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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01.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논술의 실제 3 - 사느냐 죽느냐

3. 햄릿  

   

[제시문 1]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느 게 더 고귀한가.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는 건가, 아니면

무기 들고 고해와 대항하여 싸우다가

끝장을 내는 건가. 죽는 건 - 자는 것뿐일지니,

잠 한 번에 육신이 물려받은 가슴앓이와

수천 가지 타고난 갈등이 끝난다 말하면,

그건 간절히 바라야 할 결말이다. 

죽는 건, 자는 것. 자는 건

꿈꾸는 것일지도 - 아, 그게 걸림돌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잠 속에서 무슨 꿈이,

우리가 이 삶의 뒤엉킴을 떨쳤을 때

찾아올지 생각하면, 우린 멈출 수밖에 -

그게 바로 불행이 오래오래 살아남는 이유로다. [후략]     

있음이냐 없음이냐 :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역자가 <사느냐 죽느냐>로 옮겼다. 다만 최재서의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와 이덕수의 <과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강우영의 <삶이냐, 죽음이냐> 정도가 예외일 뿐이다. 그런데 원문의 <To be, or not to be>는 <사느냐 죽느냐>를 포함하는 존재와 비존재를 대립시키고 있기 때문에, 또 이 독백이 살고 죽는 문제를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명시하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쉽고 모호하며 지극히 함축적인 일반론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생사의 선택으로 옮김은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원문의 뜻에 가장 적합한, 한자가 아닌 순수 우리말은 <있다>와 <없다>의 적당한 변형이 될 것이다. 물론 우리말의 <있음>과 <없음>에 아직 역사적, 그리고 존재론적 무게가 충분히 실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말의 힘은 적절한 표현의 쓰임에서 나오므로 햄릿의 <있음이야>를 영어의 <to be> 부정사의 명사적 용법에 해당하는 구절로, <없음이냐>를 <not to be>에 해당하는 구절로 옮겨 보았다. 우리말의 <있음>과 <없음>이 아직 완전한 명사로 굳어지지 않았으므로 이 경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한자 개념을 쓸 경우에는 <존재하느냐 마느냐> 식이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 최종철 옮김, 『햄릿』 중에서] 

    

[제시문 2]     

..... 읽는 데 많은 시간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희곡인 탓도 있지만 양이 절대적으로 많지 않았습니다. 대사가 무척 <화려하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것이 그리 <심오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든 읽지 않은 사람이든 즐겨 입에 담는 햄릿의 유명한 독백, 곧 3막 1장에 나오는 <To be, or not to be : that is the question >도 그랬습니다. 제가 지금 펼쳐놓고 있는 최재서 선생님의 텍스트에는 이 문장이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중략]

저는 어쩌면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무척 유치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이지만 제게는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다시 다듬는다면 <살고 싶어 사는 것도 아니고, 죽고 싶어 죽는 것도 아닌 것>이 삶이라는 건데, 그때 부닥치는 것은 그처럼 심원한 물음이 아니라 바로 그다음의 구절,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받고/ 참는 것이 장한 정신이냐./ 아니면 조수처럼 밀려드는 환란을 두 손으로 막아,/ 그를 없이 함이 장한 정신이냐? Whether'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opposing end them?> 하는 더 현실적인 물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모욕을 당하면서 가정교사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오갈 곳이 없어도 오늘 저녁 돌아가면 당장 짐을 싸서 나올 것인가 하는 것이 제게는 <근원적>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①당연히 그 독백이 이어지는 <죽는 일은 자는 일다만 그뿐이다. To die : to sleep>을 저는 거침없이 간과했습니다.  [정진홍, 『고전, 끝나지 않은 울림』 중에서]          

* [제시문 2]의 밑줄 친 ①을 참조하여 [제시문 1,2]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주제를 900자 이내로 논하시오.   

  

[출제 의도 및 논점 분석]     

* 제시문들은 ‘To be, or not to be'의 해석역(解釋域)을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게 ‘사느냐 죽느냐’로 옮기기에는 그 맥락이 요구하는 해석의 영토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햄릿의 아버지 원수에 대한 ‘복수의 지연’이 보편적인 인간 존재의 고뇌 속에서, 이를테면 존재론적인 파장(波長) 안에서 음미될 수 있도록 하는 『햄릿』의 백미 부분을 두고 두 사람의 저자가 각기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유한한 인간 존재가 고통과 고뇌의 연속인 생(生)을 애써 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뇌하는 햄릿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살아 부지할 것인가, 죽어 없어질 것인가’라는 최재서의 번역과 [제시문 1] 저자의 ‘있음이냐 없음이냐’라는 번역을 두고 어느 한쪽 편을 들어 논지를 전개시켜 보는 것도 재미있어 보인다.     

* 어머니의 배신을 두고 고뇌하는 햄릿의 망설임을 어떤 관점에서 파악할 것인가가 먼저 정해 져야 할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하고 싶은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자책하는 것인지, 아니면 삶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회의 탓인지, 그도 저도 아닌 결정 장애의 소산인지 등을 먼저 결정하고 문학적인 울림이 어느 쪽에서 더 확장되는지를 설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어 지식이 있다면 ‘be 동사’의 용례도 덧붙여도 좋을 것이다.     

* <제시문 1>의 주장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검토하든지, 아니면 동조적인 관점에서 검토하든지는 선택의 문제일 것 같다. 논자 스스로 어느 쪽에 서는 것이 유리한 지를 냉철하게 파악해서 첫 줄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첫 줄은 어떻게?]

“인간의 삶은 결국 가족 내적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일국의 왕자 햄릿도 예외일 수 없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널리 알려진 문학적 수사다. 그것이 <햄릿>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삼촌은 아버지를 죽였고, 어머니는 그 삼촌과 결혼한다. 햄릿의 고통은 이중적이다. 삼촌과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자기 자신의 무의식적 충동에 대한 자책이 교차한다. 따지고 보면 그와 삼촌은 공범자였다.”“햄릿은 타고난 결정 장애자다. 그에게는 행동이 없다. 삼촌의 범행을 확인하고서도 그는 복수를 망설인다. 그 와중에 나온 탄식이 <사느냐 죽느냐>였다.” 등의 첫 줄 쓰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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