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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Oct 17. 2019

통에 아직 물이 남은 까닭

삼국유사

<통에 아직 물이 남은 까닭>


살다 보면 누군가의 뒤를 쫓고 있는 자신을 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간혹, 그 사람이 살다 간 길을 답습(踏襲)하는 게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될 때도 있습니다. 보통은 그때그때 선행 주자들이 교대교대로 나타납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내 뒤를 쫓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심히 부담이 옵니다. 아마도, 젊을 때는 남을 쫓을 때가 많고 나이가 들게 되면 남이 나를 쫓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인생일 거라는,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 들수록 세상이 점점 덜 감동적이 된다면 지나친 염세(厭世)일까요? 제 경우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소설을 읽든, 영화를 보든, 신문을 뒤지든, 사람살이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가끔씩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고작 종교적 우화이거나 아주 비상식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들뿐입니다. 한동안 저의 이목(耳目)을 사로잡았던 영화 <검우강호>의 주제도 결국 그런 것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주인공들의 희생적인 사랑, 그리고 그 배후의 이념으로 등장하는 아난존자(阿難尊者)의 ‘돌다리 - 오백년 우타(雨打)’ 이야기, 그 우화가 재미있었습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사랑하는 이가 있음을 알고 물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느냐?’, 그러자 아난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돌다리가 되고자 합니다. 오백년 비에 맞고 오백년 바람에 쓸리고 오백년 햇빛에 쬐인 후 그녀가 저를 밟고 건너가기를 원합니다.’ 누구는 그 장면을 ‘사랑에 관대했던 부처님’ 이야기로 옮기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것을 ‘사랑을 모르는 이는 깨칠 수 없다’는 것을 환기하는 이야기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게 결국은 ‘다리’가 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당시에는 아주 귀에 솔깃했습니다. 듣기에 좋았습니다. 그 비슷한 이야기가 삼국유사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편에서도 나옵니다.


...삼국유사 제3권 제4 탑상(塔像)편에는 남백월(南白月)의 두 성인 노힐부득(努肹夫得)과 달달박박(怛怛朴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산골 마을에서 자란 두 사람은 서로 벗이 되어 사이좋게 지내다 약관의 나이에 이르러 스님이 됩니다. 불가에 귀의한 얼마 후 치산촌 법종곡의 승도촌에 옛 절이 있어 머물며 수양할 만하다는 말을 듣고는 함께 가서 각각 대불전, 소불전이라는 두 골짜기에 터를 잡았습니다. 노힐부득은 남쪽의 회진암에 거처하였고, 달달박박은 북쪽의 유리광사에 거처했습니다. 각자 암자에서 수행하며 부득은 미륵을 부지런히 구하고 박박은 미타를 염불하였습니다. [법성 스님, ‘가월과 빈바과의 비유’, 법보신문, 참조]


......어느 날 점차 날이 저물어갈 즈음에 나이 스물이 됨직한 한 자태가 썩 아름다운 낭자가 난사(蘭麝, 난초향과 사향) 향기를 풍기며 갑자기 북암(北庵)에 와서 자고 가기를 청하면서 (....) 달달박박(怛怛朴朴)이 말하기를 “사찰은 청정을 주로 하는 곳이므로 당신은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지체하지 말고 가시오”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낭자는 남암(南庵)으로 노힐부득(努肹夫得)을 찾아가서 또한 전과 같이 청하였다. (....) 부득이 듣고 놀라서 이르기를 “이 땅은 부녀가 더럽힐 데가 아닙니다. 그러나 중생의 뜻에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인데 더욱이 심산궁곡에 밤이 어두웠으니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읍하고 암자 안으로 맞아들였다. (....) 이윽고 밤이 다 가려 하자 낭자가 노힐부득을 불러 말하기를 “제가 마침 불행히도 산고(産苦)가 있으니 바라건대 화상은 짚자리를 준비해주십시오” 하였다. 부득이 불쌍히 여겨 안 듣지 못하고 촛불을 은근히 밝히니 낭자가 이미 해산하고 또 목욕하기를 청하였다. 부득이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마음에 얽히었으니 애달피 여기는 정이 더함을 마지못하여 또 통을 준비하여 낭자를 그 가운데 앉히고 더운물로 목욕시켰더니 이미 통 속 물에 향기가 풍기어 금액(金液)으로 변하였다. 노힐부득이 크게 놀라니 낭자가 말하기를 “우리 스님께서도 여기에 목욕하시오” 하므로 노힐부득이 마지못하여 그 말에 따랐더니 홀연히 정신이 맑아짐을 깨닫고 살결이 금색이 되었다. 그 옆을 돌아보니 한 연대(蓮臺)가 생겼다. 낭자는 노힐부득에게 거기에 앉기를 권하면서 이르기를 “나는 관음보살인데 이곳에 와서 대사를 도와 대보리를 이루어 준 것입니다” 하고 말을 마치자, 보이지 아니하였다. 달달박박이 생각하기를 “부득이 오늘밤에 반드시 염계(染戒, 계를 더럽힘)했을 것이니 가서 비웃어 주리라” 하고 이르러 보니, 노힐부득이 연대에 앉아 미륵존상이 되어 광채를 내쏘고 몸은 금빛으로 채색되었다. 그만 머리를 조아려 예하여 이르기를 “어떻게 이렇게 되셨습니까?” 하니 노힐부득이 그 사유를 자세히 말하였다. 달달박박이 탄식하여 말하기를 “내가 마음에 가림이 있어 요행히 대성(大聖)을 만났으나 도리어 대우치 아니하여 대덕지인(大德至仁)이 나보다 먼저 뜻을 이루었으니 원컨대 옛날의 계분(契分, 친분)을 잊지 마시고 거두어 주소서” 하였다. 노힐부득이 이르기를 “통에 아직 남은 물이 있으니 그대도 목욕하라” 하였다. 달달박박이 목욕하니 또한 전과 같이 되어 무량수(無量壽)를 이루어 2존(尊)이 엄연히 마주 대하였다. [『삼국유사』 중에서,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정진홍)에서 재인용]


우리는 보통 상식(common sense)에 충실한 사람을 존중합니다. 대체로 상식적 인간들은 균형 감각이 있고 체면을 많이 차립니다. 혼자만의 삶보다는 같이 하는 모두의 삶을 앞세웁니다. 그래서 ‘상식에 충실한 느낌을 주는 이’들은 주변의 호감을 삽니다. 위의 글에 등장하는 달달박박과 노힐부득도 그런 ‘상식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서로 생각하는 상식의 내용이 조금 달랐을 뿐입니다. 그러나 ‘대보리’ 앞에서 그 두 개의 상식은 각각 제 갈 길로 갑니다. 그렇게 그들의 ‘상식’은 서로 충돌합니다. 목적 앞에서 승패가 갈립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상식을 엄호하다가 실기(失機)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상식에 충실하게 임한 결과, 뜻하지 않게, 대보리를 이룹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노힐부득의 상식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상식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기 때문이다. ‘상식(common sense)’은 아주 오래된 단어다.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이 교차되는 지점에 일종의 ‘공통적인 감각’이 있다고 믿었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서로 비교하고 통합해 이성의 판단과는 또 다른 차원의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이 공통적 감각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근대에까지 이르러 성숙한 존재의 조건을 정의한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은 바로 이성적 사유와 더불어, 시대의 가치를 공유하는 상식적인 사유가 가능한 사람을 뜻하게 되는 것이다. [김정운, 『남자의 물건』 중에서]


위의 설명에 따르면 노힐부득의 ‘상식’이 제대로 된 ‘상식’이었던 것이 명백해집니다. 이성과 상식은 때로 따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윗글의 취지와 노힐부득의 계율을 초월한 인간애(동정심)는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성과 상식이 따로 간다는 말이 제게는 여전히 생소하게 들립니다. 그 둘을 잘 조합해야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논리가 제겐 영락없이 비상식적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우리 시대, 우리 땅에서는 ‘시대의 가치를 공유하는 상식적인 사유’라는 것은 늘 ‘제 정신이 아닌 것’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성적 사유와는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상식적 인간’이라 함은 언제나 안전지대만을 탐하는 못난 ‘전두엽 장애현상’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고질 중의 하나인 지역감정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체적 판단은 전혀 불가능하고 누군가가 불어넣어 주는 동류의식과 그것이 선사하는 안도감만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상식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늘 핍박이 주어지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그것을 포용하여야 ‘성숙한 인간’이 된다니 참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득불 그 ‘이성과 상식의 조화’를 통한 성숙한 인간으로의 진입이라는 ‘상식론’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말로만 큰 가르침을 베푸는 베스트셀러나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찬 유력 신문의 정치면을 보고서 느낀 게 아닙니다. 제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랑을 모르는 상식’에 치여 두어 번 ‘희생양의 존재 양태’를 제 몸으로 겪고 나서는, 그리고 믿고 의지하던 이들이 한 순간에 도덕(道德)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는, 인간이란 결국 불쌍한 존재이며 어쩔 수 없이 비열한 상식을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저 역시 그런 상식의 눈높이에 맞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인간이었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 혹은 체면과 도덕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몸을 버렸던 신화나 역사 속의 인물들이 왜 그렇게 예외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왜 죽고 나서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상식이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살아남기 위한 영악한 계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힐부득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벌써부터 부처(미륵불)였습니다. 그에게는 통의 물이 필요 없었습니다. 달달박박이야말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준 ‘진정한 사람’입니다. 통에 아직 남은 물이 있어야 했던 소치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우리는 위로받아야 할 존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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