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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Nov 18. 2019

마법은 없고

행실과 말

마법은 없고


사람 중에는 체질적으로 남의 말을 잘 믿는 이(귀가 얇은 이)와 그렇지 않은 이(귀가 두꺼운 이?)가 있습니다. 살아보니, 그 중간에 처하는 이는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의심이 많거나 순진하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안 그런 척 할 뿐이지 속내는 결국 둘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남의 말을 잘 믿는 편이었습니다. 여간해선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나중에 뒤통수 얼얼하게 설움이나 손해를 주고 떠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안 믿습니다. 사실은 아예 사람 만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속기 싫어서요.

왜 이렇게 살까?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해 본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달리 무슨 생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도 어쩔 수 없는 어떤 힘이 그렇게 몰고간 겁니다. 처음에는 제가 선량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불량이었습니다. 결국 제 탓이었습니다. 사람이 못나서였습니다. 오직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혀서 그런 거였습니다. 자기가 개를 좋아한다고, 아무 개나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안 됩니다. 인간과 개 사이에서는 그게 상식이고 윤리입니다. 개에게는 개의 상황과 윤리가 있는데, 함부로 굴다가는 손을 물리기 십상입니다. 집에서 개를 기를 때였습니다. 집아이가 밖에서 큰 개를 만났습니다. 전봇대에 묶여있는 개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그냥 달려가서 만지려다가 집채만 한 개에게 크게 물릴 뻔했습니다. 옆에 있던 제가 얼른 아이를 끌어당겼으니 망정이지 아주 큰 일이 날 뻔했었습니다.

그 일을 비유삼아 생각해 봅니다. 대여섯 살 난 철부지 아이가 모르고 어쩌다 당하는 일을 저는 평생을 두고 겪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물립니다. 그러니 이건 병이지요. 심각한 병입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면 주인공이 하는 말 중에서 “전문가가 어디 있어요? 사기꾼 빼고.”라는 대사가 있습니다. 변호사가 사건을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하니까,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는 전직 수학 교수는 그렇게 내뱉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이 온통 들개와 같은 사기꾼 천지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전문가라는 자들이 결국 사기꾼이지. 그 역도 성립하고. 그의 말대로, 사기꾼은 정말 전문가입니다. 사기를 당해본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사기를 당할 때는 꿈에도 자기가 사기를 당하는 중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저 황홀합니다.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어야 사기꾼이 됩니다. 그러니, 새로운 인연을 맺을 때마다 늘 황홀한 기분이 드는 저 같은 사람은 전형적인 사기 피해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기꾼 제조기입니다.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사기꾼으로 만들어버리는 정말이지 악질 못난이인 것입니다. 멀쩡한 사람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타고난 악질 정신병자인 셈입니다.

몇 년 전 한 젊은 후배에게 “선생님은 너무 순진하시네요!”라는 친절한 충고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는 최대한 안 순진한 척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적반하장으로(?) 결국 그런 막말까지 듣고 말았습니다. “순진한 게 좋은 것 아닌가?”하고 그 자리를 애써 모면했지만, 내내 찝찝했습니다. 최대한 안 순진한 척 하는 중에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게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의 그 ‘순진하기 그지 없는 충고’가 때 아닌 자책감까지 들 게 했습니다. 얼마나 제가 한심하게 보였으면 그런 막말까지 했겠습니까? 그의 말을 뒤집으면 “너 왜 이러니? 아마추어 같이....” 가 되는 거였습니다. 어쨌든 이제는 그런 '사람 만나기'도 다 지나간 일이 되었습니다. 모두 지난 일이니 웃으며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약간의 위로가 되는 고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공자는 행실이 말에 미치지 못하는 재여(宰予)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 그의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으나, 지금은 그의 말을 듣고 다시 행실을 살펴보게 되었다. 나는 재여 때문에 이렇게 바뀌었다.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도덕적인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기가 믿을 만한 말을 하기 때문에 남들의 말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언행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을 듣고 행실을 살펴보아야 한다.

증자(曾子)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돼지를 죽여 자식을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좋은 예다. 하루는 증자의 부인이 장을 보러 나섰는데 어린 아들이 따라가겠다고 울며 떼를 썼다. 엄마는 아이를 달랠 요량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시장에 다녀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반찬을 해줄게. 그러니 집에서 기다려라.” 아들은 돼지고기로 반찬을 만들어준다는 엄마의 말에 울음을 뚝 그쳤다. 증자는 묵묵히 아내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증자는 마당에서 돼지 잡을 준비를 했다. 비싼 돼지를 잡으려는 증자를 보고 아내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아이를 달래려고 그냥 한 번 해본 말입니다.” 그러자 증자가 말했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오. 아이는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 배우는 법이오.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아이가 뭘 배우겠소. 부모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은 부모를 믿지 못하게 되오.” 그리고는 진짜로 돼지를 잡았다.
자신의 말에 책임질 줄 아는 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다. 남과 교류할 때 먼저 신용을 지켜야 되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쌍방이 모두 신용을 지켜야 한다. 앞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서 저렇게 말한다면 우호적인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서로 진심으로 믿는다면 시간이 흘러도 믿음이 깨지지 않는다. [창화 편, 박양화 역, 『왼손에 노자 오른손에 공자』 중에서]


『미쳐야 미친다』의 저자가 조선말의 불우한 천재 김영의 일생을 이야기하면서(그가 매도된 시대를 비판하며), 문득 자신의 유학 시절에 접한, 대만 정치대학 구내의 버려진 개들을 이야기하는 심정이 요즘 들어 부쩍 공감이 갑니다. 제 공부는 하지 않고 어디 땅에 떨어진 먹을 것이 없나, 떼를 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상아탑 잡배들을 ‘버려진 개’들에 빗대어 나무라는 책 속의 내용이 꽤나 큰 울림을 자아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보다 잘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더군다나 글께나 읽은 치들이 나잇살이나 좀 먹게 되면 스스로 지혜로운 자 또는 초탈한 자 연(然)하고 싶은 마음이 안에서 요동치게 되는 법입니다(그걸 어떻게 알지?). 어디서 그럴 듯한 문자 속이나 몇 마디 키워서, 여기저기 되는대로 설(說)하고 다니면서 마치 『해리 포터』시리즈에 나오는 ‘마법사’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진정한 마법사들은 머글들과 외양이나 표정이나 말에서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법사와 머글들이 구별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마법의 능력에 있습니다. 보여줄 마법이 없는 자는 결코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저 머글이고, 잘 해야 사기꾼일 뿐이지요. 스승에게 아둔하지만 엉덩이가 무겁다라고 평가된 증자도 딱히 보여줄 마법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돼지라도 잡아서 머글 신세를 면하고자 했던 걸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마법은 없고, 머글 신세도 싫으니, 저도 집안에 돼지나 한 마리 키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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