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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Dec 07. 2019

마네킹 옷

나르시시즘의 상술

마네킹 옷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옷이 좋아보여서 사서 입어볼 때가 왕왕 있습니다. 대체로 (십중팔구는) 실망입니다. 옷이 제대로 제 몸을 받쳐주지를 않습니다. 요즘 들어서 특히 더 그렇습니다. 체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 같이 짤뚝막한 키에 배불뚝이 허리를 가진 사람들은 요즘 젊은이 스타일을 모방하다가는 큰 낭패를 만납니다. 마네킹 옷을 보고 옷을 사면 절대 안 됩니다. 실망스러워 인생이 다 처연해 집니다. 디자이너들이 사람 몸에 잘 맞는 옷보다(몸에 옷을 맞추기보다) 마네킹에게 입힐 옷을 먼저 만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본디 나르시시즘의 정수(精髓)가 ‘나와 나 아닌 것의 사이의 경계를 해체’하는 데 있다니까 그렇게 하나의 ‘절대미’를 제시해서 마음을 좀 흔들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속이는 게(헛것을 보게 하는 게) 본디 ‘장사의 기술’인 것도 같습니다. 화장품 광고에 미인들만 나오는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헛된 꿈인줄 알면서도 ‘저 화장품을 바르면 광고 모델처럼 예뻐질 수 있다’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니까 ‘진짜 사람’을 닮은 마네킹이 아니라 ‘세상에 없는 사람’(환상)을 보여주는 마네킹이 훨씬 상업적 용도(用途)에 적합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을 ‘환상’ 하나 없는 이 뚱뚱하고 볼품없는 뚱땡이 몸을 가지고는 그저 아무거나 매대(賣臺) 물건을 사서 입는 게 장땡입니다. 싸고 질겨서 뿐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포기’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여담입니다만, 얼마 전부터 그냥 보기에(사진으로 보기에는) 날씬해 보이는 페친 한 분이 본인 몸무게를 적나라하게(?) 공개하면서 ‘공개 다이어트’를 하십니다. 일종의 ‘황금의 말’을 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더 물러설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인 셈이지요. 아무리 마른 몸매라 해도 그 정도의 몸무게로 마네킹 옷을 입으려면 적어도 180cm 이상의 신장은 타고나야 할 듯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성공을 믿습니다. 그렇게 비장하게 원가(原價)(?)를 밝힐 정도면 못 이룰 일이 없을 겁니다. 조만간 마네킹 옷을 너끈히 소화해 내실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습니다. 건투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네킹을 저처럼 ‘ 나르시시즘 환상’으로 보지 않고 ‘상처투성이의 외로운 자아’로 보는 사람도 있군요. ‘환상’보다는 ‘알몸’ 쪽을 강조합니다. 근사하게 옷을 걸쳤을 때와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맨몸 상태를 대비시켜서 ‘외로운 사람끼리의 유대감’을 강조합니다. 상대도 ‘어릿광대’로 설정해 서로 잘 어울리게 배려했습니다. 옷을 홀라당 벗은 마네킹의 모습에 묘한 안쓰러움을 느껴보신 적이 한두 번은 다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빨강 끈』(신애희 글 그림, 소년한길)이라는 그림동화책입니다.


...『빨강 끈』은 ‘꾸루’라는 어릿광대와 마네킹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그림동화이다. 어릿광대 주인공 꾸루는 사람들에게 어떤 묘기를 보여 줄지 생각하며 마을 광장으로 간다. 그러던 중에 새끼손가락에 걸려 있는 빨강 끈이 잡아당기는 곳으로 무심코 가 보니 옷가게에 있는 마네킹의 손에 연결되어 있다. 꾸루는 예쁜 옷을 입은 마네킹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에 장미꽃을 내밀기도 하고, 마술을 부려 예쁜 나비를 만들기도 하지만, 마네킹은 아무런 대꾸도 없고 냉담하기만 하다. 꾸루는 종이를 꺼내어 유리벽을 넘어 서로 손을 잡고 끌어당기는 그림을 그려 보여 주며 친구가 되자고 한다. 하지만 마네킹은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네킹과 친구가 되고 싶어 온갖 노력을 다하던 꾸루는 쌀쌀맞기만 한 마네킹의 태도에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한다. 그때 어떤 소녀가 옷가게에 와서 마네킹이 입고 있던 옷을 사 가지고 나간다. 꾸루가 다시 마네킹을 돌아보니, 온몸에 상처와 낙서가 가득한 마네킹이 옷을 벗고 수줍게 서 있다. 꾸루는 그 모습을 보고도 달리 도와줄 수가 없어 돌아서려 하는데, 그때 마네킹이 “가지…마, 그냥 내 곁에 있어 줘.”라고 희미하게 말한다. 이 말을 듣고 꾸루는 빨강 끈으로 예쁜 망토를 만들어 마네킹에게 입힌다. 마네킹은 꾸루가 준 빨강 망토를 마음에 들어 한다. 그날 이후 마네킹은 꾸루와 더없이 친한 단짝 친구가 된다. [진선희, 『그림책을 읽다』, 한우리문학, 2013, 80-81쪽]


그랬습니다. 옛날 옷가게 마네킹들은 몸 여기저기에 숫자나 글자를 지니고 있기도 했습니다. 긁힌 자국 같은 상처도 군데군데 있었고요. 하나의 예술품 같은 요즘 백화점 마네킹들과는 좀 달랐습니다.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생긴 것도 사람과 흡사했습니다. 마네킹다운 마네킹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사람다울 때도 마찬가진 것 같습니다. 너무 잘 난 사람은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가려진 상처’가 군데군데 있어야 사람 냄새가 납니다. 그저 매끈하고(머리 작고) 팔다리 길고 잘 생기고 키 큰 사람들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겉모습만 그런 것도 아니겠지요. 안쪽도 마찬가집니다. 그쪽에도 ‘마네킹’이 있습니다. 또 다른 ‘마네킹’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삶 역시 ‘보여주기’ 일색입니다. ‘환상’을 보여주고, ‘환상’을 부추깁니다. 그들은 또 애초에 ‘상처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지닌 ‘인간의 상처’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돈, 권력, 명예와 같은 ‘환상’만을 쫓습니다. 그것만을 위해 삽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마음의 옷’은 이미 보통 사람의 몸에는 맞지 않는 것들입니다. 자기들끼리만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마치 요즘 백화점의 쇼윈도를 장식하는 ‘마네킹의 옷’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 ‘마네킹’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언제나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유혹’이 됩니다(삼각형의 욕망?). 못 입을 줄 뻔히 알면서도 속아서(속고 싶어?), 그 ‘보아서 즐거운’, ‘마네킹 옷’을 삽니다. 조만간 입어 보지도 못할 옷, 그 ‘마네킹 옷’을 또 한 벌 사야 하는군요. 지난겨울, 큰 돈 주고 사서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마네킹 옷’이 장롱에 그대로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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