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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Dec 10. 2019

서울쥐 시골쥐

자식과 제자

서울쥐 시골쥐

한때 ‘쥐’ 메타포가 유행한 적이 있다. 권력의 최상층을 겨냥한 정치적 패러디에서부터, 언어가 지닌 탄력성에 의지한 무차별적인 ‘~쥐’ 접미사 조어법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나도 전통적인 쥐 모티프를 존중해서 ‘서생원(鼠生員, 書生員)’ 메타포를 여기저기서 사용한 적이 있다. ‘서울쥐, 시골쥐’는 그 중의 하나다. '서울쥐'와 '시골쥐'라는 옛이야기의 맥락을 조금 흔들어서 내가 의도하는 '틈새 의미'를 뽑아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서울 쥐는 뺀질이고, 시골쥐는 순딩이다, 눈치보는 서울보다는 마음 편한 시골이 낫다라는 원 의미(고정관념)를 뒤집어서 선비가 시골에 내려가 살다보면 시골 것들의 그 무지(無智) 야비(野鄙)함에 휩쓸려(싸우다 닮아가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비의 본분을 잊고 타락하고 만다는 이야기로 역전시킨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풍자나 언어유희를 달성한다. 때로는 당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윤리적 메시지도 추출한다. 그럴 때는 낯선 새 주장을 받쳐줄 만한 전거를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대개 그늘진 벼랑 깊숙한 골짜기에서는 햇볕을 볼 수가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없는 사람이라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진 견문이란 실속 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라는 다산의 지적(아들에게 보낸 편지)과 같은 것을 덧붙이거나 당대의 정치적 현실인식에서 나타나는 서울과 시골의 격차 같은 것을 곁들인다. 물론, 글의 조직에도 유의한다. 억양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앞뒤로 반복을 두어 독자가 스스로 설복당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여기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강고한 '글깨나 읽는' 독자들(서울쥐, 시골쥐 불문)의 ‘불신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연암의 말처럼, "끝까지 싸워 남김없이 죽여야"(소단적치인) 한다.

서울쥐든 시골쥐든, 위정지도(爲政之道)냐 안빈낙도(安貧樂道)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쥐들의 영원한 숙제다. 서울쥐는 위정이고 시골쥐는 안빈이다는 식의 이분법은 오히려 순진하다. 쥐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공자(공쥐?) 이래로 그 문제를 제대로 푼 이가 없다. 그 문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제목에 지지 않는다. 쥐는 생식력이 강하기 때문에 먹을 것에 늘 집착한다. 배부를 때가 없다. 동포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쥐의 생식력은 관념의 전이 속도에 비례한다. 그것이 보통 전파력을 지닌 게 아니다. 문자벽서권귀(文字癖書卷鬼)가 양산되는 속도는 거의 빛의 속도와 같다. 순식간이다(sns의 도움이 크다). 제어가 불가능하다. 먹을거리는 제한을 받고 식구는 대책없이 늘어나니 먹을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들의 식성을 식탐(食貪)이라고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들이 좋은 식량공급처를 찾아 이리 몰리고 저리 쏠린다고 해서, 그들의 의리(義理) 없음을 물어 책망할 수도 없는 이치가 거기에 있다. 또 그들은 이빨이 멈추지 않고 자라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갉아야만 하는 숙명 속에서 산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긁고 갈구고 하는 그들의 속성을 분수 모르는 참견이라고 매도만 할 수 없는 소이가 거기에 있다. 다만, 그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 쥐들이 서로를 잡아먹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했다. 아무리 궁하다고 해도 쥐들은 서로 잡아먹지 않는다. 그게 우리가 쥐들에게 배울 점이다.

어쨌든, 평생 시골쥐로 살아온 입장에서 볼 때, 폐족(廢族)이 되어 낙심천만인 두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사수하라"는 당부를 하는 다산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된다. 다산에게는 평생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없었다. 그래서 더 공감한다. 쥐들에게 안빈낙도(安貧樂道)란, 한갓 동료를 식량 조달처에서 배제하기 위한, 입을 줄이기 위한, 감언이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내겐 그렇게 읽혔다. 안빈낙도란 오직 시골쥐들에게만 강요되는 불공평한 수칙(守則)일 따름이었다.

물론 나같은 늙은 시골 쥐 입장에서도 할 말이 좀 있다. "안빈낙도는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시골 대학을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서울 가까운 곳에 자리한 번듯한 대학의 교수가 되었을 때, 비슷한 입장인 선배 교수에게 나는 "우리가 만약 서울쥐 출신이었다면 지금 얼마나 모진 부랑쥐가 되어 있겠느냐"는 말을 던진 적이 있었다. 경사족(京士族)의 위세나 부리면서, 결국 근본 천생인 것이(자본주의에서 재벌 빼고는 다 근본 천생이다), 자기 불쌍한 줄도 모르고, 저나 나나 불쌍한 줄도 모르고, 얼마나 기고만장, 주변을 깔보며 날뛰고 있겠느냐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순진했던 때였다. 그야말로 시골쥐다운 발언이었다. 그게 바로 ‘기고만장’이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다. 그 선배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울쥐로 놀아야지, 왠 시골쥐 타령이냐는 눈치였다. 지금도 그의 눈빛이 눈에 선하다.

요즈음 들어 부쩍 그 선배가 맞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근본 시골쥐지만, 수십 년 시골에서 살다보니 이제 시골쥐 살이에 아주 신물이 난다. 시골에도 서울쥐들이 좀 내려와 있는 곳은 덜하지만 시골쥐들만 한 소쿠리 통째로 부어놓은 곳은 정말이지 아귀다툼이다. 무간도(無間道)가 따로 없다. 오로지 "실속 없고(돈만 알고) 비루한(권력욕만 가득한) 이야기"만 횡행한다. 그냥 이야기만 횡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쥐도 여럿 잡는다. 쥐의 본성이 뭔지도 모른다. 당연히 자기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오죽하면, 언젠가 한 번 그 자세한 속사정을 글로 써서 꼭 밝혀야 되겠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겠는가? 다산이 오죽했으면 자식들에게 "서울을 사수하라"라고 편지에 썼겠는가,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된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0년 전 다산이 형님, 아들, 친지, 제자들에게 그때그때의 소용에 닿는 내용으로 간절하게 적은 것들이라 내용이 화려강산(華麗江山)이다. 아들들에게는 앞서 말한 ‘서울을 사수하라’를 필두로, ‘애비 원망일랑 하지 말아라’, ‘진득하게 공부해라’라고 타이르고, 제자에게는 ‘학문의 의의’에 대해 소상하게 가르치고 격려한다. 형님과는 주역을 논한다. 하나하나가 각기 다산의 인물됨을 여실히 보여주는 글들이다. 아들에게는 여느 아비의 마음과 하나 다르지 않은, 오로지 가문과 가족과 자식만을 생각하는 가부장(家父長)의 절실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고, 그 사이 사이 행간에는 자존심 강하고 의리를 존중하는, 그리고 다혈질이기도 한, 다산의 선비적 기질과 강단이 잘 드러난다. 평소 공부가 부족하다고 여겨 온 둘째 아들에게는 자상하게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세심함이 돋보이고,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평생을 학문에 몸 바쳐 살아 온 노현자(老賢者), 대학자(大學者)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다산의 편지글을 읽으며 ‘서울쥐, 시골쥐’ 메타포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아들들에게는 ‘너희들에게는 기회가 없을지 모르나 너희 후손들에게는 꼭 과거를 보도록 하라’는 취지로 말을 하면서 제자에게는 (과거학과 같은 쓰레기 공부를 하지 말고) ‘오로지 학문에 전념하라’고 권한다. 서울쥐(위정지도)에서 한 순간 시골쥐(안빈낙도)로 바뀐다. 큰아들이 ‘좀 굽히고 살면 가족들이 편하지 않겠느냐’고 투정을 부리자 조목조목 따져서 면박을 주고, 작은 아들에게는 ‘엉덩이 무겁게 해서 공부해라’고 조근조근 타이른다. 하다 보면 ‘마당 쓸고 돈 줍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꼬드기기도 한다. 그런 글들은 감자나 보리나 속에 들어가면 다 일반이다는 이야기로도 들린다. 역시 서울쥐와 시골쥐의 경계가 해체된다. (앞날이 보이는) 큰 아들에게는 서울쥐로, (다소 부족한) 둘째 아들에게는 시골쥐로 대한다.

다산이 위정지도(爲政之道)를 버리고 안빈낙도(安貧樂道)로 전향하였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다만 과거학(科擧學)의 폐단을 지적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마치 요즈음의 고시 낭인, 고시 폐인과도 같은 류가 그 때도 있어서 사회문제를 야기했던 모양이다. 아울러,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에 대한 처방 또한 다를 수밖에 없으니, 다산이 서울쥐와 시골쥐를 오락가락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시골쥐 30년만에 얻은 쥐꼬리만한 터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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