해 떼 지어 날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바탕 삼아서 연분홍 벚꽃들이 화려한 군무(群舞)를 펼치고 있었다. 저렇게 일거에 지는구나. 시커먼 몸통에서, 어울리지 않게 매달려 있던 가여린 연분홍 살점들이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갑자기 아 이렇게 세상이 아름답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왔다. 하늘은 눈이 시도록 맑았고 내 눈에서는 예고도 없이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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