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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Dec 03. 2019

혜자의 눈꽃

루마니아풍 2층집

혜자의 눈꽃


오래 전 젊은 날, 광주보병학교 시절이 생각납니다. 사관학교 교수요원들이 장교 임관을 받기 위해서 교육훈련을 받는 중이었습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막 결혼을 하고 신혼 시절 중에 입대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중매결혼이었던 모양입니다. 한 달 동안의 기초군사훈련이 끝나고 처음 면회가 허락된 날이었는데 신부가 면회장에서 신랑의 짧은 머리와 검게 그을린 얼굴을 몰라보고 한참을 헤매더랍니다. 신랑이 자기 팔을 붙들고 당겨도 완연히 “당신 누구세요?”라는 표정을 짓는 바람에 옆에 있던 동기들이 다 웃었습니다. 그 동기생이 한 말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회포부터 풀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같이 보냈는데, 서울로 올라갈 때까지 신랑의 변한 모습에 끝내 적응을 못하더랍니다. 종내 서먹서먹한 표정이더랍니다. 얼굴 생긴 게 그렇게 중요한 모양입니다. 그게 그렇게 섭섭했는지 그 친구는 시간 날 때마다 그 이야기를 리바이벌하곤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동기생 한 사람이 눈치도 없이(?) ‘쥐 X도 모르면서’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의 내력을 설파하면서 같은 내무반 동료들이 모두 포복절도한 일까지 있었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낯선 것’들은 대체로 세 가지의 감정을 유발합니다. 놀라움, 즐거움이나 슬픔, 그리고 두려움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즐거움이나 슬픔’입니다. 낯선 것이 즐겁지 않고 슬픈 감정을 유발한다면 문제일 것입니다. 분명 모종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기는 외상후 스트레스일 것입니다. 다행히 제 경우는 대체로 즐거움을 많이 만나는 편입니다. 낯선 것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지루한 것이 될까라는 생각을 저는 많이 합니다. 놀이나 스포츠는 물론이고, 직장도 그렇고, 집도 그렇고, 차도 그렇고, 가구도 그렇고, 옷과 신발도 그렇고, 가족 빼고는 항상 ‘낯선 것들과의 조우’에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그것만 두고 보면 저는 모험을 즐기는 편입니다. ‘모험’은 물론 제 입장에서이고, 아내 입장에서 볼 때는 일종의 ‘고질병’입니다. 그 고질병을 같이 앓아야 하는데 그게 쉽게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큰 노력 없이 주변을 온통 새롭고 낯선 것으로 바꾸는 데는 가장 손쉬운 것이 이사입니다. 한꺼번에 확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주거(住居) 환경이 눈에 좀 익을 만하면 언제나 새로운 땅, 새로운 공기가 있는 곳으로 이사할 것을 궁리해왔습니다.
지금까지 봤을 때, 평균 주거기간이 채 4년을 넘기지 않습니다. 1,2년짜리도 숱합니다. 젊어서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는 2년 사이에 네 번이나 이삿짐을 쌌던 적도 있습니다. 언젠가 큰아이가 말했습니다. "내 학창시절은 전학의 역사였다"라고요. 큰아이는 초등학교 1, 2학년을 여섯 군데 학교에서 다녔습니다. 제게는 큰 아이의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이 ‘드라이버(라이딩)의 역사’입니다. 심지어는 가정교사 아르바이트 갈 때도 다 아비가 실어 날랐습니다. 초등학교 때의 그 상처의 역사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아이한테는 그 역사가 큰 상처였습니다. 도무지 자식들 생각을 안 하는 부모라는 것이 아이의 평가였습니다. 할 말이 없지만 큰아이 때의 일은 곡절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 역사(?)까지를 모두 저의 신기(新奇) 취미에 포함시킬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와중에서도 제게는 ‘낯선 것들이 주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지금은 루마니아풍 이층집을 지어서 새로운 주거 환경을 창출할 일에 기분이(기분만!) 들떠있습니다. 시시때때로 집터를 구경하러 다닙니다. 모르는 이들은 그냥 말로만 떠드는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전례(?)를 볼 때, 그 일도 반드시 성사되리라 믿습니다. 제 살아온 인생행로가 그걸 장담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낯선 것을 만났을 때 슬픔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그것들도 가끔씩은 찾아듭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나, 어떤 건물에서 오래 있다 나와서 순간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고 전혀 방향을 찾지 못할 때, 슬픈 감정과 두려운 느낌이 간혹 듭니다. 낮잠에서 일어났을 때가 제일 심합니다. 그때는 세상이 무척 낯설게 느껴집니다. 온통 무거운 기운이 저를 누릅니다. 마음뿐만이 아닙니다. 몸까지 무겁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프로이트가 유년기 경험을 높이 평가한 것을 존중합니다. 여전히 제 안의 ‘작은 아이’의 슬픔과 두려움이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제 안의 ‘작은 아이’는 조금도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그 아이에게는 서너 살에서 열두어 살까지의 인생만 있습니다.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낮에 꾸는 꿈은 언제나 그 아이의 영토입니다(마치 독도처럼 그 아이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작은 아이’에 관해 쓴 글이 있어 소개해 올립니다.


....금요일 저녁, 오래된 친구의 음성을 들었다. 어떻게 연락처를 알아서 안부 전화를 했다. 중학교 졸업하고 처음이니 40여년이나 훌쩍 건너 뛴 만남이다. 퇴근길의 차 안에서 마침 마산 출신 대학 선배로부터 선물 받은 ‘가고파’를 듣고 있었다. 무학산(舞鶴山)과 합포만의, 그 남쪽 바다, 눈에 어리는, 잔잔한 물결을 생각하며 죽마고우들을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마치 무슨 운명처럼 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이것도 융의 동시성?). 신통인지 우연인지 모르겠다. 요즈음 들어 가끔씩 그런 ‘우연의 일치’를 만나는 일이 한 번씩 있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학창 시절 친구의 집에서 보낸 따뜻한 시간들이 염분기 진하게 묻어나는 바다 바람처럼 내 뺨을 어루만졌다. 거의 매일 찾다시피 했던 그 친구의 집은 학교 운동장을 내려다보는, 무학산 자락의 송림(松林) 언덕 안에 있었다. 아름다운 해송 군락지였는데, 돌산의 급격한 경사가 한풀 꺾이는 완만한 산중턱의 그 부분에만 그렇게 송림이 울창했다. 초등학생 한 학년 정도는 소풍 와서 놀만한 공터를 사이에 두고, 드문드문 주택들이 올라와 있었다(지금은 아파트들이 올라와 있다).
나는 그 시절을 몇 가지 그림과 함께 기억한다. 젊은 시절 언젠가 천승세 선생의 「혜자의 눈꽃」이라는 소설을 읽고 때 없이 눈시울을 붉힌 적이 있었다. 아마 무슨 문학상 수상 작품집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오줌 누고 나면 표 안 나게요, 눈꽃을 만들랬어요..."라고 말하던 혜자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물론, 모든 눈물은 여러 가지 원천(源泉)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그 소설 하나에만 그 탓을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혜자가 엄마 뒤를 바짝 따라 걸으며 그려내는 눈꽃 하나만 두고 내가 눈물을 글썽인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 그 송림(松林)도 함께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젊었던 어머니를 여의고, 마치 낯선 여행지에서 예고 없이 안내자로부터 버림받은 어린 길손처럼, 나는 늘 허망한 마음으로 그늘진 곳들을 피해 다녔다. 때 없이 추위에 시달렸고, 양지바른 곳만 보면 얼른 그 안으로 찾아 뛰어 들어갔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그 송림의 양지바른 언덕이 떠올랐을 것이다. 언제나 양지바르고 따뜻했던 그 송림이 나를 울렸을 것이다.(졸저 『풀어서 쓴 문학이야기』 중에서)


「혜자의 눈꽃」은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 경지는 한국 소설이 이룩한 보기 드문 쾌거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청준 선생의 「눈길」과 함께, 현재로는 ‘어머니 소설’의 최고봉을 이루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승세의 「혜자의 눈꽃」이나 이청준의 「눈길」을 십분 충분히 읽으려면,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에 못지않은 ‘아들의 사랑’을 잘 찾아 읽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상반된 어떤 원형적인 모성애(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판타지)를 이 두 소설은 극적으로(성공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두 소설의 텍스트 무의식이 그려내는 어머니는 두 분 다 공히 ‘그레이터 마더(위대한 어머니)’인데 아들이 그 어머니를 대상화하는 방법과 방향은 서로 상반됩니다. 제게도 그런 어머니들이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그런 좋은 ‘어머니 소설’을 한 편 쓰고 싶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글감을 충분히 삭힐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어머니와 너무 일찍 헤어졌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소설’이라는 말이 나오니 오정희 소설의 ‘모성 콤플렉스’도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오정희 선생도 ‘어머니 소설’의 대가입니다. 위악적인 화자가 아버지와의 신화적 모의쟁투를 담담하게 진술하고 있는 「저녁의 게임」도 따지고 보면 '위대한 어머니'의 조정을 받는 ‘어머니 소설’의 한 변종입니다. 그 소설의 실제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박해받고 죽은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앞의 두 작가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작가의 성(性) 정체성도 다르고, 오정희 소설(특히 초기 소설)이 지니고 있는, 유아살해나 영아살해를 통해 드러나는, 이른바 ‘아자세 콤플렉스’의 존재도 유별나서 앞의 두 작가와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이야기가 조금 샛길로 흘렀습니다. 다시 「혜자의 눈꽃」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작중 화자인 주인공 청년이 혜자와 혜자의 어머니를 만나는 들창, 눈밭 위에 그려놓은 혜자의 ‘눈꽃’을 내려다보는 들창을 보는 순간 저는 그 친구 집의 송림 쪽으로 난 들창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너무 일찍, 당신에게나 어린 아들에게나 너무 이르게, 세상을 버린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혜자의 눈꽃」도 동시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떠올리는 어머니라는 기호는 늘 ‘불쌍한 혜자의 어머니’라는 기의(記意)를 동반합니다. 제가 어머니를 만나는 ‘들창’은 아직도 그 무학산(학봉) 아래의 송림을 향해 나 있습니다. 마지막 제가 짓고 살고 싶은 루마니아풍 이층집에도 그런 들창 하나는 꼭 있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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