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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Nov 18. 2019

막신일호(莫神一好)

일상을 즐겁게

막신일호(莫神一好)


저보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테니스나 골프도 안 치고, 춤도 안 추고, 당연히 노름이나 연애도 안 하고, 남들 다 가는 해외 여행도 안 다니고,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멍 때리고, TV 보고, 걷기 하고, 성당에 가고, 검도 하고, 틈나면 책보고, 심심하면 글쓰고, 정해 놓고 한 달에 한두 번 친구들 만나고, 시시때때로 아내와 함께 차 몰고 장보러 가고, 그냥 그렇게 지내도 지낼 만하다고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크게 재미있는 일도 없고 신나는 일도 없습니다. 무취미로 사는 제 나이 또래들의 일상이라고 여기고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그나마 제 경우는 막신일호하는 게 많이 체질화 되어 있어서 그때그때 몰두하는 삶이 가능한 것도 사실입니다. 엄청 재미없는 인생은 면하고 있습니다.(지금은 페이스북에 미쳐있음!)

‘막신일호(莫神一好)’라는 말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해 크게 성취하는 것보다 더 신명나는 일은 없다’는 뜻으로, 2200여 년 전 중국 전국시대의 순자(筍子)가 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막신(莫神)’이란 ‘더 이상 신명나는 일이 없다’라는 뜻이고, ‘일호(一好)’는 ‘오직 한 가지 일에 몰두하다’라는 뜻입니다. ‘일호’ 하나만, 그 문자적 의미만을 두고 보면 요즘 말로 마니아(mania)라는 뜻이지요. 순자(筍子)는 그 옛날에 이미 마니아적 삶을 긍정, 예찬했습니다. ‘하나에 몰두하라’는 가르침인데, 몰두하다 보면 성취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고, 만족감도 커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인생살이의 참된 의미를 맛볼 수 없다는 내포가 ‘일호’라는 말 안에 있다는 겁니다. ‘일호’가 그런 내포를 지닐 수 있는 것은 물론 ‘막신(莫神)’이 앞에 있기 때문이지요. 이 말에서 중요한 점은, ‘더 이상 신명나는 일이 없다’라는 말이 이미 그 전제로 ‘인생은 신명나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나는 삶! 신명 없는 삶은 이미 죽은 삶이고, 진정한 삶을 위해 ‘신명’을 얻으려면 다름 아닌 ‘일호(一好)’의 경지가 필수적이라는 것, 그것이 2200여 년 전 이미 순자가 터득한 인생의 속알갱이였던 것입니다. 작고 사소한 일일지언정 우리는 어느 하나에 ‘미쳐 살아야’ 한다는 것(어느 하나에도 미치지 않은 삶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위험한 상태 - 진짜 미친 상태? - 라는 것), 아무런 절실한 것 없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하게 죽음을 향한 발걸음만을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순자는 ‘막신일호(莫神一好)’라는 짧은 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 요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근자에 들어, 막신일호!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서 제대로 신명나는 삶을 살아온 이들이 여러 방면에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나름 생산적인 역할을 하고 또 널리 영향력도 행사합니다. 좋은 풍속이 비로소 우리사회에 자리를 잡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세대뿐 아니라 후속 세대를 위해서도 크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제 자리로 돌아가는 거지요. 그들의 신명이 우리 모두에게 골고루 내려앉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을 단순화시켜 사소한 일상에서도 우주적 즐거움을 만끽할 것, 신명나게 한 가지 일에 미칠 것(이것저것 만지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미친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내부(內部)가 연소(燃燒)된다는 것을 뜻한다는 것을 명심할 것, 다시 한 번 그런 다짐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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