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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Dec 09. 2019

낮술 한 잔에 드러나는

외로우니 인생이다

낮술 한잔에 드러나는


외로우니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말이 절실해진 지가 꽤 오래됩니다. 돌이켜 보니 외로움을 모르던 때가 기억에 없습니다. 기억에 없던 때부터 외로움을 많이 탔습니다. 제주 김녕 앞바다의 검은 갯바위 위에 저를 혼자 두고 물질을 하던 형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땡볕 아래서 울고 있었답니다. 밭일을 따라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던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형들을 경을 쳤답니다. 뭍으로 나온 뒤, 서너 살 이후의 유년기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여전히 외로웠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 때의 외로움을 저는 여태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 무렵 혼자서 처음 걷는 십리 길을 무작정 나섰던 일도 있었습니다. 혼자 남은 집이 너무 싫었습니다. 야산 하나를 넘어서 합승버스가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간간히 다니는 신작로를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아침 일찍 장삿길에 나선 부모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함께 있던 형이 옆집 젊은 아저씨(지금 생각하니 그분도 시골서 올라와서 직장을 구하던 백수 신세였습니다)를 따라서 잠깐 마실을 나간 사이였습니다.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외로웠습니다. 요행히 부모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어 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습니다. 상봉(相逢)에 성공했기 망정이지 그때 길을 잃었다면 영영 고아로 클 뻔하였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덜 외로웠습니다.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우정 바쁘게 살았습니다. 바쁘게 살면 외로움과 좀 멀어질 거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도 일찍 했습니다. 그때는 외로움과 아주 이별하고픈 마음뿐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글도 쓰고, 취직해서 돈도 좀 벌면서 외로움과 아주 작별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찍부터 외로움을 알았던 '소년병(少年兵)'이 커서 직업 군인이 되었다 한들 크게 변할 리가 없었습니다. 늘 외로움과 싸웠습니다. 때로는 별스런 취미로 자신의 출신성분을 무마해 보려고도 애를 썼습니다. 한 때 개나 고양이를 쌍으로 기르고 그것도 모자라 새나 물고기를 대량으로 가두어 키우는 일에 몰두한 적도 있었습니다. 온 집이 동물농장이었습니다. 매일매일이 '동물의 왕국'이었습니다(그때의 번거로움을 잘 참아준 가족들에게 감사!). 지금 생각해 보니 제 외로움 하나 달래려고 애꿎은 주변의 생명(기르던 동물 및 가족 포함)들만 괴롭혔습니다. 끝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떠맡기거나 헐값에 팔아넘겼습니다. 꼭 자식을 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버릴 때는 매정하게 버렸습니다. 마치 세상에 복수나 하는 것처럼요. 참 철없는 어린, 외로운 동물이었습니다. 외로울 때는 소설을 보라던, 문청 시절 가까이 지내던 시인 선배의 말이 생각납니다. 읽다가 덮어둔 친구의 소설을 다시 꺼내 읽습니다.


......그날 나는 가장 고참임을 내세워 병사들의 투덜거림을 못 본 체하고 오소리 가죽 값으로 소주 두 상자에다 그를 얹어가기로 했다. 포 영감은 읍내 장터에서 종자가 좋은 수놈이라 비싼 값으로 사온 삽살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가 단골이니까 손해 보고 얹어주는 것이라며 아깝다는 듯이 내게 그를 안겨주었다. 그때 나는 어이없게도 헤어진 첫사랑을 떠올렸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의 검고 깊은 눈빛이 낮술 한잔에 드러나는 나의 외로움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가칠봉으로 해가 조금씩 내려앉을 무렵, 나는 그를 안고 밤이면 처녀귀신이 나온다는 세월교를 건너갔다. 그의 목에 달린 방울이 잘랑거렸다. 문득 뒤돌아보니 마을 한가운데 우뚝 솟은 교회의 양철지붕 위로 붉게 얼룩진 햇빛 몇 점이 앉아 있었다. [문형렬, 『어느 이등병의 편지』, 다온북스, 14~15쪽]


인간이 외로운 존재라는 것은 애완동물, 특히 개나 고양이의 존재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애완동물을 수천 년이나 변치 않고 곁에 붙여두는 족속은 아마 인간밖에 없을 겁니다. 주인공은 어린 삽살개의 ‘검고 깊은 눈빛’에 동병상련합니다. 둘 다 외로운 생명입니다. 그렇게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 따뜻한 위로를 얻습니다. 그 상대가 삽살개라는 게 제겐 반갑습니다. 저도 『시골무사 삽살개에 대한 명상』이라는 ‘대체역사 판타지(?) 의사과학 소설’을 한 편 쓴 적이 있었거든요. 그 소설에 나타난 삽살개의 내력은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장모종인 삽살개는 중앙아시아에서 한반도로 이주한 스키타이 족들의 개였습니다(단모종인 진돗개는 그쪽에서 온 것이 아닐 공산이 큽니다). 그 중의 일부는 일본으로 건너가 천황가의 수호견이 됩니다(거꾸로 생각한다면 그 개를 기르던 이들이 건너가서 천황가를 만들게 됩니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개가 삽살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코마이누’(신사나 절 앞에 세워진 사자견)의 원형이 되지요. 그 삽살개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멸종 상태에 이르렀지만(결정적인 것은 견피(犬皮)점퍼용으로 대량 도살되었던 탓이라고 합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어 다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배운 대로 그 내용을 소설로 썼을 뿐입니다만, 삽살개를 다시 육종해서 어엿한 ‘볼거리’로 만들어낸 분들의 노고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외로움’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외로움’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것이 인간을 약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외로움’에 저항하기 위해서 개나 고양이에게 투항합니다. 그러니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그야말로 사탄입니다(심했나?). 그렇게 외롭지 않아서야 어떻게 인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외로우니까 인간인데. 개에게 벽사(辟邪,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침) 능력이 있다는 민간의 믿음이 있습니다. ‘외로움’을 몰아내는 것이니 당연 그렇겠지요. 삽살개가 벽사의 부적으로 사용된 모습을 찾고 있는데 잘 뜨질 않는군요. 찾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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